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가장 좋은 향을 선물하고 싶다면 씨흐트루동에서 선택해야 한다. 향의 아름다움도, 그를 담는 상자와 붉은빛 리본에 쓰여진 금색 글자도, 한 손에 올려지는 가장 우아한 형태의 향을 고를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지금의 헌수의 나이쯤 처음 알게 되었던 씨흐트루동은 소중한 사람에게 향기를 선물하고 싶을 때 고민 없이 찾는 곳이다. 헌수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선물을 고민하다가 헌수의 스타일을 내가 앞서갈 수는 없으니 헌수가 머물 공간을 채워줄 좋은 향기를 선물하고 싶어 씨흐트루동의 향초와 같은 향이 베인 성냥을 준비했다.
씨흐트루동의 역사는 1643년 파리의 작은 향신료와 향초를 파는 가게에서 시작되었다. 1719년 최초이자 유일한 왕실 전담의 향초 제작을 맡게 되었고 1737년부터 완전하게 흰빛을 띈 밀랍 향초를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그것이 혁신이었다고 한다. 밀랍은 벌이 벌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기는 물질인데 이런 이유로 씨흐트루동에서는 그들은(벌) 신과 왕을 위해 일한다, “DEO REGIQUE LABORANT” 를 좌우명으로 두었다고 한다. 2018년부터는 최근의 많은 기업들과 같이 지속가능성에 가치를 두고 벌들을 보호하는 프로그램에 동참하고 있는데 브랜드의 정체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역사가 길어질수록 깊이는 더하고 현대적 흐름과 발전에 발맞추어 가는 것이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신세계 센텀이 아시아 최대 규모라며 처음 문을 열었을 때 구경을 갔던 내가 가장 먼저 방문한 매장은 2층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정면으로 보이는 아주 작은 씨흐트루동 매장이었다. 1층은 어딜 가나 비슷한 명품, 화장품 매장이 있을 것이고, 2층을 둘러보면 그 백화점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어려서도 감이 없지는 않았다. 하하) 가장 처음 시향 했던 향기는 다다Dada, 그리고 에르네스토 Ernesto 향초였다. 하필 처음 맡아본 두 가지가 그 당시에 내게는 어디서도 맡아보지 못한 꽤나 충격적인 향이었고, 다른 향들은 구경 해 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한참을 고민하다 다다 를 구매해 귀가했는데 비 오는 밤 새벽 구매해온 초를 처음으로 켤 때의 설렘과 습한 공기 사이로 퍼져 나갔던 향기의 느낌이 꽤나 강렬했었고 그 이후로 비 오는 밤을 손꼽아 기다려 그때마다 초를 켜고 한참 구경했던 시간들은 내 이십 대의 몇 안 되는 어렴풋한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 초를 담은 견고한 상자 위로 흐르는 질감의 리본에 완전히 마음을 뺏겼고 그 이후로 나는 굉장히 중요한 선물을 할 때는 꼭 씨흐트루동을 찾았었다. 왜 인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부산에만 매장이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 사는 취향이 특별했던 친구들은 씨흐트루동의 향을 선물받았을 때 그 어떤 선물보다도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씨흐트루동의 향초는 클래식 라인과 레 벨 마띠에르 로 나누어진다. 캔들 리드를 포함한 알라배스터 라인은 기존의 클래식 향초들의 향이며 유명 브랜드들과 협업하여 새로운 향과 패키지들이 출시되고 크리스마스 시즌 캔들은 특히 굉장히 멋지고 낭만적이다. 모두 각자의 매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개인 취향으로 선택하면 되지만 첫 시작은 브랜드의 역사와 성격이 가장 도드라지는 클래식 라인에서 골라보는 것을 추천한다. 고가의 향초는 구매 자체보다 관리가 중요하다. 처음 초를 태울 때 왁스가 모두 녹을 때까지 2시간 이상 태워야 끝까지 깨끗하게 향을 즐길 수 있으며 제때 타고 남은 심지를 깨끗하게 정리하지 않으면 재가 왁스 속에 섞여 미관상 보기 좋지 않게 된다. 뚜껑이 따로 없기 때문에 나는 향초를 보관할 수 있는 유리돔인 라 끌로쉬 를 선물 받기 전에는 늘 초를 태우고 상자에 보관했었다. 초를 그냥 꺼내어 보관하면 먼지도 쌓이고 향도 날아가게 되니 주의가 필요하다. 남색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레 벨 마띠에르의 런칭이 너무나 반가웠는데 작년 크리스마스 초를 선물 받기 전까지 최근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태웠던 향은 가장 좋아하는 샌달우드 향조의 타딘 Tadine 이었다. 물론 사용하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면 되는 것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향초는 식사를 할 때 테이블에 올리는 용으로는 여러 가지에서 의미에서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다. 몇 년 전에 유명한 식당이 씨흐트루동 향초를 테이블마다 둔 다고 홍보를 했었는데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 식당에는 방문하지 않았다. 한 가지만 보더라도 나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 말이다.
