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얏트 호텔을 좋아한다. 지금은 해운대 그랜드조선이 되어버린 곳은 원래 오랫동안 하얏트가 있었다. 옛날에는 호텔이 지금만큼 북적이거나 붐비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한적하고 조용했다. 키가 작을 때는 더 거대하게 높아 보였던 층고의 조식을 먹을 수 있는 라운지가 있었고, 유리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잔디밭을 넘어 바닷가가 보였다. 작은 뒷마당에 세워져있던 세모 모양 돌 장식에서 놀이터처럼 놀았고 집에 가기 전에는 델리에 들러 내 손바닥만 한 딱딱한 초코 쿠키를 꼭 사 갔는데 그때의 추억이 지금까지 쿠키에 대한 내 취향을 정한 것 같다. 웬만하면 엄마가 절대 주지 않았던 베이컨을 마음대로 (잔소리를 피하면 3조각쯤) 먹을 수 있었고 아빠가 한식을 담아오면 왜 여기서 꼭 밥과 반찬을 가지고 오냐고 엄마가 핀잔을 주었던, 나는 오믈렛이 별로인데 아빠는 꼭 오믈렛을 나와 함께 세트로 먹고자 했고 따라서 취향에 맞지 않는 오믈렛을 요리사 아저씨가 만드는 것을 뚱한 표정으로 기다려야 했던 그때가 제일 속 편한 시절인 줄 그때는 몰랐다. 해운대의 하얏트 호텔이 지금의 그랜드조선으로 바뀌기 전 노보텔로 바뀌었을 때 거의 모든 시설은 그대로인데 완전히 바뀌어버린 분위기에 하얏트라는 이름이 주는 분위기를 실감했었다. 주말마다 최소 경주로 장거리 여행을 가야만 했고 휴가철에는 국내외로 몇 번의 휴가를 데려가려 한 아빠 덕분에 여러 곳을 다녀 보아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지금은 사라진 해운대 하얏트였다. 지금 가도 멋진 제주 신라 호텔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국내에 그만큼 이국적인 분위기의 호텔은 그 당시에 전무했지만 매우 활발한 어린이였던 내게도 넓은 수영장이 있는 것은 좋았어도 하얏트 호텔만이 주는 그 분위기가 있었다.
파크하얏트 서울이 오픈한 것이 2000년대 초반이었는데 그 당시로서는 매우 놀라울 정도의 세련됨이 아니었을까 싶다. 20대 초. 중반 외박 따위 상상할 수도 없을 때 가장 가보고 싶었던 호텔은 파크 하얏트였다. 사람들은 내가 의외로 모범적인(?) 것을 굉장히 신기해하고, 엄마는 그것이 다 어려서부터의 교육 때문이라 민망하게도 자랑을 하는데 절반은 보고 자란 것이 지루한 덕, 절반은 갈등을 싫어하고 피하려는 내 성격 덕이라고 본다. 이제 그 파크하얏트가 어느덧 오픈한지 20년이 다 되어 간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부산에 파크하얏트가 처음 생겼을 때 집 앞에 무려 파크하얏트라니,라고 생각했는데 객실과 스파 이외에는 기대만큼 이 아니어서 생각만큼 자주 방문하지는 않았다. 호텔이 오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좋아하는 것이 비슷했던 친구가 묵어보고 싶어 해서 우리 둘 모두 거의 처음으로 (?) 외박을 각자 부모님의 눈치를 보아가며 감행했었는데 그때의 우리는 마음에 걸리는 것은 많았어도 낭만이 있었던 것 같다. 친구가 파크하얏트의 망고 빙수를 좋아해서 집이 멀었지만 자주 놀러와 함께 빙수를 먹으러 갔었다. 코앞이 집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친구를 집에 한번 초대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된다. 파크하얏트 부산은 아파트 사이에 덩그러니 놓여있어 위치가 의아했지만 정면이 바다라 개방감이 있어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호텔의 낭만은 위치와 주변 생활권에서 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파크하얏트는 신기하게 그 만의 매력이 또 있는 곳이라, 그래서 파크하얏트를 또 굉장히 좋아한다.
