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 1년을 마무리하는 소회
브런치에 쓴 첫번째 글이 아마 그거였을 거다. 브런치가 안 뽑아줘서 트레바리 파트너가 되었다는 내용, 맞다. 그래도 글밥 먹고 산지 몇년차인데 브런치에서 빠꾸먹고 짜증나서 트레바리 파트너를 지원했고 단번에 되었다.
나의 테마는 '멘땅에 헤딩'해서 지금까지, 8년차 콘텐츠 작가가 들려주는 마케팅-콘텐츠 이야기였다.
문예창작과로 유명한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나는 <최연소 등단>을 꿈꿨다. 거기다 수석이었으니 자신감이 뿜뿜할 만하지 않나. 헌데, 현실은 달랐다. 사실상 <수석>이라는 꼬리표가 내 글쓰기를 방해했다. 어딜가나 주목 받고, 얼마나 잘쓰나 쳐다보니까 오히려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되는 거다. 어깨에 힘이 빡 들어간 상태로 뭘 써야 하는지 모르는 1, 2학년을 보냈다. 3학년이 되어서야 무엇을 쓰고 싶은지 알았는데 곧 4학년이었다. 졸업하자마자 냉담한 현실에 내던져졌다. 아버지가 용돈을 칼 같이 끊었기 때문에(그때는 좀 원망했고 지금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6개월 간은 온갖 재택 알바를 섭렵하며 글을 썼고, 이대로는 아무것도 안 될 거 같다는 위기감에 스펙 없이 가장 빠르게 취업할 수 있는 방송국으로 갔다. (문예창작과 졸업생들의 진로는 대체로 방송작가, 출판사 편집자, 광고대행사가 많다, 문창과 출신으로 가장 쉽게 들어가볼 수 있는 곳이며 열정페이로 유명하고 야근이 일상인 업계다)
방송작가로 1년, 웹진 에디터 겸 마케터로 2년, 광고대행사에서 마케터 겸 콘텐츠 작가로 1년, 중견기업 인하우스에서 기획작가로 2년차니 회사 소속으로는 6년의 세월을 보냈지만, 프리랜서 업무를 쉰 적이 없다. 즉, 회사를 쉬는 동안에도 나는 브랜드 마케팅이나 리브랜딩, 유튜브 재테크 채널 작가 따위의 업무를 하고 있었으니 2016년부터 지금까지 7년간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전에 한 회사 면접 자리에서 내게 묻더라 광고대행사에서는 병이 걸려서 그만 뒀다고 했는데... "쉰 적이 없는데요?" 맞다. 광고대행사에서는 인정도 받는 편이었고 잘만 하면 팀장 자리도 노릴 수 있을 거 같았는데 한 쪽 귀가 4번째 안 들리고 몸이 너무 아파져서 그만뒀었다. 그리고 이틀 만에 지인으로부터 프리랜서 일자리(리브랜딩)를 소개 받았고, 런칭 전인 브랜드를 롯데몰 김포점에 팝업스토어 형태로 입점시키기도 했다.
초반부터 갑자기 왜 니 자랑이나 싶겠지만, 이러한 여러저러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해온 덕분에 마케팅-콘텐츠 모임장으로 1년간 모임을 잘 이끌 수 있었다는 거다. 본디 어려서부터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고 말을 잘하는 편이었다. 마케터로 활동할 때는 여기저기 죄송하고 감사한 '봇'이 되어버렸다 보니 언어스킬이 더 늘었고, 1년 간 모임장을 하고 나니 어디 나가서든 레크레이션 강사로 활약할 수 있을 거 같다. (참 감사한 별칭이었지만 잘 이끈다며 유니재석이라고 불러준 분도 있었다, 내 이름과 유재석 님을 합친 거다) 실제로 작년에 나는 트레바리 외에도 2군데 모임의 모임장이었고, 와인살롱이나 위스키살롱을 비롯한 각종 모임에 단발성으로도 계속 참여했었다. 많을 때는 5-6개 정도 모임이 이어졌고 집에 들어와 있는 날이 없었다. 사람으로 돈 버는 게 바로 무자본 창업인데, 사람이 사람들을 모아서 '커뮤니티'로 돈 벌려면 뭐가 필요할까 궁금해서 시작한 일이었고, 1년간 내달렸으니 올해는 잠시 쉬어가는 참이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돈을 벌 때 필요한 것들은 하기와 같다.
