2년 회고
(2022년 6월에 작성했던 글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긴 글 주의)
2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그 동안 내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간 것은 단 한 개도 없었다. 혼란 뒤에 또 혼란.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왔던 길을 회고를 통해 돌아보려고 한다. (사실 넋두리나 하소연에 가까운 것 같다)
2020년도 당시 나는 아직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3학년 학생이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COVID-19가 시작되자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서 뒹굴거리기만 했다.
어느덧 뒹굴거리는 것도 지치기 시작했을 무렵, 코딩 스터디에서 스타트업 모집 공고를 추천받았다. 지금 다니고 있는 파이리코였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를 모집하는 듯한 내용이었지만 나는 직무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채로 지원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웹 또는 앱 개발자는 절대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머신러닝, 딥러닝 쪽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일단 회사 경험을 쌓으면 좋을 것 같다고 판단을 했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덜컥 붙어버렸다.
3개월간 인턴 생활은 즐거웠다. 한 달간 회사에 적응하고 html, css, javascript, react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웹에 대해 완전히 무지했기 때문에 그냥 모든 게 다 새로웠다. 한 달 동안 javascript 또는 react로 이미지 갤러리와 투두리스트를 만드는 과제를 진행했다.
머리가 정말 깨지는 줄 알았다. 새로운 지식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내 자신이 멍청하다는 생각을 수십 번도 넘게 했던 것 같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근할 때는 항상 어제보다 더 나은 ‘나’가 된 것 같아서 항상 신나있었다. 회사가 잠실 부근에 있었는데, 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들뜬 채로 매번 오늘 배웠던 것에 대해서 곱씹어보곤 했다.
프론트엔드와 백엔드 구분에 대해서도 이때서야 명확히 알게 되었다. 나는 우선 프론트엔드 업무에 투입이 되었고, 기존 서비스에서 간단하게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맡아서 일을 진행했다. 실제로 내가 코드를 짠 부분이 앱으로 배포되는 것을 보았을 때 짜릿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주변 사람들한테 앱을 보여주면서 이 조그만 버튼 내가 수정한 것이라고 잔뜩 자랑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나의 성장 그래프는 ↗️ 이런 기울기라는 생각이 들었고, 개발에 대한 열정과 희망이 가득했다. 그래서 잠깐 휴학하고 회사를 더 다녀보지 않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였고, 자연스럽게 파이리코의 구성원이 되었다.
2021년에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가장 먼저 진행한 프로젝트는 반려동물 행동과 감정을 분석해서 양육환경을 진단해주는 웹 개발이었다. 같이 인턴을 했던 유니님과 함께 하이브리드 웹을 개발하였다. 사실 프로토타입에 가까워서 특정 프로젝트를 개발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내 손으로 만들어낸 첫 결과물이었다.
이 product로 해커톤에 참여까지 했다. 어쩌다보니 팀장이 되어서 기획서 부터 발표 준비까지 재밌는 경험을 해보았다. 처음으로 product의 BM에 대해서 고민해보았고, 수익을 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2021년 초에 회사는 pivot을 하기로 결정했다. 동물병원 위치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병원에서 작성한 전문 리뷰를 찾아볼 수 있는 웹 서비스를 새롭게 만들어보기로 했다. 포지션 변경이 우당탕탕 이루어졌고, 정신차려보니 웹과 앱을 담당하는 개발자는 나 혼자가 되었다. 나를 제외한 개발자 분들은 전부 R&D 파트로 넘어갔다.
프로젝트 셋팅부터 난관이었다. 네이버 지도와 비슷한 서비스 개발이 필요했는데 위치 정보를 가져오는 게 나에겐 큰 장벽이었다. 자연스럽게 개발 시간이 점점 늘어졌다. 버그 투성이 웹 때문에 스트레스도 정말 많이 받았다.
이때부터 시니어 개발자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를 개발하면서 잘했다고 할 만한 점은 라이브러리와 API의 사용법을 어느정도 익힌 것. 그리고 atomic design의 도입이었다. 나름대로 component를 재활용할 수 있게 아키텍쳐를 설계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python으로 크롤링도 처음 진행해 볼 수 있었다.
