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머리 관리를 위해 펌을 따로 하지 않고 커트만 한 후 스타일링을 하고 있다. 중학교 2년을 제외하고는 늘 허리까지 긴 머리였는데 언젠가부터 생머리보다는 셋팅펌을 하거나 끝부분은 살짝 안으로 넣는 c 컬 머리를 하고 다녔다. 펌을 할 때는 일 년에 2번 정도는 미용실에서 3시간 이상을 앉아있어야 하는데 미용실을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한 번씩 큰마음을 먹고 가야 하기도 했고 펌이 잘 나올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다음 펌을 할 때까지 계속해서 신경 쓰이는 것이 너무 불편했었다. 셋팅펌은 한번 한다고 해서 웨이브 진 머리가 늘 자동적으로 나온다기보다는 손질하기가 용이하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머리 결의 상태나 숱의 정도, 길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와 같이 긴 머리에 숱이 많다면 컬이 잘 나와도, 잘 나오지 않아도 결국은 스스로가 매일 스타일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이슨 슈퍼소닉이 처음 나왔을 때 머리를 말리기 위해 두 개의 드라이를 썼던 내게는 혁신적으로 편리한 제품이었고 전작에 대한 만족도 덕분에 다이슨에서 에어랩이 출시되면서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펌 대신 에어랩을 사용하기로 했다.
에어랩은 나의 경우 해외에 나가면 그 빈자리가 너무 커 여행용으로 하나 더 구매할지를 고민 할 정도로 꼭 필요한 물건이다. 코로나 전 마지막 여행지에서 변환 플러그를 챙겨 갔음에도 작동하지 않아 일주일 내내 너무나 난감하고 무엇을 입어도 스타일링이 되지 않아 굉장히 불편했다. (다이슨 에어랩이나 슈퍼소닉 모두 변환플러그로는 작동되지 않는다. ) 대다수 호텔의 드라이기로는 내 머리가 잘 마르지도 않을뿐더러 머리가 마르고 난 후에 뻑뻑한 느낌이 불편해 머리를 말릴 수 있는 헤드와 롤 헤드 하나와 함께 국내 어디를 가든 에어랩을 꼭 챙겨간다. 에어랩은 고데기로 세팅한 것처럼 완벽한 컬이 아니라 저 사람은 머리에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 정돈되었고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연출하는 제품이다. 고데기로 열심히 말아준 머리, 가 아니라 미용실에서 관리를 받고 드라이를 받은 느낌이라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처음에는 매장에서 가르쳐 준 대로 몇 가닥씩 바람으로 기계에 말리게 해 사용했지만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는 데다 (나는 40분이 넘게 걸렸었다.) 그렇게 시간을 투자한 것 대비 길고 무거운 내 머리에는 컬이 너무 금방 풀려 굉장히 실망했는데 내 머리에 맞게 스타일링 하는 방식이 손에 익고 나니 스타일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이내이며, 내가 원하는 정도의 컬은 여름 장마철을 제외하면 만족할 만큼 유지가 된다. 나는 머리를 크게 두 구간으로 나누어 양 갈래로 얼굴 앞쪽으로 두고, 나누어진 쪽에서 뒤쪽부터 넓게 잡고 끝부분만 말아 준 후, 스타일링이 된 쪽은 얼굴 뒤 쪽으로 넘겨준다. 얼굴에 가까운 쪽은 두 가지 롤을 이용해서 인컬이나, 아웃컬로 조금 더 웨이브를 잡아주어 완성한다. 긴 머리이지만 전반적으로 여유 있고 자연스러운 정도의 컬로 공기 중 습기가 많은 여름을 제외하고는 빠르고 쉽게 완성된다. 여름에는 습도가 높아 컬이 축 처지거나 윤기 나는 연출이 어렵고 어떤 방법으로도 스타일링이 쉬운 편은 아니라 가능하면 머리를 묶어 지저분하게 보이지 않게 한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에 맞게 사용법을 익히면 이만큼 쉽고, 손상도 이는 적으면서, 만족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기기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매일 사용하면서도 머릿결이 상하는 느낌도 전혀 없어 정말 만족하는 제품이고 코로나 이후에 다시 여행을 자주 가게 된다면 자주 가는 나라의 전압에 맞는 제품을 하나 더 구입할 것이다. 높은 가격의 제품이지만 충분히 그 기능이 훌륭하고 펌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길게 보면 두 개를 산다고 해도 이득이다. (변명이 아님을 정확히 해 둔다.)