가장 자주 사용하는 씨흐트루동의 제품은 룸 스프레이이다. 트루동의 스프레이는 보는 순간 아, 저 물건은 언젠가 한번 꼭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토스카나 (Tuscany, Italy) 에서 수공으로 생산되는 묵직한 초록빛 유리병에 아주 옛날 향수병처럼 긴 호스 끝에 달린 작은 펌프를 누르면 분사되는 디자인으로 매우 호화로운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데 원한다면 동봉된 일반 스프레이로 바꾸어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이 룸 스프레이는 있는 그대로의 낭만을 즐겨야만 하는 제품이다. 나는 씨르노르 Cyrnos 를 사용 중인데 평소 내 취향에 완전히 맞는 향이 아님에도 지중해의 여유를 향기로 담았다는 설명의 낭만이 마음에 들어 구매했다. 씨르노스는 너무 가볍지 않은 풀과 열매향으로, 무화과 정원의 향이다. 향의 지속력과 확산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캔들보다는 룸 스프레이를 추천하고, 분위기와 낭만을 즐기고 싶다면 당연 초를 선택하기를 추천한다. 트루동에서는 다른 브랜드들과 비교했을 때 꽤나 늦게 디퓨저가 출시되었는데 처음 선보인 디자인은 씨흐트루동의 상당히 오래된 팬인 나로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알 모양이었는데 (심지어 이름도 프랑스어로 달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은 트루동 답고도 대중적인 디자인으로 출시되어 매우 다행스러우면서도 반가웠다. (첫 출시때는 리필액만 구매해 스틱를 꽂아둘까도 심히 고민했었다.) 디퓨저는 사실 향초 못지않게 관리가 필요한 품목이다. 먼지도 잘 쌓이고 스틱도 수시로 뒤집어 주어야 향을 즐길 수 있는데 사실 향 그 자체보다도 인테리어 효과에 점수를 더 줄 수 있는 제품들도 많다. 그래서 트루동의 룸스프레이와 디퓨저를 두고 고민한다면 또 한번, 룸스프레이의 손을 들어주겠다.
개인적으로 씨흐트루동의 역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라 프로므네즈 ’ La Promeneuse 이다. 라 프로므네즈는 씨흐트루동에서만 볼 수 있는 매우 독특하고도 낭만적인 제품이다. 캔들 워머라고도 하고 디퓨저라도도 하는데 나는 이것은 그야말로 향을 위한 존재하는 가장 완벽한 오브제라고 생각한다. 라 프로므네즈의 초록빛 유리 원통을 들어 올려 아래쪽에 작은 캔들을 올린 후 다시 원통을 덮어주고, 그 위의 작은 받침 위에 트루동의 향이 담긴 까메오 왁스를 올려두면 시간이 지나며 까메오가 녹으며 향이 퍼져 나가는 것이다. (리뷰에 걸맞지 않은 표현이지만 참을 수 없이 기절 그 자체이다.) 나는 라프로므네즈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는데 이보다 더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선물은 있을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이 베여있는 티슈 페이퍼 사이로 커다란 상자를 열면 4가지 다른 향의 까메오와 함께 본체가 들어있고, 그물건을 꺼내어 까메오를 녹이기 시작하면 라 프로므네즈를 사용한다는것은 드라마 그 자체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천천히 녹으며 사라지는 까메오와, 진한 초록 유리병 사이로 은은한 촛불까지 이런 쪽의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만족하지 (기절하지) 않을 수 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카메오를 데워주기 위한 초도 따로 판매하지만 이는 정말 데워주기 위한 역할이라 나는 그 초는 꼭 구매하지 않고, 처음 구매할 때 포함된 초의 유리 안에 마트에서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는 티라이트 캔들을 넣어 사용하고 대신 카메오를 넉넉히 구매할 것을 추천한다.
