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뒤에 숨은 무게
임원이 되면 달라지는 것들
임원이 되면 직원 때와는 확연히 다른, 여러 가지 달라지는 점이 있다.
물론 회사 상위 1% 안에 드는 바늘구멍을 통과했다는 자부심은 기본이다.
보직장 이상의 지위가 주어지고, 그에 따른 예우도 따라온다.
금전적인 보상 외에도 변화는 많다. 회사 차가 나오고, 비서가 배정된다.
(물론 그 시절엔 지금처럼 AI 비서가 있던 때는 아니었다.)
자리도 달라진다. 방까지는 아니지만, 책상 앞에는 전용 회의 탁자가 놓이고,
옆에는 책장과 미니 냉장고, 커피나 차를 준비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된다.
갓 승진한 임원의 자리 주변에는 축하 난과 ‘시들지 말라’는 의미의 스투키 선인장이 즐비하다.
약간의 회의비가 지급되고, 각종 경비 처리나 복잡한 회사 시스템 접속에서 해방된다.
건강검진도 한층 좋은 패키지로 지원받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결국, 회사를 더 효율적으로 굴리기 위해 군더더기를 덜어낸 장치일 뿐이다.
책임과 압박
윗분들의 부름은—전화든 문자든—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질문에는 늘 즉시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후속 조치는 반드시 24시간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출장 중 비행기 안이야말로 홀로 편안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하루 일과는 회의로 빽빽하다.
시간 단위로 7~8개의 회의를 소화하고, 회의와 회의 사이 이동하는 짧은 동선 안에서도 구성원들은 장화 신은 고양이의 눈빛을 보내며 내게 빠른 의사 결정을 재촉했다.
저녁 약속도 주 3회 이상은 기본이었다.
유관 부서장, 관계 업체, 조직 구성원, 가끔은 허심탄회한 대화가 가능한 동료 임원들과의 자리,
그리고 개인적 인연의 그룹들.
그럼에도 윗분들의 ‘번개 회식’에는 반드시 달려가야 했다.
임원으로 버티는 법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임원의 자리는 원래 그런 자리다.
회사 일에 최선의 노력과 최대의 성과를 내야 하고, 최고의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결과뿐 아니라 과정까지 지켜보는 눈이 많은 자리.
그래서 반드시 본인만의 주관, 업무 스타일, 리더십, 조직문화, 그리고 스트레스 해소법이 장착되어야 건강하게 버틸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윗분과 관계를 잘하기’도 중요한 덕목이다.
맹목적으로 코드만 맞추는 게 아니다.
나와 나의 조직이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상황을 물심양면으로 잘 파악하고 대응하는 일이다.
물론, “누가 누구에게 찍혔다더라”, “싫어하는 것 같다”는 소문은 언제든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실제 상황이었다. 나는 그 가능성을 동물적으로 감지하며 살았다.
보람과 성장
주 1회꼴로 있는 보고 자리는 그래서 늘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임원이라는 자리는 재미가 있었다.
많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
각종 현안에 대해 Go 또는 Not Go를 판단하고, 타이밍에 맞춰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성과가 눈에 띄게 올랐다.
그만큼 조직 구성원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자연스럽게 조직도 성장했고, 나도 구성원도 함께 성장하는 공동 성장의 기쁨을 느꼈다.
이 모든 것은, 조직을 책임지는 임원인 나의 손에 달려 있었다.
초심
나는 임원으로 있는 동안,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임원이 된 후 처음 받았던 교육에서, 나는 분명히 초심을 밝혔다.
업무에 솔선수범하고, 구성원들과 소통이 잘되는 임원이 되겠다고.
그리고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다른 모습의 임원이 되어 보자고.
초임 임원이 되고, 나는 마케팅팀에서 독립한 상품기획팀 소속의 한 그룹을 맡게 되었다.
새로운 도전이 막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다음 편 예고
나의 첫 팀,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한 사람들과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