1. 분위기와 장소
2. 괜찮은 커리큘럼
3. 통솔력, 기획력 있는 모임장
4. 괜찮은 수준의 모임원
5. 꾸준한 미션(여러 컨셉의 번개, 일상과 더불어 할 만해야 한다*)
트레바리 첫 시즌을 할 때였는데 참가하신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토욜 오전 10시라서 좀 주저했는데... 이 온도, 이 습도, 이곳에 있는 나 자신 너무 멋있는 거에여!"라고. 맞다, 내 콘텐츠-마케팅 모임은 시간대가 좀 다짐하고 나와야 할 시간이었지만, 정원 16명 모두 저 나름대로의 커리어 계발에 관심 있는 분들이 모였고 (자화자찬이긴 하지만) 내 커리큘럼도 좋았다.
특히 사람들을 여럿 모아서 살롱으로 운영함에 있어서 공간의 분위기, 장소의 퀄리티는 중요하다. 또한 위치도 중요한데 2가지를 예시로 들어 비교해보겠다.
한 모임은 마포역 인근에 자리한 오피스텔에서 격주로 4번 진행하는 영화 모임이었다. 참가한 사유는 단 하나, 인스타그램 광고가 떠서 눈 여겨 보게 되었는데 내가 혼자서는 절대 보지 않을 영화들이 리스트업 되어 있어서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말랑말랑한 일본식 멜로를 별로 선호하지 않고, 기억에 남아 있는 그 모임의 선정 영화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이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임의 퀄리티는 별로였다. 앞서 말했던 2번 커리큘럼과 3번 통솔력 있는 모임장이 부족했단 소리다. 열심히 준비해주셨겠지만, 커리큘럼이 부재한 상태로 이야기가 이어지다 보니 친구들과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았다. 적어도 모임장이 있는 모임에서는 모임장이 그 자리에 참가한 어느 누구보다도 그 '주제/토픽'에 대하여 해박해야 한다. 이 모임은 콘텐츠는 별로였지만, 장소와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한번 모임할 때마다 2시간에 4만원꼴이었나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맥주와 소시지를 내어주었고 마포 한강변이 훤히 내려다 보여서 좋았다. (저녁이라 야경 굿)
한 모임은 한창 외롭던 시기에 가본 와인 살롱이었다. 참가비가 꽤 비쌌는데 와인에 딱 맞는 플레이팅 안주가 나온다고 해서 가봤다. 사람을 만나기 위한 목적보다도 어떻게 세팅되어 운영되는지 공간이 궁금했던 거다. 일단 아주 많이 실망이었다. 다시는 가지 않을 곳이기도 하다. 장소는 어디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주택가에 자리했고 간판이 없는 공간이어서 찾아가기 어려웠다. 간판 없이, 비밀리에 퍼스널하게 운영되는 느낌이야 좋지만 그럴 경우 장소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를 테면 합정이나 서울숲이나 성수, 한남동처럼 주택가가 있으면서 잘 꾸며져 있는 공간에 있다면 좋았지 않았을까. (비용이 꽤 비쌌기 때문에 여성은 5만원 정도, 남성은 7만원 정도였다 : 엄청 비싼 건 아니지만 원데이 살롱의 비용은 대개 2시간에 3-4만원 대 형성된다, 참가자들과 이야기해봤을 때도 4만원 정도까지는 부담없이 한 번쯤 내보는데 5만원 넘으면 부담스럽단다)
일단 입구에서 약간 실망했는데 내부도 너무 협소했다. 약간, 다들 30대 정도 되고 우리 다음번 모임은 40대라는데 공간이 너무 옛날 틱한 인테리어(금색 의자 다리 + 푹신한 의자 같은 느낌의 2010년대 유행했던 느낌)에 너무 영했고, 내주는 와인이 너무 싸구려였다. 1-2만원대로 추정되는 와인이랄까, (심지어 내가 이마트에서 자주 사먹는 canti도 거기 있었다! 마트 와인이라니... 세-상에 너무 놀라워라) 플레이팅 되어 나온 안주도 내가 기대했던 페어링이 전혀 없었다. 그냥 치즈 몇 개에 청포도 몇 알, 과자 몇 개, 소시지 몇 개 정도... 대 실망하면서 나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거기다 콘텐츠도 별로였다. 모임장이 몇 있었는데 이끌 만한 진행력은 없었던 거 같고, 사람들끼리 대화나누도록 카드를 주고 계속 조를 이동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뭐 말 할 만하면 넘어가서 그닥이었다. 또 마지막에 조별 게임을 하는데 영화 초성 맞추기, 노래 초성 맞추기 그런 거..? 대학교 레크레이션도 아니고, 비용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콘텐츠, 공간, 분위기, 모임장 다 별로였던 거다. 괜찮은 수준의 모임원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나는 별로 다 관심 없어서다.