피터펫 라이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만 거쳐서 완성된 product였다. 그래서 개발이 정말 쉽지 않다, 라는 생각.. 정확히 말하자면 좌절을 많이 했고, 나 자신을 깎아내렸다. 개발을 계속 해도 될까? 이런 생각도 많이 했고. 사수가 있는 대기업을 가면 좀 달랐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했고. 주변 사람들은 스무스하게 개발을 잘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왜 페이지 하나 만드는 것도 힘들지? 이런 생각도 많이 했다.
개발하다가 막힐 때마다 주변 개발자 분들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1) 다른 파트로 이동했으니 웹앱 개발 관련해서 계속 질문을 던지면 실례일 것 같았다. 2) 어디가 잘못된 건지 파악하는 것조차 힘들어서 모르는 부분을 질문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이러한 이유들로 혼자 속을 많이 썩혔다. 지금 생각하면 좀 미련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때는 쉽지 않았다.
이후 해당 서비스는 다른 우선순위에 밀려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결국 정식 출시도 해보지 못하고 사라진 비운의 서비스라서 내 아픈 손가락 중 하나다. 아쉬운 부분을 말하라고 하면 끝도 없을 것 같아서 몇 개만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개발 일정 계산 미흡
task마다 우선순위 부여 제대로 안함
react cycle과 react hook에 대한 이해 부족
프로젝트 셋팅과 아키텍처 설계에 대한 지식+경험 부족
처음에는 버그투성이인 피터펫 라이프가 출시 전에 흐지부지되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안일한 생각이었다)
7~8월 즈음에 피터펫 라이프 개발이 급하게 마무리 되고 새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프로덕트 회고 같은 개념은 전혀 없었다. 결국 자연스럽게 피터펫 라이프에 산재되어 있던 문제들은 그대로 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가면서 펑 터졌다.
내 아픈 손가락 중에서 1등을 차지하고 있는 프로젝트다. 사실 아픈 손가락이라고 하기보단 부러진 손가락이라고 해야 더 맞는 표현일 것 같은데.. 어쨌든 이 서비스는 반려동물의 개체 카드를 등록하고 검진확인서를 확인해볼 수 있는 앱이다. 9월 말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대략 개발 일정이 한 달 가량 잡혀 있었고, 여전히 웹앱 개발자는 나 혼자였다. React Native를 통해서 앱을 개발할 계획이었다.
특이한 점은 앱만 개발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제공하려는 서비스가 웹과 앱이 동시에 개발이 이루어져야 했다. 웹은 외주를 통해서 거의 개발이 되었고, 앱과 유기적으로 연동되어야 하는 부분은 우리가 직접 진행해야했다.
나는 우선 앱을 개발했다. 기술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개발 일정도 자꾸 딜레이되었다. 개발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았던 것이 문제의 주된 원인이었다. 여전히 앱은 버그 투성이었고, 테스트 체계는 전혀 잡혀있지 않았다. 그와중에 웹에도 추가해야하는 기능과 수정해야하는 기능들이 있어서 동시에 진행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task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그때만 하더라도 개발 일정이 뒤로 늦춰진다는 것은 아주아주아주 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계획대로 앱을 출시하면, 곧 이어서 투자를 위한 미팅들이 주르륵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개발 일정이 미뤄지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와서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정말 농담이 아니라, 재수 이후로 진짜 오랜만에 머리카락이 왕창 빠졌다.
사람이 일주일 동안 잠을 안자도 살 수 있구나, 라는 생각과 정말 급하면 일주일 동안 잠을 안자도 잠이 안오는 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점심 시간과 지하철에서 한 두시간 정도 쪽잠을 잤고 그 외의 시간에는 개발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심지어 당시 집이 창문으로 햇빛이 안들어오는 구조라, 시간 개념 없이 그냥 가만히 앉아서 키보드 두드리고, 졸리면 알람을 10개 정도 맞춰두고 잠깐 의자에 앉은 채로 눈을 감았다.