파크하얏트의 특징은 도심 속의 작은 부티크 호텔이라는 것이다. 주변 생활권과 조금 떨어져 거리감을 주는 것 대신 주변 환경 속에 있지만 내부에 들어가면 외부와는 차단된 다른 세상 같은 느낌을 선사하고 그것이 파크하얏트의 매력인 것 같다. 직접 숙박해 본 파크하얏트는 국내 두 곳인데 모두 나름의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부산에서 가장 좋아하고 숙박을 추천할 만한 호텔은 파크하얏트이다. 식사는 많이 아쉬운 편이지만 약간은 애매한듯한 위치에도 가장 최근에 생긴 시그니엘보다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취향도 중요하겠다, 나는 롯데계열 호텔은 크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그럴 수도. 시그니엘 부산은 로비에서는 너무 송구스러울 정도로 친절하시고, 객실은 뭐랄까, 음. 여러모로 아쉽다고 생각했다. )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삼성동은 여름에 방문하기에 좋은 동네라고 생각하는데 지하철로 쉽게 이동해서 지하도를 이용해 파르나스, 코엑스와 현대백화점을 방문해서 필요한 것을 구매할 수 있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객실에서 시간을 보내기에 무척 좋았다. 여름에 방문해 바로 앞 현대백화점에서 과일을 구매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한 번씩 서울에 방문하고, 이동할 차량이 없는 나에게 파크하얏트 서울에 숙박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여름이었다.
작년 여름, 스탠다드 도심 전망 타입의 객실의 1호 라인에 묵었다.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파크하얏트는 이상하게 '전망'을 이유로 로비로 올라가서 체크인 후 다시 아래층 객실로 이동해야 하는 시스템이라는데, 체크인을 할 때 전망이 보이지는 않는다만 모든 직원분들, 특히 프론트 데스크의 남자 직원분께서 너무나 친절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바로 그전에 방문했던 포시즌스의 프론트 데스크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라 친절하신 직원분의 품격이 더욱 크게 와닿았던 듯하다. 1호 객실은 코너에 있는 객실이라 두 면이 유리로 되어있어 조금 더 개방감이 느껴진다. 룸 레이트가 높은 편이지만 그랜드 하얏트의 디럭스 객실보다 훨씬 큰 느낌이다. 코너 객실을 좋아하기 때문에 예약을 할 당시에 선호 사항에 코멘트를 남겼고 원하는 객실을 배정받았다. 우선 파크하얏트에 대한 일반적인 불만(?)으로는 숙박하는 손님에게도 1박당 주차비를 부과한다는 것과 통 유리창으로 다른 객실이 훤히 보인다는 것. 내 경우는 차를 가져가지 않으니 주차는 상관없지만 발렛 주차가 가능한 제휴 신용카드를 이용하면 괜찮을 것 같고, 다른 객실이 보이는 문제야, 그 환경에 맞게 적응하여 굳이 가까이 가서 보지 않거나 블라인드를 내리는 방법이 있겠다. 나는 그 두 가지의 불편함은 크게 느끼지 못했다. 물론 보이지 않는다면야 더 좋겠지만, 건물의 구조상 보이는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객실에서 보았을 때 뷰가 트여있는 것을 좋아하고, 개방감이 느껴지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서인지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또 다른 불만은 음식의 맛이 없다는 것인데..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오히려 굉장히 만족했다. 한 여름에 여기저기 나가는 것보다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좋고, 전혀 기대가 없었던 스테이크가 맛있었기 때문에 약간 퍼진 파스타면 도 맛있게 먹었다. 룸서비스는 기분을 내려고 먹는 것이고 미식을 하려고 먹지 않았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으니 만족했다. 저 날은 1박당 이솝의 핸드,바디 클렌저를 증정하고 20만 원의 다이닝 크레딧을 주는 패키지였는데 한 번에 다 사용해야 한다고 했고,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부릴 때라 레스토랑에 내려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푸짐하게 시켜서 아주 잘 먹었다. 체크인을 하고 과일과 간식을 구매하러 간 현대백화점에서 미니 슈크림과, 자주 구경 가는 와인코너에서 주스에 가까운 스파클링 와인인 벨리니를 구매해 갔는데 예쁘고 맛있어서 즐겁게 보냈다. 객실 침대에서 보았을 때 앞으로 쭉 들어가 오른쪽으로 돌면 욕실이 있었고, 침대에서 보이는 벽면 뒤쪽이 파우더룸처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연식이 느껴지는 곳이 군데군데 있었고, 콘센트에 문제가 있는지 챙겨간 에어랩의 작동이 원활하지 않아 약간의 걱정이 되었지만 큰 불만 없이 사용했다. 어메니티로 제공되는 르라보 제품을 워낙 좋아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 머리가 길다 보니 가능하면 샴푸, 린스의 트래블 사이즈를 챙겨 다니는데 좋아하는 르라보 제품이니 가볍게 가서 잘 사용했고 충분히 남아 챙겨와서 잘 사용했다. 욕실은 샤워부스와 넓은 욕조로 충분한 공간이 있어 반신욕을 하면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객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에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침대는 하얏트 계열답게 편안하지는 않았다. 다음에 투숙하게 된다면 엑스트라 토퍼 요청이 가능한지를 미리 알아봐도 좋을 듯하다. 다음날 아침은 사람들이 몰리기 전 코엑스 에그슬럿에서 식사를 하러 오픈 시간에 맞추어 갔는데 손님이 우리뿐이라 불편하지 않게 식사하고 돌아왔다. 생각보다 너무나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두 달 뒤 다시 방문하기로 하고, 새로운 타입의 객실을 선택했다.