씨흐트루동의 향은 프랑스의 긴 역사를 담은 자부심의 결정체이다. 딥티크는 모던하고 감각적이라면, 씨흐트루동은 우아하고 고풍스러워 브랜드의 역사가 제품 속에 녹아있음이 느껴진다. 향의 완성도, 제품을 담는 유리를 장식하는 금빛 엠블럼, 그를 담는 견고한 상자와 리본으로 마무리되는 우아함, 그리고 사치스럽지만 과하지 않은 순수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훌륭한 브랜드이다. 세상의 좋은 것이란 좋은 것은 다 해본 사람이라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품격을 담고 있어 비싼 가격이지만 그 가격에 상응하는 경험을 분명히 얻을 수 있다. 다양한 향들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향을 즐길 수 있는 세련되고도 우아한 방식이 이 브랜드의 압권이다. 트루동의 여러 가지 향과 제품을 사용해 보았을 때 다른 브랜드 보다 확산력, 지속력이 뛰어났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특히 향초의 경우 기타 브랜드보다 향이 약한 것들도 많다. 딥티크의 향초들은 파라핀과 식물성 왁스가 원료인데 밀랍으로 만들어진 트루동의 향초들은 인체에는 무해하지만 향이 빨리 날아가고 연소시간이 짧다. (파라핀 또한 최상급의 원료에서는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거의 없다고 하지만 두 가지 향초를 태워보면 컨디션에 따라 확실히 한쪽은 무거운 느낌 또는 거부감이 있을 때가 있다.) 간혹 다른 브랜드들에서 기분 전환 삼아 구매하기도 하지만 향과 관련된 제품들을 구매한다면 거의 변함없이 씨흐트루동을 선택하게 된다. 아름다움은 기능성과 꼭 평행하지는 않는다. 씨흐트루동에서는 루이 14세부터 이어져 온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긴 프랑스 왕실의 캔들, 초가 타면서 유해 물질이 조금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가장 안타까운것은 유명한 누군가 구매해간 초, 라는 점을 주로 강조하는 것 같은데 사용자의 손 위에 상자가 놓여지는 순간부터 처음으로 초를 켤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을 끄는 순간에 조용하게 향기가 가라앉는 경험의 드라마를 담지는 못하는 마케팅의 셀링포인트가 참 아쉽다는 생각은 든다.
나는 많은 것을 누리며 성장했다. 또래보다 이른 성취를 이루었지만 빠르게 실패했고, 더 많이 실패했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이 있고, 상처 없는 삶은 없다지만 내게 주어진 짐은 미성숙한 내게 너무 고단하고 버거웠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많은 타이틀이 없어지고, 내가 누렸던 많은 것들이 차츰 쇠퇴해가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할아버지가 나를 떠나갔을 때, 이 모든 것들이 겹겹이 쌓여 이제는 불행의 끝을 다 맛보았다고 건방지게도 자신했던 때보다도 내가 가장 힘들고 외로웠을 때는 믿었던 사람의 몰랐던 얼굴을 보았을 때, 그리고 그 칼끝이 내 엄마를 향했을 때였다. 정말로 오만하게도. 웬만한 불행에는 끄떡도 없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삶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힘들고 슬픈 일이 생기더라도, 가능하면 나를 훼손시키지 않고 잘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좋은 사람들과,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생각을 하면서 잘 살아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그 사람이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바뀌자마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 그리고 낭만 어린 바람으로, 그래도 내 마음처럼, 그 사람도 그렇게 해 주었으면 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가졌었다. 애매해진 사이에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들이 얽혔다. 이미 크고 작은 일들을 겪었음에도 우연히도 그 시간은 일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영역에서 내 삶의 최저점이었고 내 주변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던 때였다. 그럼에도 그때 내가 가장 슬프고 힘들었던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그 사람은 스승이었던 엄마를 아래로 보기 시작했다. 멍청한 엄마는 한때 제자였던 그이의 결혼식장에서 주책맞게도 소처럼 큰 눈이 벌개지도록 눈물을 흘리며 의기양양하게 버진 로드를 걷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게 또 다른 엄마의 제자는 그 사람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엄마에게 3유로짜리 성수를 선물로 내 놓았다며 내게 연락해 왔다. 내 어떤 실패와 고난의 순간보다도, 나는 그때 가장 마음이 아팠다. 