그렇게 겨우겨우 앱을 개발했다. 버그가 많이 있었지만, 어쨌든 동작은 하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앱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다른 문제가 터졌다. 앱과 웹 사이에서 api 호출이 되고 서로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백엔드 개발을 누가할지 DRI가 전혀 정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당연히 프론트엔드 업무만 맡는다고 안일하게 생각을 했고, 이 부분에 대해 팀에서는 아무런 얘기가 오고가지 않았었다. (기능명세서, 화면설계서 등이 제대로 구현이 안되어 있었기 때문에…)
R&D 파트로 이동하신 개발자 분이 원래 백엔드를 담당하셨지만, 당장 R&D 쪽도 급해서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백엔드를 맡게 되었다. 아주 간단한 모델 정도만 만들어봤기 때문에, 나에겐 당연히 백엔드 지식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며칠 내로 push 알림 기능을 구현해야한다고 들었을 때는 정말 멘붕이었다.
당장 앱 배포 예정 날짜가 2일 정도 남은 상태였고, 필요한 부분은 아무것도 만들어진 게 없었다. 말 그대로 정말 울면서, 급하게 문서를 읽고 그 전에 남아있는 소스코드들을 부실하게 짜집기 했다. 그러나 역시 일주일 안에 해내기에는 불가능이었다.
뒤늦게 다른 개발자님이 도움을 주셔서 겨우 앱을 배포했다. 기쁜 마음 보다는 꾹 참아왔던 졸음이 쏟아져서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다. 앱을 배포하자마자 우선 오늘은 일하지 말고 쉬라는 말을 듣고 거의 기절하듯이 그 자리에서 겨울잠을 잤던 기억이 난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그때를 회상하자면 전반적으로 모두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개발 프로세스라는 게 제대로 된 게 없었으며, 나 자신에게도 부족한 부분이 너무 너무 많았다.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개발 일정 계산 미흡
코드 리뷰 없음
테스트 체계 없음
앱 기획, 디자인, 개발이 동시에 이루어짐
기능명세서, 화면설계서 등이 전혀 구현이 안되어 있음
팀 내에서 서비스 구현과 관련된 sync가 전혀 맞춰지지 않았음
백엔드 개발 DRI 부재
개발이 늦으면 늦는다고 미리 말할 수 있는 판단과 용기
가장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자꾸 하루 안에 개발 가능할 것 같다고 얼버무렸던 점이다. 양치기 소년처럼 여러 번 개발 일정을 뒤로 미루고 한참 딜레이가 되어서야 앱이 출시되었다. 당연하게도 앱 출시 이후 예약되었던 투자 미팅은 흐지부지되었고, 내 머리는 펑 터져버렸다.
그제서야 일의 우선순위를 철저하게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다. 또 우선순위가 상황에 따라서는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도 그때 깨달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피터펫 헬스를 개발하면서 크게 중요한 기능은 아니지만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A일을 하루종일 하느라 가장 중요한 B 기능 구현이 딜레이가 되는 문제가 너무 심각했다.
이때 개발자로서, 팀원으로서 좌절을 정말 많이 했다. 직무 적합성에 대한 고민, 퇴사에 대한 고민, 개발 능력에 대한 고민이 주로 머릿속을 잠식했다. 서비스를 구현해야하는 개발자임에도 불구하고 팀과 회사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민폐만 되고 있다고 느꼈다. 개발 능력의 한계도 느꼈고 학생으로 돌아가서 기본기 공부부터 차근차근 쌓고 와야하는 거 아닐까 생각도 많이 했다.
그래서 실제로 대표님께 퇴사 얘기를 꺼내기도 했었다. 내가 파이리코에서 필요한 존재인가? 도움이 되는 존재인가? 이런 고민을 정말 많이 했고 결국 내린 결론은 “조금만 더 해보자”라는 것이었다.
지금 다시 피터펫 헬스의 기억을 떠올리면 너무나도 아찔하다. 한동안은 피터펫헬스 얘기만 나오면 극심한 스트레스에 치를 떨 정도(?)였다. 물론 그만큼 배우고 깨달은 점도 많기는 했다.
나름대로 긍정적인 부분을 꼽자면, 모든 프로젝트의 난이도를 피터펫 헬스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피터펫 헬스가 워낙 힘들었기 때문에 일이 힘들다는 기준이 확 올라갔다. 두 번째로 좋은 점은 피터펫 헬스처럼 프로젝트가 진행되어서는 안된다는 굳은 결심이(?) 생긴 것이다. 어떤 프로젝트이든 피터펫 헬스처럼 되면 안된다는 강박이 생겼고, 이게 가끔씩 느슨해진 나를 채찍질하기도 한다.