다음 방문은 파크 스위트 킹 을 스위트 얼리버드 조건으로 투숙했다. 지난번 코너 객실보다 훨씬 더 여유로운 공간이 만족스러웠다. 사진에서 보이는 벽 뒤로 침대가 있고, 침대에서 왼편에 넓은 욕실이 있고 벽 반대 방향으로 넓은 거실에 테이블이 있다. 거실도 크고, 침대에서 정면으로 도심 전망이 보이는데 도심 전망에 대한 감흥이 크게 없음에도 보기에 나쁘지는 않다. 옷장, 욕실도 훨씬 커졌고, 세면대도 두 개로 파우더룸 공간도 상당히 넓은 편. 미국 집의 로망이 있어 세면대가 두 개 있는 것을 너무나 좋아해서 약간은 낡은 느낌의 시설에도 큰 아쉬움은 없었다. 공간이 주는 느낌 자체가 모던하고 젊은 느낌이라 낡은 부분도 오래되고 늙었다기 보다 시간이 흐름이 느껴지는 정도. 와 보고 싶었던 호텔 중에 하나라서 기대감이 컸음에도 아무래도 이렇게 생각한 데는 프론트 데스크의 첫인상이 좋았기 때문에 관대해지는 것 일수도. 친절함의 힘은 정말로 큰 것 같다. 파크하얏트 부산이 처음 오픈했을 때는 서비스에서 여러 가지로 너무 미숙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는데 요즘은 또 어떤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서울은 모든 직원분들이 매우 친절하셨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도와주셨다. 이날은 생일 기념으로 온 것이기도 해 생일 케익을 선물받았는데 페레로로쉐 맛이 나는 초코 케익이었고 감사히 잘 먹었다. 여유가 허락된다면 파크하얏트에서는 스탠다드 도 좋지만 상위 객실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서울에서 좋아하는 호텔은 그랜드 하얏트, 파크하얏트, 그리고 포시즌스인데 가장 기본 타입의 방도 전혀 아쉬움 없이 좋은 곳은 포시즌스, 바로 윗 단계의 객실과 차이가 가장 많이 나는 것은 그랜드 하얏트, 윗단계 객실에서 만족도가 더 높아지는 것은 파크하얏트이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다.) 대신 금액 차이도 더 많이 난다. 플래쉬 세일 같은 기회가 있다면 파크하얏트는 약간 무리해서도 투숙을 할 것 같고, 그랜드 하얏트는 평소 디럭스 가격으로 디럭스 코너를 갈 수 있다면 특별히 기분을 내고 싶다거나, 남산 전망에서 가을 단풍을 보고 싶다거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냥 디럭스 객실에 묵고 대신 맛있는 것을 먹을 것 같다.