엄마가 무시당하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 버겁고 힘들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괴로웠던 그때,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의심을 확인받을 필요가 없었던 그 순간이, 너무 괴로웠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알고, 직접 연결이 된 당사자이기도 했지만, 그 누구도 내 마음을 나처럼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 일 텐데도 나를 너무 외롭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보다도 내가 걷기도 전부터 항상 제자들에게 둘러싸여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함께 웃으며 행복해했던 엄마가 뭣도 모르고 뛰어든 사업에서 실패하고, 점점 힘을 잃고 늙어가 한 줌도 되지 않는 사람의 멸시를 받는 것을 지켜보는 모멸감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어린 헌수를 앞에 앉혀두고 나는 슬퍼서 어쩔 줄 모르고 울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헌수도 내 앞에서 따라 울었다. 그 후로 헌수가 어머니와 이탈리아에 여행을 갔는데 굳이 챙겨주지 않아도 되는 엄마에게 정성 어린 선물과 카드를 건네주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헌수가 내게 무슨 잘못을 하더라도, 헌수에게는 평생의 면죄부를 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가장 외롭고 힘들었던 그 순간에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을 내 아픔을 마음으로 들어준 헌수를 통해서 나는 타인의 아픔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무섭게 느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빛나 보일만한, 내 능력을 증명할 만한 트로피가 없다면 두 배, 세배 더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하는 모습, 진정성을 보이면 되었다. 돈을 잃었을 때는 더 열심히 일을 하면 되었다. 할아버지가 그리운 것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을 때까지 울고, 길거리에서도 눈물이 나면 그냥 울어버리고, 낮 동안은 정신없이 일을 했고, 일을 마치고 슬퍼지면 그냥 다시 울었다. 그런데 실패한 엄마를 보는 것은, 늙어가는 엄마를 보는 것은 내 수용 범위를 훨씬 초과하는 일이었다. 눈이 울기 전에 가슴이 먼저 울어 가슴에서부터 싸늘한 냉기가 식도를 뜨겁게 타고 올라가서 눈에서 불이 쏟아지듯이 눈물이 흘렀다. 뜨거운 눈물은 결코 낭만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렇게 울고 나면 나는 정말 다 타고 남은 재가 된 것 같았다.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아픔이 있다는데, 정말 모든 사람들이 이런 슬픔을 느끼면서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일까, 이 감정은 정말 슬픔이 맞는가, 슬픔이 아니라 다른 더 무섭고 더 무자비한 그런 이름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나는 차가운 것은 더 차갑게 느끼고, 뜨거운 것은 더 뜨겁게 느낀다. 내 주변 상황이 보통의 경우보다 특별히 더 나빴다기 보다 나는 너무 미성숙했고 외부 자극에 취약했고 예민하고 내면이 단단하지 못해서 슬픈 일은 너무 슬프게 다가왔고 그 슬픔이 사라지지 않았다. 쓸데없이 기억력이 너무 좋았고, 쓸데없이 너무 많은 것을 이해했고, 쓸데없이 너무 많은 것을 느꼈다.
나의 이십 대는 끝도 보이지 않는 사막의 갈라진 펄펄 끓는 땅 위로 온몸에 쇠사슬을 달고 언제까지 가야 할지도 모르는 길을 맨발로 혼자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사슬이 무거워지고, 몸이 헤져 더 이상은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순간에 헌수를 만났고 어느 날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슈크림으로, 어떤 날은 우리 동네에선 구경도 못했던 허니버터 칩으로, 또 어떤 날은 내가 좋아했던 멜론 맛 쿠키로 위로와 위안을 받으며 정말 이제 더는 못 가겠다고 생각했을 때 헌수가 내 손을 잡고 나와 함께 그 긴 터널을 지나주었다. 남들은 내게 너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헌수는 내게 늘 행복한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남들은 내가 가진 것을 궁금해하고, 내가 잃은 것을 궁금해하고, 내가 가질 것들을, 가지지 못할 것들을 궁금해하는데, 헌수는 15살이었던 그때 나 25살인 지금이나 나를 보면 똑같이 웃어준다. 아직도 나는 엄마를 생각하면 따라오는 슬픔이 버겁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날은 햇살도 받고, 어떤 날은 바람도 맞고, 비가 오는 날도 있고 흐린 날이 있더라도, 그다음 날 해가 뜨면 그 빗물이 햇빛에 자취를 감추는 하루를 살아간다. 앞으로 헌수에게 좋은 일만이 있기를 바란다. 마음고생하지 말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듣고, 좋은 것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혹여 헌수에게 슬픔이나 아픔이 찾아온다면 헌수가 그랬듯이 나 또한 헌수에게 필요하다면 언제나 닿을 수 있는 곳에서, 변함없이, 정말로 변함없이 한결같은 헌수의 편이 되어 줄 것이다. 나는 사랑과 우정의 원형은 原型 그 사람의 모습을 그저 예뻐하고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어야만 한다.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야만 한다. 나는 세상이 변하고, 삶이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그런 우정이 있다는 것을 평생을 두고 증명하는 사람이 되어 줄 것이다.
생일 축하한다 헌수야.
너의 행복과 건강을,
예쁘고 소중한 너의 향기롭고 기분 좋은 하루하루를 변함없이 바라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