조금 뜬금없지만, 그 당시에 온앤오프 플레이리스트를 우연히 발견하고 하루종일 듣곤 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바로 노트북을 펼치고,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고 해뜰 때까지 무한 반복하면서 개발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 이제 온앤오프 노래만 들으면 괜히 짠하고.. 새벽에 몬스터 마시면서 개발하던 내가 떠오르곤 한다. 그때 반쯤 미쳐서(?) 온앤오프 노래 중에 “오늘도 수고한 나에게 축복을!” 이라는 가사가 있는데 집에서 그 노래가 나올 때마다 혼자 울면서 외치곤 했었다.. ㅋㅋㅋㅋ
파이리코의 와장창 시즌은 내가 멋대로 붙인 이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보다 더 찰떡인 이름은 없는 것 같다. 와장창 시즌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즌 1과 시즌 2로 나뉘고 그 사이사이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요약해서 말하려고 해도 워낙 큰 사건들이 많아서 몇 줄로 간추리기도 힘들다. 피터펫헬스는 나에게 있어서 절대 이렇게 하면 안된다..! 라는 교훈을 준 프로젝트라면 와장창 시즌은 나의 미래와 목표 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파이리코를 처음 입사하고 와장창 시즌 전까지 나는 개인의 성장을 중요시 했지만, 그만큼 노력은 크게 하지 않았고. 회사의 성장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상당히 수동적인 인물이었다.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하지 않았고, 적당히 회의에 참석하고 업무가 주어지면 별다른 생각없이 개발하기에 바빴다.
이곳에 오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인턴만 끝나면 다시 학교로 갈 줄 알았고, 두 번째는 1년 휴학만 끝나면 다시 학교에 갈 줄 알았다. 그러나 어쩌다보니까 회사와 학교를 같이 다니면서 파이리코에 계속 남게 되었다.
회사에 대한 애정은 분명 있었다. 내가 회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싶었고,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파이리코의 미래를 그려보았을 때 항상 나는 그곳에 없었고, 학교를 졸업한 뒤 대기업을 가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꾸준히 했다. 그렇게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1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2022년 3월 즈음, 빈님이 오퍼레이터 포지션으로 새롭게 들어오셨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던 전체 회의에 질문들이 오고가기 시작했다. 빈님이 내게 했던 첫 질문은 “SI가 무슨 뜻이에요?” 였다. 당시 파이리코에서 개발팀 채널 이름은 SI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SI는 보통 외주 관련된 일을 의미한다. 그러니 개발팀 채널 명이 develop도 아니고 SI인 것이 상당히 의아한 포인트였을 것이다. (지금은 SI팀이 아니라 product 팀으로 바뀌었다.)
빈님이 들어오고 파이리코의 바퀴는 덜컹거리며 굴러가기 시작했다. 4월 1일에는 전체 미팅이 진행됐다. 빈님을 제외한 파이리코의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려서 zoom으로 미팅을 진행했다. 당시 미팅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날이 선 말들이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고, 반대를 위한 반대 라는 생각이 드는 의견들이 꽤 있었다. 아닐까 다를까. 새벽에 장문의 슬랙이 하나 올라왔다. 그것은 파이리코의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슬랙이었다.
4월 1일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정신없이 학교 과제를 하다가 누구, 누구가 퇴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중에는 파이리코에 정말 오래 다닌 분도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불안해졌다. 나도 퇴사하게 되려나? 어떤 이유에서 퇴사하는 거지? 팀을 리빌딩 한다면 거기엔 내가 남아 있을까? 등등의 생각이 오고갔다.
태풍이 불고 있는데 그 곁에 서있는 느낌이었다. 파이리코 인재상이 만들어졌고, 고위드와 플렉스 등의 도입이 이루어졌다. 분명 엄청난 변화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체감을 많이 하지는 못했다. 당시 개발 멤버들은 역삼 사무실에 있었고, 나머지 멤버들은 강남 사무실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 파이리코가 어떤 상황이고, 어떤 분위기이며 무슨 변화들이 이루어졌는지 알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폭풍이 가라앉고, 나는 강남 사무실로 출근하게 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와, 정말 많이 변했구나. 변하고 있구나.