침대에서 보이는 도심 전망. 깨끗하고 잘 정리되어 있어 보기 좋고 밤에도 도시의 불빛이 예쁘게 빛난다. 크고 작은 건물들이 섞여 건물 옥상이 보이지 않아 그 점이 가장 좋았다. 모던한 객실의 인테리어와 아주 잘 어울리는 도심의 모습이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고, 자연환경을 더 좋아하는 내가 보기에도 한 번씩 새로운 느낌으로 투숙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이번에도 20만원의 다이닝 크레딧이 주어지는 패키지였고, 지난번에는 무척 만족했기 때문에 다른 인기 메뉴들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니 모두들 하나같이 김치찌개와 깐풍기를 입을 모아 칭찬해서 시켜보았는데 안타깝게도 싱거운 음식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둘 다 너무 간이 셌다. 국적 없는 한상이 차려졌지만 좋은 패키지를 이용했으니 만족. (그러나 다음부터는 추천 메뉴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시키기로 했다.) 올해도 투숙을 하고 싶어 찾아보니 이솝의 페이셜 비누, 미스트와 10만원 크레딧, 그리고 와인을 제공하는 패키지가 있었는데 와인 대신 작년처럼 크레딧이 더 주어졌으면 싶었다. 대부분의 호텔에서 진행하는 패키지가 코로나의 여파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는 중이라 그런지 올해보다는 작년이 더 좋은 편이다. 파크하얏트 부산은 식음료 파트가 매우 아쉬운 편이다. 처음 오픈을 했을 때와 그 이후가 조금 다른 편으로, 동급의 파라다이스와 웨스틴 조선보다 아쉽지만 차이가 많이 느껴진다. 파크하얏트 서울의 식음료 업장에 대해서도 별로라는 평이 많은데 요즘은 호텔보다 로컬 업장의 수준이 매우 높아졌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탓이 큰 것 같다. 좋은 분위기에서, 친절한 서비스와 함께 식사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이용하면 나쁘지 않지만 맛에서 차별화를 느끼려면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호텔이 아닌 곳을 찾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라 일반 식당을 이용하기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야외 식사는 너무 더웠기 때문에 방에서 식사할 수 있고, 숙박비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겠지만 크레딧이 충분히 주어졌고, 체크인부터 체크아웃 까지 전 과정에서 모든 직원분들이 매우 친절하셨기 때문에 파크하얏트에서 전반적인 경험이 모두 만족스러웠다.
매우 마음에 들었던 또 다른 하나의 재미는 룸 내부에 비치되어 있는 문고리에 걸 수 있는 카드형의 아침 주문서. 원하는 메뉴와 시간을 골라 선택하고 새벽 3시 이전까지 걸어두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메뉴가 셋팅된다. 포시즌스 처럼 채팅이나 어플로 주문할 수 있는 것도 편하지만 이렇게 주문을 해 보는 것은 처음이라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물론 새벽 3시 이전이라는 것은 직원분들이 늦은 시간까지 전 객실 층을 돌아다니셔야 한다는 말인데, 그 점에는 조금 마음이 불편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감사히 먹었다. 특별한 메뉴는 없었지만 조용하고 여유로운 공간에서 조금 더 기분을 즐기고 싶어 와플과 프렌치토스트를 주문했다. 전날 크게 한 상을 차렸기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았고 간소한 것을 원했는데 맛보다는 역시 전반적인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만족스러웠고 다음에도 이용할 의사가 있다. 아침에 맞은편 현대백화점에서 챔프 커피에 갈 계획이라 룸에 비치된 티와, 어제 먹다가 조금 남겨둔 과일로 즐겁게 식사했고 체크아웃까지 편안하고 좋은 분위기에서 잘 쉴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파크하얏트에서 좋았던 또 다른 한 가지는 객실 복도가 길게 늘어져있지 않아 오가며 다른 투숙객을 마주치거나 소리가 들리는 경우가 적었다는 것이다. 바쁜 도시 한가운데 여유로운 공간에서 친절한 서비스가 함께 하니 오래된 객실도 낡음이 아니라 역사로 느껴질 법한 착각마저 드는 파크하얏트 서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회원권이 있어야만 숙박할 수 있는 아난티나 반얀트리도 이상하게 내게는 큰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진으로 보기에는 무척 좋아 보이지만 꼭 시간과 여유를 내어 내가 방문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곧 해운대 ( 라지만 사실 차를 타고 한참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에 아까운 곳에) 반얀트리가 들어서는데 회원권을 직접 소유한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는 빌라 단지의 조감도와 예상되는 객실 인테리어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지만 나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회원권을 갖고 싶다거나,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최고급 리조트는 모든 조건이 부합해야 꼭 그곳이어야만 하는 이유 exclusivity 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누가 설계를 했고, 어떤 자재를 썼고, 어떤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느냐보다는 리조트 또는 호텔이 들어설 그 주변 환경과 그 공간을 채울 사람의 분위기의 힘이 더 컸다. 개인적으로는 회원권을 살 수 있는 여유가 되는 사람보다는 낭만과 휴식을 찾아온 사람들의 여유가 리조트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도심 속에 위치한 호텔은 쉼을 목적으로 하는 리조트와는 다른 성격이 있겠지만 호텔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라면 호텔의 문턱이 낮아진 것이 반가운 소식일지, 숙제가 될지 모르겠다. 한국의 많은 호텔은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인구 밀집도 가 높은 나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휴양지의 한적한 호텔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일정 금액 이상의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 받는 곳이라면 주어진 조건에 맞게끔 전체적인 조화의 측면에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이기는 하다.