아무리 옷을 잘 차려입어도 머리가 단정하지 않으면 전체 스타일링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타고난 피부는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없지만 머리는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그래도 자신에게 잘 어울리게 정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의 시간만 투자하면 단정하고 깨끗한 모습을 만들 수 있다. 커트를 할 때는 숱을 치는 곳은 가지 않고, 불필요한 시술이나 처치를 권하는 곳은 가지 않는다. 나는 20년이 넘게 한 곳에서만 머리를 하고 있는데 거의 늘 층이 없는 일자 생머리에 염색은 하지 않고 끝이 동그랗게 말리는 c컬 생머리를 유지하다 에어랩을 사용하면서 커트만 하고 있다. 염색이나 펌을 하는 대신 좋은 샴푸와 린스를 사용하고, 예전에는 여러 가지 제품으로 트리트먼트도 즐겨했지만 요즘은 트리트먼트를 하지 않고 좋은 기본 제품으로 관리한다. 머리는 타올드라이를 할 때 비벼서 말리지 않고 두피 위주로 물기를 눌러 제거한 다음 수건으로 머리를 말고 오래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드라이를 하는데 숱이 많은 정수리 뒤쪽 아래부터 바람을 넣어 머리를 말려준다. 어느 정도 수분이 날아가면 헤어오일을 발라주는데 최근에는 시슬리의 헤어 오일을 사용하고 있다. 헤어오일은 시슬리, 오리베, 케라스타즈 크로놀로지스트 퍼퓸 오일을 좋아한다. 오일은 손바닥에 두세 번 펌핑을 해 양손으로 비빈 후 끝 쪽 위주로 발라주고 남은 양만 전체를 쓸어주고 동절기에는 시슬리의 더크림을 오일과 섞어 바른다. 일회성 마스크나 앰플 사용보다 매일의 케어가 더 효과적이다. 빗은 사용하지 않다가 요즘은 메이슨 피어슨의 핸디형을 매일 애용 중이고, 여행 시는 포켓 사이즈를 꼭 챙긴다. 머리를 잘 빗어준 후 다이슨 슈퍼소닉으로 80%가량 머리를 말려준 후 에어랩으로 스타일링을 한다.
스타일링 기기나 제품도 중요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샴푸와 린스이다. 좋은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이 꼭 가격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좋은 제품은 가격적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좋은 제품을 찾게 되는 것은 그 비용에 합당한 만족도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샴푸와 린스는 사용하는 당시의 좋은 기분 때문인가, 하면 그렇지 않았다. 어떤 샴푸를 썼는지에 따라 스타일링이 더 잘 되기도 하고, 잘 안되기도 한다. 화장품 또한 마찬가지인데 좋은 샴푸는 쓰면 쓸수록 두피와 머릿결이 일정한 컨디션으로 유지되면서 스타일링을 하면서 불만이 없다는 것을 문득 느끼게 되고, 반대의 경우는 조금씩 틀어지면서 점점 이상적인 상태에서 멀어져 어느 날은 기껏 한 스타일링이 얼마 되지 않아 금방 풀려버린다던가, 부스스하다던가, 혹은 스타일링을 할 때부터 탄력적인 컬이 나오지 않는다. 두피 상태가 좋으면 모발 상태도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모발 자체에 영양과 수분감이 잘 차 있고, 좋은 오일을 사용해서 그 표면을 코팅해 두면 마찰이 일지 않아 윤기 나고 차분해 보이며 스타일링을 했을 때 컬이 더 탄력 있게 나오고 지속 기간 또한 길어진다. 모발 상태가 좋지 않으면 펌이든 염색이든 고르게 나오지 않는 것처럼 스타일링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나이가 더 어릴 때는 허영심에 비싸고 좋은 것을 쓰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런 심적 만족감보다는 좋은 제품을 사용했을 때 확실히 스타일링도 훨씬 쉽고 유지도 잘 된다는 것을 느낀다. 다만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빠르게 씻고 빠르게 헹구어 버리면 그 효과를 다 느끼기는 어렵다.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도 아무리 비싸고 좋은 것이라도 바빠서 흡수가 되기 전에 그다음 것을 바르거나 대충 빠르게 바르면 며칠만 지나도 정성 들여서 바르고 흡수될 시간이 천천히 있을 때 관리한 상태와 다르다. (피부가 좋은 사람들은 해당 사항이 없다. 그들은 그냥 피부가 매우 좋고 예쁘다.) 머리 관리도 마찬가지이다. 가능하면 손상시킬 행동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고, 좋은 제품을 구매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사용할 때 정성 들여 사용하고, 꾸준하게 관리를 해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시키는 것이 결국은 스타일링을 위한 비용이나 시간을 아껴준다.