팀이라는 개념이 정립이 되었고, product에 대한 align, 팀원들간의 sync 맞추기, meeting의 간소화 등등. 변화의 속도는 빨랐고, 학교를 다녀오며 그 변화를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PO이신 밍밍님은 1:1 meeting을 통해 계속 나의 상태를 체크인했다. 아무래도 무언가가 변화할 때 긍정적인 기대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파이리코는 집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기둥을 다시 세우는 느낌으로 공사를 하고 있어서,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나는 파이리코의 변화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파이리코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게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파이리코의 화창한 미래가 조금씩 보였다. 그동안은 우리끼리 열심히 해보지만, 결국 우물 밖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으니 우물 안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른 회사에서 치열하게 경험을 쌓고 온 빈님의 주도와 헌태님의 결단으로 파이리코가 가지고 있던 벽들이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와장창 시즌1 동안 생긴 긍정적인 변화는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데, 그 중에서 생각나는 것만 몇 개 쓰자면 다음과 같다.
온보딩 체계가 잡힘
product 팀과 PO의 탄생
Sync와 Align의 중요성 인지
sprint 도입
weekly meeting의 간소화
Lesson learned의 중요성 인지
우선순위와 DRI의 중요성 인지
lean하게 움직이는 것에 대한 중요성 인지
이때 거의 처음으로 팀의 성장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동적인 인물에서 한층 더 적극적으로 변했고, 의견도 조금씩 제시하곤 했다. 그리고 항상 부족했던 업무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충족되는 느낌이 들었다.
여름이 되기 전, 모든 멤버들이 서울에 모여서 워크샵을 다녀왔다. 그동안 파이리코에서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고,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진행되는 칭찬 타임. 너무나 매끄럽게 흘러갔던 OKR 찾는 과정까지. 맛있는 술을 먹으면서 화기애애하게 워크샵이 진행되었다. 정말 따듯하고 유쾌한 분위기였다.
문뜩 이 멤버들과 함께라면, 지금 파이리코가 가려고 하는 길을 보면, 그 미래에 나도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이리코의 미래가 기대되었고, 앞으로 일들이 정말 재밌을 것 같았다. 함께 고군분투 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내가 빠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때를 기점으로 진지하게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나는 뭘 하고 싶은건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야할지 결정해야하는 순간이 온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고민은 빈님과 1:1 meeting을 진행하면서 더 깊어졌다.
와장창 시즌 동안, 팀이 리빌딩 되는 것과 별개로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을 정말 치열하게 했다. 그 시발점은 테스트 체계와 코드리뷰의 도입이었다.
2022년 초부터 반려동물 안심입양 서비스인 밋펫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밋펫 파트너스 앱의 첫 QA는 그야말로 끔찍했다. 테스트 앱 설치 과정부터 삐그덕하더니 로그인에서 강제종료가 되는 문제가 있었고, 주요 기능이 동작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 외에도 나타난 버그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었다. 수치스러운 감정 때문에 그 날 어떻게 퇴근을 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뒤로 테스트 관련 문서를 계속 찾아봤다. product 회의에서 테스트 체계를 정립하기 위한 의견들이 많이 쏟아졌다. 테스트 툴인 xray가 도입되었고, 테스트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product test → 전체 test 순으로 테스트 체계가 좀 잡히고서야 개발 일정이 안정적으로 산정되었다.
이때 Jira도 함께 도입이 되었다. 처음에 테스트 툴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Jira의 존재를 알았을 때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이미 노션으로 우선순위를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Jira를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가 예전 회사에서는 Jira를 사용했다는 빈님의 말을 듣고 혹시나 해서 주변 개발자 분들에게 Jira에 대해서 물어봤다. 놀랍게도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Jira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의문이 들어서 Jira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관심이 없었을 때는 그냥 넘어갔던 기능들이 유용하게 보였고, 1년 반 동안 개발을 하면서 Jira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그만큼 Jira는 개발 도구로써 매우 유용했고,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사용할 정도로 보편적인 툴로 보였다.