파크하얏트 서울은 도심 속에서 노골적으로 배타적이지는 않지만, 점잖은 고립을 원하는 사람이 만족할 만한 곳이다. 호텔은 호텔을 찾는 사람들이 다르고, 그들의 목적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시키기가 어렵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가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화려하고 멋진 외관을 원하고, 어떤 이는 일상에서 벗어난 여유와 쉼을, 어떤 이는 배타적 서비스를 원한다. 각자가 원하는 목적에 맞는 곳을 찾아 원하는 시간을 보내면 되는 것 일 테고, 어디가 더 좋고 나쁜 것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큰 도로변을 끼고 높은 빌딩 사이에 조용히 위치해있는 호텔은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는 1층이 아니라 투숙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에 한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 이상으로 올라가서 체크인을 하게 된다. 평균적으로 어떤 직원분을 만나게 되더라도 기본을 웃도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프론트 데스크의 경우 물론 직원분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전반적인 분위기는 국내 호텔 전체에서 가장 친절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체크인이 끝나고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로 내려가서 객을 층에 도착하면 일자로 긴 형태의 복도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마주칠 확률이 적고, 지나가는 다른 투숙객들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복도를 지나 방문을 열면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 한가운데서 일상과 단절된 객실에서 아래쪽으로 한눈에 펼쳐진 일상의 공간을 바라보며 쉴 수 있도록 만들어져있다. 주변에 방문할 곳이 많은 그랜드 하얏트나, 너무 방문할 곳이 없는 신라 호텔의 중간 즈음으로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호텔 바로 앞에 원하면 구경할 곳도 많지만 호텔 안에서 긴 시간을 보내더라도 통창유리로 밖 전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답답하지 않다. 호텔은 창문이 열려 직접 환기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 하루 종일 있다 보면 왠지 모를 답답함이 느껴지는데 파크하얏트는 객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도 편안했다. 원하는 서비스를 요청하면 신속하게 정확하게 처리되고, 카드를 작성해 문고리에 걸어두면 따로 전화를 하거나 요청하지 않아도 정확히 약속시간에 맞추어 아침 식사도 배달된다. 파크하얏트 서울은 주변 환경과 위화감 없이 어우러지면서도 주변과의 일정한 거리감을 조성한 세련된 장치들이 조화로운 멋진 공간이다.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까지 주말을 집에서 보낸 적이 거의 없다. 아빠는 매주 주말마다 우리를 데리고 장거리 여행을 갔다. 국내 곳곳을 여행하고 좋은 호텔에서 묵고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휴가철이면 국내외로 남들은 한 번 가는 휴가를 우리는 세,네번을 다녔다. 아빠가 무섭고 힘들었기 때문에 여행이 즐겁다는 생각이 아주 많이 들지는 않았고 아무리 좋은 곳에 가도 어느 정도는 긴장한 상태에서 여행을 하다보니 그때의 기억과 더불어, 아픈 할아버지를 두고 내가 어딘가에 가고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20대 중반이 넘어갈 때 까지 여행에 대한 바람이 거의 없었다. 20대 후반이 되어서 다시 여행을 가기 시작했고 30대 들어서 조금 더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 이후로는 국외여행이 어려워지면서 한달에 한번 서울 일정이 생길 때 휴식의 맥락에서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이틀을 쉬어가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의 아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철이 들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거나, 늙어가는 부모에 대한 연민의 마음 때문은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아빠를 대단히 그리워하거나, 미워하지 않지만 과거의 아빠를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나 자신을 돌아보니 계속 그 생각의 중간과 끝에 아빠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었다. 아빠는 왜 나와 똑같은 것을 하고싶어하고, 강요를 해서라도 자신이 원하는대로 내가 하기를 바라고, 내가 자신과 같지 않은 것에 불같이 분노했을까. 왜 다른 부모와 다르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에 대한 끝없는 사랑' 이라던가, 일반적으로 부모의 사랑에 빗대어 표현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었는가. 아빠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기가 막혔다. 닮은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닮아있어서. 멀리서 바라본 아빠의 모습은 어린 내가 본 아빠와는 조금은 또 달랐다. 공감하고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상황 자체에 대한 이해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니.