샴푸나 린스에 늘 관심 있는 편이라 여러 가지를 사용해 보았다. 케라스타즈는 두피와 수분 샴푸, 두피와 윤기에 좋은 샴푸와 같이 두 가지 샴푸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손상모 전용 트리트먼트를 린스 대신 사용했고, 아베다의 손상전용, 인바티, 존 마스터스 오가닉도 한동안 오래 사용했다. 조 말론의 샴푸, 린스도 의외로 만족하며 사용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잔향이 오래 기분 좋게 지속되었고 다비네스의 샴푸, 린스 OI 와 퓨리파잉 라인도 나쁘지는 않았다. 요즘은 시슬리의 샴푸, 린스와 오일을 사용하고 있고 매우 만족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시슬리 제품을 사용하기 전에 가장 좋아했던 제품은 오리베의 시그니처 라인이었다. 구매할 수 있는 웬만한 샴푸와 린스는 다 써 보았는데 딱 한 가지 무조건 다시 쓸만한 것이 목마르던 차 친구가 생일 선물로 오리베의 샴푸와 린스를 선물해 주었다. 오리베 샴푸와 린스는 지금까지 사용한 그 어떤 제품보다 완벽하게 좋은 제품이었다. 고급스러운 제품 외관이나 향, 질감 모든 것이 완벽했고 효과 면에서 다른 제품들과 차원이 다르게 만족감이 있었다. 오리베 제품을 사용하기 전에는 헤어 마스크나 앰플을 종류별로 구매해 사용했었는데 오리베는 컨디셔너만 사용하더라도 매우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오히려 마스크를 구매했을 때는 펌프식이 아니라 떠서 사용해야 하는 것의 불편함 때문에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친구가 선물을 해 준 이후로는 한동안 계속해서 브랜드를 바꾸지 않고 몇 년간 오리베 제품만 사용했는데 안타깝게도 일본의 카오 Kao 사에 인수된 이후로 계면활성제 성분을 배제한 새로운 포뮬라 (Sulfate-free)로 출시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제품 품질에 변화를 느껴 사용을 중단했다. 너무 익숙해져서, 혹은 두피에 내성이 생긴 것 인지 싶어 검색을 해 보니 해외 리뷰에서도 나와 비슷한 증상에 대한 불만이 매우 많은 것을 보아 품질에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고 정말 좋아하던 제품이라 지금도 정말 아쉽다.
나에게 그 샴푸와 린스를 선물해 준 친구는 나의 20대에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친구이다. 그 친구는 내가 내 생활을 가장 많이 공유한 친구이고, 가장 자주 연락하고 가까이 지낸 친구 중 한 명이었고, 내가 친구를 사귀는데 얼마나 능숙하지 못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해 준 친구이다. 나는 사실 내가 굉장히 사회성이 좋은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려서부터 밝고 적극적이라는 이야기를 늘 들어왔었고 어디서나 적응을 잘했고, 대부분의 사람들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면서 지내고 있었고, 친절하고 상냥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집안 어른들-주로 엄마-로부터 날카롭고 못됐다는 이야기를 늘 들었음에도 그 꾸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중학교 때 유학을 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나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함께 지내던 이모가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날개 돋친 듯 승승장구하던 나는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가족들과 잘 어울려 지내지 못했고, 친구들과는 이미 너무 정서적 거리가 멀어져 있었고, 나는 너무 많이 변해있었다. 내 상황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 이상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나를 지탱해 주던 것들이 완전히 없어진 후로 나는 굉장히 긴 방황을 했다. 사실 처음에는 나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온 친구와 뭣도 모르고 친구가 되었다. 누구와도 잘 지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이였고, 친구는 늘 나에게 잘 대해주었기 때문에, 정말 어려서 옆집 친구와 지내듯이 잘 지내려고만 했다. 다만 어려서 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성장기에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이모부의 말씀대로, 나는 친구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하고 속을 숨기려고 하는 것이 잘못되었으며 진정한 친구는 내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에, 가능한 모든 것을 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는 직장을 구하고, 배우자를 만나고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던 나와는 다르게 시간의 흐름과 함께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으로 다른 모두와 같이 어른이 되어갔다. 나는 정확하게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들을 종종 느꼈다. 무어라 말하기에는 나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몰라 벌어지는 사이를 무엇으로 이어 붙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 극단적이고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수년간 이어진 애매한 내 감정과 마음은 그 후로 한참이 지나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냥 잘해주는 것은 좋은 친구가 아니었다. 