한 모임은 '마피아 게임'이라는 콘셉이 확실한데 이곳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와 코로나가 살짝 풀리고 난 뒤에 2번 가보았다. 첫번째 때는 인원이 되게 적은 편이었는데 공간이 좋았다. 정원이 있고 살짝 식물들도 많은 카페를 단독으로 대관해서 우리끼리만 이야기 나누기 좋은 환경이었다. 거기다 아이스브레이킹을 '마피아게임'으로 하니까 분위기도 풀리는 무드였달까. 공간도 괜찮았지만 특히 호스트가 재밌었다. 중간중간 농담도 던지면서 분위기를 이끌어가니까 자연스럽게 모두들 제 이야기를 하는 느낌으로. '마피아 게임'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호스트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을 지목한다. (눈 감고 있을 때 머리를 터치) 그 사람만 자기 소개를 할 때 모든 것을 뻥칠 수 있다. MBTI나 직업, 직장의 성비 등등... 그리고 한차례 아이스브레이킹이 끝나고 나면 마피아를 찾는데, 과반수가 마피아를 지목하면 일반인이 이기고 그것이 아니라면 마피아가 이겼다. 이긴 사람은 궁금한 사람의 신상정보나 번호를 미리 알 수 있는 그런 거였는데 난 궁금한 사람이 없어서 패-스. 그 뒤로 뒷풀이 장소도 미리 예약해두고 뒷풀이 초반에는 호스트들이 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워주는 시스템이었다. 그 뒤에는 서로 지목한 사람들에게 카톡을 알려주는 듯. 나는 일이 있어서 첫 모임 때 뒷풀이를 참여하지 못했는데 한분이 뒤에 연락 주셨었다.
'마피아' 컨셉의 2번째 모임으로 가보았을 때는 인원이 있다 보니까 공간은 조금 애매했다. 동네가 애매했다는 소리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데 강남에서도 1시간 정도는 걸렸다. 나는 경기도민이었는데 여러 번 갈아타야하는 동네에 있었고, 내부는 괜찮았다. 깔끔하게 4-5조 정도 모여 있었고 한 조당 6명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마피아 게임'으로 시작해서 조를 계속 옮겨 가는데 조를 옮길 때 '젓가락' 같은 걸 뽑게 한다. 거기에 채색된 색깔로 조가 정해지는 것도 꽤 재밌었고, (나는 그런자리 갈 때마다 여성 분들이랑 친해지는데 거기도 괜찮은 분이 있어서 그 자리 함께하는 동안 흥미로웠다) 뒷풀이 때도 호스트가 자리를 돌아다니더라. 베스트는 아닌데- 가격 대비 좋았다. 미팅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호스트의 적절한 진행력이 빛을 발해야 하는 곳이었던 거다. 쓰다 보니까 내가 가본 모임들을 다 써봐도 좋을 거 같은데 이건 다음으로 아껴두겠다.
