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으로 살기 –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업무의 실체는 없어도, 조직의 실체는 증명해야 했다

by 츤데레달언니

처음 맡은 일은 제품기획 일이었다. 당시에 내가 모시던 분은 혁신에 대한 의지로 세상에 없는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과 최상의 만족을 주자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조직을 끌고 가시던 분이다. 현재도 어느 기관의 요직에서 국가의 혁신을 위해 일하시는 존경스러운 그분과 우리 팀의 임원들은 매주 토요일 비밀회의를 했다.


소규모의, 매우 익스클루시브한 그 미팅은 소비자 트렌드를 연구하고, 현재의 틀을 깨는 혁신 디자인과 성능의 제품을 제안하며, IT 업계의 비즈니스 모델을 공부하면서 우리 사업에 맞는 새로운 모델을 브레인스토밍하는 자리였다.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이기도 했고, 현재를 부정하는 생소한 의견이기도 했지만, 소비자는 달라지고 있다는 그 명제 속에서 우리는 안갯속을 헤쳐 나가듯 대답을 찾아 나갔다.


나는 초임 임원으로 그 회의록을 사업부 팀장들에게 배포하고, 일의 진행을 독촉하며 보고를 하도록 독려하는 역할이었다. 완장처럼 굴지는 않았지만, 때로는 “문고리 3인방”이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고, 또 어떤 분에게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공부”를 하고 있다며 격려를 받기도 했다.


우리 팀은 그 어젠다를 조금이라도 진척시키기 위해 목·금 이틀은 꼬박 자료를 모으고, 토요일 스터디 자료를 함께 준비했다. 그때도 지금도 혁신은 결국 Top의 의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우리가 그때 기획하고 제안했던 제품들은 시간이 흘러 실제로 세상에 나오고, 소비자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나는 내심 그때의 토요 비밀회의가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은 내게도 큰 자산이었다. 모든 질문 끝에는 소비자의 만족이 답에 있었다는 것, 혁신은 가죽을 벗기는 고통이지만 마음을 먹으면 결국 이뤄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을, 큰 리더의 통찰 속에서 몸으로 배웠던 시기였다. 지금도 그때 소비자 인사이트를 맡았던 후배는 “힘들었지만 그립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 이후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임원 시절에 내 손으로 뭔가 잡히는 결과물을 만든 기억은 없다. 눈에 보이는 도자기를 빚는 느낌은 없고, 다만 총명한 머리와 빠른 시야와 손놀림을 가진 친구들을 잘할 수 있는 자리에 앉히는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을 실체화시키고, 뒤에서 병풍이 되어 바람을 막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총알을 막는 방어벽이자, 가끔은 수류탄을 던지기도 했던 자리.


그럼에도 계속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업무의 실체는 없어도 조직의 실체는 증명해야 됐었다.


때는 코로나를 막 벗어나는 시점. 어느덧 나는 100명에 가까운 팀을 이끌고 있었고, 이름과 얼굴이 매칭되지 않은 채 매일 수많은 회의에 치여 살았다. 내가 바라던 리더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들과 소통하려면 이름을 불러야 했고, 업무를 단 한 줄이라도 이야기해야 했다.


궁여지책으로 나는 모든 구성원과 점심 혹은 저녁을 하기로 했다. 나는 원래 식사 자리 나 술자리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와 에피소드로 감정을 기억하고, 사건을 연상하는 약간의 능력이 있다. 누구나 자기와 얽힌 이야기를 기억해 주는 상사를 만나면 더 가까워진다고 느낄 것이다.


3개월 동안 이어진 그 자리에서 나는 그들을 조금씩 알아가고, 기억해 냈다. 일이야기 없는, 가벼운 주변 에피소드 위주의 식사였으니 그들에게도 무거운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사람들의 특징과 장점을 특정 업무와 매칭할 수 있는 촉을 키웠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살은 찌고, 더 푸짐해졌지만, 제발 그들에게는 “나쁘지 않은 상사” 정도로 기억되길 바란다.


병풍이자 해결사였던 시절, 나는 욕심도 부렸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고, 문제를 발견하면 해결하려 덤볐다. 윗분들의 비전을 업무 방향으로 논리화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임원이란 결국 목소리를 내는 자리였다. 윗분의 목소리와 겹칠 것인지, 아니면 조직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것인지, 그 사이에서 반드시 나의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나는 종종 주저했고, 목소리를 내야 할 순간을 놓치기도 했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남는 아쉬움이다.


그럼에도 토요회의에서 우리가 던졌던 아이디어들은 세상에 나왔다. 그때는 “냉장고에 어떻게 색깔을 입히나” 하던 시절이었지만, 지금은 스테인리스로 덮인 냉장고는 아무도 찾지 않는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자유롭게 세탁·건조 코스를 주고받는 시대가 되었다. 상상 같던 그림이 현실이 되는 걸 보며,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내 리더십은 단순히 병풍이 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조직 구성원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유관부서 임원과 직접 담판을 지으며, 마치 도장 깨듯 펜딩리스트를 하나씩 없애는 역할도 했다. 그럴 때만큼은 “그래도 이 자리에 앉아 있길 잘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어차피 짧은 자리였는데, 왜 더 치열하게 목소리를 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도 남는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간에 배운 것들이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하는 자산이 되고 있다.


다음 연재는 <임원으로 내려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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