내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 솔직함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착각이었다. 내 감정에 대해 솔직한 것이 친구이고 너그러운 것이 친구이며 편안한 사람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뭣도 모르고 덤빌 것이 아니라 내가 벗을 얻고자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나 자신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 사건 있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배웠다. 내가 잘 하는 것, 쉬운 것의 노력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노력, 쉽고 편리하지 않은 부분의 노력이 필요했다. 내가 날카롭고 까다로운 인간이지만, 설사 친구가 실수를 한다 한들 악의 없는 마음이라 믿고 의심하지 말았어야 하고 그러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친구에게 솔직하게 그 당시에, 원망이 아니라 있는 사실 그대로에 대한 말을 정확하게, 잘 전달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인간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성장 배경도, 나 자체도 평범하고 사회적으로 쉽게 융화되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다. 내 부모 또한 좋은 쪽으로도, 좋지 못한 쪽으로도 보통의 그 나이의 한국의 많은 어른들과는 다른 사람들이다. 나는 내 주변 어른들의 인간관계를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친구를 사귀는데 미숙한 것은 내 성장 환경이 독특한 요소가 많아서도 있었지만 내게 잘 활용할만한 롤모델이 없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알던 것보다 아빠를 더 많이 닮았다. 아빠는 누구에게나, 특히 나이가 많은 분들로부터, 정말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잘했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아빠가 왜 저러는지 아리송할 정도로 아빠의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환자들에게도 최선을 다해 헌신적으로 잘하는 사람이었다. 성장기를 넘어가면서 완전히 멀어져 버린 부녀간의 사이, 그리고 나쁜 기억에 가려져있던 아빠의 좋은 기억 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니 내가 내 주변 사람들과 그나마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이유와,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을 이렇게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아빠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것이 또한 나의 치명적인 단점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희한하게도 그것을 깨달은 이후로 그 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해답이 보였다. 나는 나 자신을 잘 몰랐지만 아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이 상처받는 것을 막기 위해 아빠에 대해 이해하려고 무던히 애썼기 때문에, 오랜 시간에 걸쳐 생각해왔기 때문에, 무엇보다 내가 나 자신을 보는 것보다 감정적으로 멀어졌기 때문에 아빠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빠가 왜 이렇게 까지 나쁜 사람이 되었는지 정확하게 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아빠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과 가장 싫어하는 것,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배신감. 친구가 내게 배신감에 치를 떨 만한 잘못을 한 것은 없었지만 나의 가장 취약하고 약한 감정은 작은 자극에도 건드려졌다. 나는 자꾸만 친구에게 서운해졌고 누군가에게 서운해하는 나 자신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내 인간관계에 균열이 있다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아빠는 아빠가 19살이 되던 해부터 아픈 엄마 밑에서 자랐다. 성격과 성향이 다른 나머지 두 형제들 사이에서, 맨손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간 날카롭고 냉혈한 아버지 아래에서 아빠의 평생은 마른 강바닥 같았다. 아빠에게 완전히 의지하는 할머니에게, 아침저녁으로 찾아가 할머니 발 밑에 앉아, 오십의 나이에도 마치 어린아이처럼 할머니를 최고로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것으로, 할머니의 아픔을 보상해냈다. 아빠는 정말 애를 많이 썼다. 친구에게도, 형제들에게도, 화답 없는 관계에서도 최선을 다해 마음을 내어주었다. 아빠는 사랑을 받아 마음을 채우려는 사람이고, 엄마는 자신에게 집중해서 자신을 채우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과는 방향이 다른 엄마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어려워 멀리하는 우리에게, 아빠는 분노했고 결국은 그 배신감이 우리 모두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아빠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아빠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없던 시절에는 우리에게 화를 내는 아빠는 악역이고 엄마는 피해자처럼 보였다. 내가 다섯 살이었을 때 유치원에서 아빠의 날 행사가 있었다. 그날 아빠는 전날부터 엄마가 만류했던 가죽재킷을 굳이 입고 가겠다고 해 엄마가 말렸던 기억도 선하다. 