Jira의 도입과 테스트 체계를 잡으면서 product 팀은 크게 성장했지만, 나는 멘탈이 많이 나가있었다. 1년 반 동안 뭐했지?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 와중에 다른 회사의 개발자분과 멘토링을 진행했는데, 우리가 코드리뷰를 안한다는 얘기를 듣고 그 분이 크게 놀라셨다.
Jira와 마찬가지로, 주변의 다른 개발자 분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코드리뷰를 하고 있었고, 그동안 나는 코드리뷰의 개념을 잘못 알고 있었다. 다같이 모여서 공식적으로 코드를 뜯어보는 게 아니었다.(물론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드물다) git에서 비동기적인 방법으로 코드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코드리뷰였다.
1년 반 동안 코드리뷰를 할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지 않았던 나 자신이 정말 정말 정말 부끄러웠다. 그리고 내가 개발자로서 파이리코에 와서 과연 성장을 했는가? 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열심히 했다고는 말할 수 있었지만, 과연 그것으로 끝인가? 열심히 달렸다고 해서 성장 속도가 빠른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지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코드리뷰와 같이 다른 회사에서는 당연하게 하는 것들을 알려줄 수 있는 시니어 개발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와중에 빈님과 7월 22일에 1:1 meeting을 진행했다. 그때 내가 했던 얘기가 “성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면 느린 속도로 성장하고 있던 것 같다.” 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누가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눈앞에서 빈님이 “예.” 라고 말했고, 그때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부끄럽지만 매일 밤마다 울면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서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지하철에서도 계속 그 생각이었고, 화장실에서도 틈만 날 때마다 생각을 많이 했다. 정말 근본적인 질문들을 많이 던졌던 것 같다. 나는 왜 개발을 하고 있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지? 내가 달리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이지? 나는 개발을 하는 게 맞을까? 내가 정말 성장하기 위해 그만큼 투자할 수 있을까? 학교는 왜 다니고 있지? 이대로 학교와 회사를 병행하는 게 맞을까? 등등등.
내가 확신을 가졌던 것들이 와르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게 정말 힘들었고, 그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이 빈님이 숙제로 내준 “3년 후 이력서 쓰기” 였다.
무작정 달리기만 하던 나에게 방향이 생겼다. 즉, 성장하고자 하는 목적이 생겼다. 여러 고민을 거듭한 결과. 이제는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과 방향이 좀 생긴 것 같았다.
목표가 생기니까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은 정말 명확했다.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빈님이 얘기했던 “Life matters but, work matters too.”라는 말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워라벨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회사에서 내가 해야하는 것들도 점차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 분위기는 화기애애 했고, 일은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재밌었으며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워나가는 느낌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던 차에 와장창 시즌2가 진행되었다. 회사에 아주 오래 있었던 초기 멤버이자 핵심 멤버가 나간다는 말이 들렸다. 꽤나 충격이었다.
왜 이렇게 급작스럽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다시 와장창 시즌이 시작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당시 회사에는 정말 여러 가지 시선들이 혼재해 있었다. 서로 다른 말들이 계속 오고가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분노와 불신의 감정들이 파이리코를 강타했다.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 혼란 속에서 내가 느낀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었다. 대화의 부재가 결국 오해를 낳았고 그것이 점차 쌓이면서 불신이 되었다. 그리고 한 번 불신이 쌓이면 다시 신뢰를 쌓이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 와장창 시즌2를 겪으면서는 나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한 번 더 점검하고 어떻게 소프트 스킬을 쌓을 수 있을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팀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소프트 스킬을 갖추는 게 정말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사실 그 외에도 2년 동안 자잘하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후회도 정말 많았고, 성취감도 가끔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단 한 번도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개발했을 때 뿌듯함 또는 자랑스러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짠 코드에 대한 부끄러움이 압도적으로 컸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씩 내가 맡은 프로젝트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려고 한다. 팀이 성장하는 속도를 따라가면서 개인의 성장도 함께 이루어가고 싶다. 물론 지금 파이리코는 pmf를 찾는다고 고통스러운 가시밭길을 헤쳐나가고 있지만, 그 과정도 내년에는 웃으면서 그때 많은 것을 배웠지 라고 회고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두서 없이 적었던 2년 간의 회고는 부족한 나와 함께 해주었던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마무리 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