시즌 3개, 1년간 콘텐츠-마케팅 모임을 할 때 나름대로의 커리큘럼이 있었다. 트레바리는 모임마다 커리큘럼이 다른데, 나의 경우 '마케팅'이란 테마가 정해진 독서모임인 만큼 마케팅 유관 도서를 4권 선정(1개월에 1권, 1개월에 1번 모이기 때문)해야 했다. 나의 경우 4권의 도서를 다 읽고 나면 '무언가'를 얻을 수 있게끔 커리큘럼을 짰고 시즌별 연관성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시즌1은 콘텐츠 마케팅의 정의와 이해였다. 콘텐츠 마케팅의 바이블로 통하는 도서로 시작해서 실용적인 부분까지 4권의 책으로 다루었고, 시즌 2는 기획하는 글쓰기였다. 콘텐츠 마케팅에 대해 알았다면, 그 중심이 되는 '콘텐츠'를 기획해야 할 차례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기획의 근간에는 '글쓰기'가 있다. 글쓰기의 기본기 다지는 것부터 기획, 글쓰기, 적용 사례까지 폭넓게 알아보았고 마지막은 브랜딩이었다. 콘텐츠를 알고 기획을 하게 되었다면 브랜딩(브랜드를 스토리텔링하여 팬덤을 확보하는, 브랜드 관리 전략)이 필요한 타이밍이기 때문이다. 시즌1, 시즌2를 연달아 들은 분은 있지만 대개 시즌 한 번씩 하고 다음을 기약했는데... 시즌별로 참여자의 특성이 다르다는 것도 재밌었다.
시즌 1은 콘텐츠-마케팅의 기본이었기에 주니어급 직원들이 많았고, 마케터로 일하고 있거나 마케팅에 관심 많은 취준생도 있었다. 대체로 깨발랄한 분위기였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 분들도 많아서 첫 모임에 오전 10시에 시작하여 오전 9시까지 함께했다. 번개도 이때는 열의가 넘쳐서 한달에 2번 했는데 번개 때도 거의 그러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명나게 이야기하고 떠들고 즐기기 좋은 시간이었다.
시즌2는 기획하는 글쓰기여서 기획과 글쓰기의 중요성을 알게 된 시니어급 마케터, 직원 혹은 크리에이터, 자기 사업을 운영하고 있거나 운영할 계획이 있는 분들이 많았다. 조금 더 진중한 분위기였으며, 시즌 1 때처럼 오래 머무르지는 않았다. 이때는 나도 번개 1번으로 축약해서 했는데, 정이 많은 분들이 많아서 시즌이 끝나고도 3번 정도 번개를 추가로 운영했다. 밖으로 나오기는 힘들어하지만 한번 나오면 잘 노는 'I' 같은 느낌이랄까, 뭐 그랬다.
시즌3은 브랜딩이어서 시니어급과 본인 사업을 준비하는 분들이 많았다. 시즌 1, 2보다 평균 연령대가 높았을 거 같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다, 나이를 밝힌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어서) 또한, 첫 모임 때는 나도 10분 일찍 갔는데 대다수가 다 와 있어서 놀랐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모임이 그러하듯 출석율이 떨어졌는데 놀랍게도 독후감 출석율은 높았다. (트레바리는 400자 독후감을 내야만 모임에 올 수 있다) 독후감을 내고도 안 오는 분들이 꽤 많아서 신기했다.
토요일 오전에 텐션이 떨어지는 만큼 나는 각종 아이스브레이킹과 레크레이션과 자그마한 선물들을 준비했고 마지막 모임 때는 꼭 꽃 3송이를 사서 출석번호 순서대로 드리곤 했다. 내가 워낙 무언가 주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분위기를 풀기 위함이었다. 트레바리를 처음 시작할 때 딱 1년을 해보자 했었는데 1년이 지나고 나니까 자신감이 생긴다. 어느 자리에 가든 그 자리를 주도할 수 있을 자신! 1달에 1번 본 모임(3시간동안), 번개모임을 진행하다 보니까 말 하는 능력도, 정리하는 능력도 많이 늘었다. 스피치엔 자신만만하다.
이렇게 많이 모임들을 참여해본 이유, 내가 언젠가는 살롱문화로 커뮤니티로 돈을 벌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내가 해본 모임의 특색들에서 대해 하나씩 정리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