다른 아이들이 다 아빠와 웃으면서 재미있게 놀 때 나는 잔뜩 얼어서 혼자만 굳은 얼굴로 유치원에서 준비한 활동을 절반도 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아빠가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 쟤만 아빠와 놀지 못하더라, 다른 아이들이 다 웃고 즐겁게 놀고 있는데 우리 아이만 그러지 못하더라고 했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늘 잘 먹고, 잘 놀고 활발하던 아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얼어붙은 모습을 보고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내가 그때 아빠를 쳐다보고 활짝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면 지금의 우리와는 많이 달랐을까. 나는 아빠가 할머니로부터 감정적인 독립을 하지 못하고 가정을 꾸린 것이 우리의 불행의 시작이라 생각했었다. 아빠가 성숙하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아무리 양분을 주고 물을 채워 넣으려고 해도 갈라진 바닥 사이로 말라비틀어져 결국은 황량하기 그지없는 마음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었고, 모두가 좋아했고, 어디서나 인정받던 아빠는 내가 기억하던 모습과 많이 멀어졌다. 사람들은 아빠가 쏟았던 애정과, 노력과, 시간을 기억하지 않고 배신감에 돌아선 등에 손가락질을 한다. 나 하나라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화해를 위한 사랑의 마음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에 대한 인정과 그래도 마지막 하나의 창문 정도는 열어주어야, 아빠의 남은 인생이 그 전보다는 찢어지게 아프지는 않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배신감이라는 감정은 타인의 잘못이 있더라도 내 옹졸한 마음과 잘못된 판단에서 또한 나온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수용하고 관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었다면 원망을 쌓을 것이 아니고 미움이 쌓이기 전에 좋은 말로 내 마음을 전하고 해결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의 해결이 아니라면 방향을 수정해서 서로 간의 관계가 더 망가지지 않도록 끝까지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야만 했다. 이미 감정이 상해 그대로는 전할 수 없어 빙빙 돌려야 할 필요 없이, 그 순간에 대화하고 소통했어야 했던 것이다. 나는 아빠와 찍어놓은 판박이처럼 닮았다. 나는 내가 많은 사랑을 받고 싶기 때문에 많은 애정과 관심을 표현했다. 그 애정과 관심의 표현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후회 없이 나누고, 감정이 상하기 전에 좋은 말로 생각을 전달하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만 내가 쏟은 노력의 방향이 올바른 것이라는 것을 늦게 깨달았다.
나와 좋아하는 것이 워낙 많이 겹치는 친구라 검색을 통해서 혹시나 이 글을 찾게 된다면, 글을 읽을 친구의 당혹감이 상처가 될까 써둔 글을 포스팅하지 않았다. 오늘 친구가 어쩌다 읽던 글이 내 글인 것 같았다는 연락을 해 왔다. 친구는 내가 쌓아왔던 배신감 이상의 당혹감과 더 큰 배신감이 들었을 텐데도 내 손을 놓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친구가 왜 나를 놓지 않는 건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도 사실은 왜 나를 이해해 주는 것 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난 몇 년의 시간 속에서 많은 것을 생각했고, 정리했으며 배웠기 때문에 그동안의 시간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진실함을 잊지 않아야겠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나는 요즘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그 시간의 내 모습을 복기해본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고 부족한 나 자신을 성장시키고 싶어서 내 모습을 돌아본다. 사실 이 과정이 나에게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과의 시간에 대해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내가 미처 다 몰랐던 배려 덕분에 내가 내 행동을 살피는 것보다 함께한 시간 자체를 즐길 수 있었을 것 이기에,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 더없이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도 그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싫어한다기보다 나를 배우고,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좋은 기회와 만남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내가 그 시간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친구에게는 그만큼의 진심을 담은 마음으로 보답하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만남에는 연습과 공부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나쁜 감정에 빠지지 않고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으면서 언젠가는 사회성이 없는 나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어른이 되었다고, 바다같이 넓은 사람은 아니어도 마른 강바닥 같은 삶은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