아빠는 굉장히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낭만이 지나쳐 현실의 무게에 짓눌렸다. 아빠는 다정할 때는 무척 다정한 사람이었다. 취미 생활이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고, 그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는 사람이었으니 다른 아버지들처럼 늦은 퇴근도 없었다. 퇴근을 하면 아빠는 할머니 댁에 들러 할머니를 살피고 집에와서는 나를 앉혀놓고 했던 질문을 또 하고, 또 했다. 가족들 중에 누가 제일 좋으냐는, 절벽에 가족들이 죄다 매달려 있으면 누구를 먼저 구하겠냐는 말도 안되는 그 질문을 유치원 때 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했다. 콩나물도 아니고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내 키를 내 방 벽에 기록하면서 내 동생의 키는 한번을 재어주지 않고 나만 껴안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나는 관심도 없는 열대 물고기들이 잔뜩 들어간 어항 앞에서 했던 설명을 하고, 또 하고, 나는 무서워서 근처도 가기 싫은 롯트와일러에 내가 좋아하던 책의 이름을 따 이름을 짓고 내 손을 잡고 그 거대하고 무서웠던 개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며 예쁘다고 해 주라 했었다. 아빠도 지금의 나처럼 작은 것 하나, 사소한 것 하나 좋은 것을 곱게 사용하는 것을 (실제로 늘 내게 물건은 '곱게' 아껴 사용해야 한다고 늘 말했다.) 좋아했지만 어딘가에 갔을 때 본인이 그 공간 자체를 여러가지 이유에서 즐기기 위해서라기 보다 나와 함께 가는 것을 더 좋아했다. 북적이는 곳을 싫어해서도 있었겠지만 사람들에게 늘 친절했고 깍듯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좋은 곳에서 서비스를 누리는 것을 좋아한다거나 하는 모습은 없었다. 10달러짜리 지폐를 새돈으로 바꾸어와서 아침에 일어나면 베게 밑에 내게 그 지폐를 넣게 하고, 청소를 하다가 찾으시면 기분이 좋으시도록 예쁘게 숨겨두라고 시키곤 했다. 몇일 전 문득 내게 매우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낭만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생각을 이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과거의 아빠의 일부가 이해되었고 아빠가 그리던것은 낭만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자신과 꼭 닮은 나와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은 것을 좋아하고 즐기고 싶어했고, 좋은 곳을 가고, 껴안고 자고, 다 큰 나를 목말을 태워 다니며 낭만을 꿈꾸었던 것이 아닐까. 왜 나는 모두와 잘 지내고 싶고, 모두와 이별하고 싶지 않은가. 누구에게나 힘든 과정이겠지만 왜 내게는 더 힘들고 버거운가. 나는 정말 애정이 결핍되어서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서 집착을 하는 것일까. 인간관계가 휴지조각처럼 버려지는 시대에, 나이가 들면 점점 사람들과 멀어진다는 사람들의 말에, 우정에 목숨걸지 마라는 시대풍조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자꾸 모두와 잘 지내고 싶어서 안달이 난걸까. 단순히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고, 모두에게 인정받고 싶고, 많이 가지고 누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좋은 장소를 찾아가는 것은, 좋은 물건을 갖고싶어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낭만 때문이다. 나는 낭만적 관계를 꿈꾸고 낭만적 삶을 꿈꾼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리고 간혹 곡해되고 오해받더라도 나는 나이가 들면서 무뎌지고 변하고싶지 않다. 작고 사소한 일에도 마음을 담고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은 낭만을 간직하고 싶은 내 바람이다. 나는 크게 성실하지는 않은 사람이지만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기고 아끼는 사람이고 싶다. 다만 그런 마음이 현실과 부딪혀 힘든 순간에 나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결국에는 마음의 문을 닫고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될까 겁이났다.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순간도 너무 크게 느껴지는 것을 어떻게 경계할 것인지를 배워나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낭만을 포기하는 방법을, 혹은 타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것인지, 배운다면 어떻게 배워야 하는 것일까 고민했다. 나와 헤어질 때 꼭 눈이 없어질 때 까지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손을 흔들어주는 친구가 있다. 친구와 헤어져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그 모습이 자꾸 맴돌아 몇 번이고 생각하게 된다. 저렇게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소중하고 귀하게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모를 것 같은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면서 시간이 흐르며 상황이 변하는 삶에도 불구하고 결코 낭만을 포기하지는 말자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