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의 리더십은 무엇이었을까

노출시키기 작전과 지켜내지 못한 순간들

by 츤데레달언니

임원으로 자리를 찾아갈 때 즈음, 나에겐 또 다른 미션처럼 다가온 일이 있었다. 훌륭한 후배들을 노출시키기 작전이었다.

나 역시 임원이 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지나고 보면, 나는 회사에서 어디까지 올라가고 싶은가, 임원은 얼마나 매력적인 포지션인가, 어떻게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가 등은 나 스스로 생각하고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는 해답들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 비전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선배는 누구인가? 어떻게 이 비전을 선포할 것인가? 이건 나 스스로 해결하긴 어려웠던 것 같다.

우선은, 나의 비전을 같이 그려준 선배들은 이미 없었다. 특히 여자 선배들은 몇 명 되지도 않았고, 늘 홀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인지라 대화를 신청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사실 이미 내가 더 나이도 많고 해서 불러준 이들도 없긴 했다.) 남자 선배들은 찐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웠다.

대충 20년 이상 큰 조직에서 몇 명 안 되는 여성 리더로 살다 보면 한둘의 남자 선배들은 있기 마련인데, 내가 지난한 임원 승진의 과정을 지나는 동안 존경하던 선배들은 일찌감치 퇴사를 해버렸다. 나는 덜 싹싹했고, 약간 껄끄러울 수도 있을 선임 여자 부장이라, 속내를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텄던 동료들도 없었던 것 같다.


임원이 되고 보니, 그런 후배들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실력도 충분하고, 내심 임원 승진도 원하지만, 어떤 전략으로 누구와 같이 방향을 잡아야 될지 잘 모르겠는 후배들.

나는 아주 힘이 있는 권력의 정점에 있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런 후배들을 경영진에게 노출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작전을 펼칠 수는 있는 자리였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경영진 보고를 그들에게 일임하고, 보고 시에 적극적으로 그들의 방향을 부연 설명해 주며, 다른 임원들과의 대화에서 그들의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도록 긍정적인 인식을 남겨주는 일들이 나의 전략이었다.

뿐만 아니라, 임원의 후보로 내가 그동안 점찍어 두었던 후배가 언급되면, 그들의 긍정적인 측면을 일사불란하게 나열하기도 하였다.

그러기 위해선 나 역시 경영진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부단히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혹시라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분 앞에서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되도록 삼가면서, 적어도 나의 영향권 밖에 두도록 했다.

동시에 임원 승진의 과정 속에 괴로워하는 후배들을 어르고 달래며 마음 관리를 했던 시간들은, 지금은 한 톨의 아쉬움 없이 최선을 다한 과정이었다고 자부한다. 덕분에 2~3명 정도 임원으로 승진하는 데 나의 지분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물론 임원이 되고 나면 다들 “지들이 잘해서 그런 줄 안다.” 아무튼 그래도 즐거운 후일담이다.


또 하나 역점을 두었던 일이 있었다. 여자 후배들이 친구가 될 수 있도록 후원해 주는 역할이었다.

당시 우리 팀에는 똘똘하기 그지없는 세 명의 여자 부장들이 있었다. 다들 하는 일은 달랐지만, 조직을 맡고 있는 리더로서 셋을 합쳐 삼분의 일씩 나누면 완벽한 리더의 모습이 될 수 있었다.

20년 이상의 경력으로 업무 톱이며 각자의 장점이 극명하면서도, 다들 스스로 고치고 변화하며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 충만의 리더들이었다.

그들은 김유정이라 불렸다. 성을 따서 한 번에 부른 이름이었다.


그들을 처음 만나게 해 준 것은 나의 업무 지시였다. 셋이 만나서 밥 먹으며 대화하라 했던 것. 그들은 그날 이후 각별한 친구가 되었다.

김유정 삼총사는 김의 소통력, 유의 분석력, 정의 추진력으로 업무 시너지와 조직에 강력한 에너지를 불러 넣었다. 이 에너지는 김유정의 리더십에서 중간 리더들의 단합된 조직력으로 확산되며, 말 그대로 팀의 활력소가 되었다.

한때 임원 후보로서 라이벌로 각축을 벌이던 그들이었지만, 팀이 전체 경영의 난제에 부딪쳐 쇠락을 겪으면서 소통의 김은 퇴사 후 한국의 유명 식품 회사 임원으로 이직했고, 분석의 유는 업무 전환과 동시에 박사 과정에 도전 중이며, 추진의 정은 퇴사 후 바닷가로 이사해 욜로족처럼 살고 있다.


이들이 갑작스레 인생의 큰 전환을 맞게 된 시점은 우연스럽게도 나의 퇴사 시점과 맞물린다. 어쩌면 우리는 그때 못다 한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임원 마지막 해에는 몸도 고단하고 마음도 고단했던 시절이라,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자책감이 있다.

김유정은 조직의 활력소였는데, 그저 서로 친한 동료였을 뿐인데, 그들의 시너지를 곡해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인사 부서, 한두 명의 부서 저성과자들이 내었던 부정적인 평가들이 팀의 쇠락 기운과 맞물려 그들을 버티게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지금도 정기적으로 만나서, 이제는 같이 나이 들어가는 예전 회사 동료이자 친구로 지내고 있다. 나 역시 그들과 가끔 만나고는 있는데 어쩌면 그들이 만나주는 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위로가 되고 있다.


여전히 안타까운 사실은, 여성 리더들이 조금만 뭉쳐 다녀도 그것을 ‘반항의 기류’나 조직 질서를 흔드는 움직임으로 바라보는 남성 중심적 시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 팀을 리드했던 팀장과 나의 리더십은 — 우리 둘 다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그들을 지켜내기엔 한참 모자랐다.

임원의 리더십은, 결국 누구를 지켜내느냐의 문제였다.


다음번 연재는 < 임원으로 내려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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