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윰윰 Dec 07. 2023

쉬어도 괜찮아, 이 말을 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매일 내면 일기를 쓴다. 나의 마음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꽤나 막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일기를 쓰다가 마지막에 그런 말을 썼다. "그러니까... 조금만 쉬자"라고. 쉬어도 괜찮다는 말을 나 스스로에게 해주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나는 이제야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출처: 핀터레스트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했다 


아주 캄캄한 터널 속을 

밝히는 등 하나 없이 

두 눈을 감고 

양 손으로 더듬거리면서 

끝없이 걷고 또 걷는 기분이라고

다만 그 끝에 빛 한줌이 깃들길 바라면서 

이 지독한 터널에서 벗어나가길 바라면서 

헌데

정작 나는 그 빛이 어디있는지 방향은 잡지 못했다 

진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채로 

앞으로만 나아갈 따름이었다 

나아가야 하니까 

넘어져 앉으면 나약한 거니까 

언제까지 같은 고민만 반복하며 살까 해서 

미친 듯 에너지를 뿜어내며 

2-3명분의 일을 다 해내고 

온 몸과 마음의 힘을 다 소진해버리고 난 뒤에 

한 1-2주 앓아 눕고 

다시 내달리길 반복하는 삶...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아니, 

회복하지 않으면 죽여버릴 거라고 

채찍을 들고 버둥치는 간수에게 목줄 묶인 삶이었다 

그 순간순간이 괴롭기만 했을까 

아니 

행복하기도 했다 

기쁘기도 했고 

서글프기도 했고 

배운 것도 많았다 


다만- 

스스로 고독할 뿐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하는 거야 싶은 건 

오래하기가 어렵다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건 

단거리 경주에나 맞는 방식이다 

타오르는 승부욕도, 완벽주의도, 호승심도

이 싸움이 끝나면 '산화'되어 죽을 때나 적합하다 

표현하고 

받아주고 

사랑하고

아껴주자 


무조건 편 들지는 못하겠지만 

그래- 너가 그럴 만했겠구나 정도는 연습하자. 

그 연습이란 게... 

말만 들어도 정말 토나올 정도로 싫지만... 

이미 지금껏 해왔으니까 난 나를 아니까. 

내가 어떤 심정으로, 어떤 노력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텼는지 아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쉬자. 

쉬어도 괜찮아. 

이 말이 참 서글프고 고맙다. 


출처: 핀터레스트


이제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씌웠던 굴레를 벗어던지기로 했다. 쉽지 않다. 나는 꽤 오래 망가져버린 발목으로 달렸다. 너무나 아플 땐 나가떨어지긴 했지만, 그 시간이 아까워서 회복될 만하면 미친 듯이 내달렸고, 다시 그 프로세스를 반복했다. 꽤 오랜 세월 동안 내게 지친다는 것은 나약하다는 뜻이었다. 힘들다고 스스로에게 토로하면 꼭 물었다. 정말 힘들어? 네가? 이런 식이었다. 진심을 다해 날 봐준 적이 없다는 건, 날 다독여줄, 아니 있는 그대로의 내 아픔을 받아줄 방법조차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그래, 여전히 모른다. 

어색하고 생경하기만 하다. 


지금껏 내가 해왔던 모든 방식이 통하지 않는단 걸 깨닫고 이제야 보았다. 두 발목이 부러져서 일어서지도 못하게 되고 나서야 나는 주저 앉았다. 몹시 낙담했고 절망했다. 지금껏 살아온 모든 게 무용지물이 된 거 같아서 꽤 자주 울었다.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이질 않았다. 충분히 컨트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컨트롤해야한다'라거나 '나약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강박 자체가 아프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열두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최초의 순간이다. 그날 나는 강당에 앉아서 체육 수업 중인 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거나 잠시 쉬고 있었거나 정확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했던 생각만은 분명하다. '사람에 기대해선 안 돼'라고 생각한 그 순간, 세상의 빛은 툭-꺼졌다. 분명히 기억한다. 빛이 잘 들던 그 강당, 창너머로 깃들던 빛이 어둑해진 그 순간을. 그 뒤로 학창시절 내내 나는 참 무딘 사람으로 살았다. 내 일상은 '해야할 일'로 가득했다. 목표를 설정하고 내달리는 것만이 내 인생의 전부였다. 아픈 건 사치였고, 번뇌는 변명이었다. 이런 내가 본래 타고난 예민함을 회복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예민함이 돌아온 순간부터 몹시도 아팠다. 나는 괴로운데 글은 이전보다 좋아졌다. 


생은 고단하다. 

글은 이전보다 낫다. 


이게 뭘까 생각했는데... 일단 나부터 치유해야 한다는 뜻이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러니 나는 완전히 걷지도 못하게 부러져 버린 두 발목을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다. 재활을 해야하겠지... 얼마가 걸릴지 모르겠지만,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금 더 편안할 수 있는 쪽으로 걸음마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그 이전에 난생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 말해본다. 


좀, 쉬어도 괜찮다. 

누가 뭐라든 나만은 내 곁에 함께 있겠다. 



출처: 핀터레스트


P.S.

이 글을 정리하는 동안 이 곡을 반복재생으로 듣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_AQKsfc0XM&list=RDMMg_AQKsfc0XM&index=1


오늘 종일 듣고 있다. 2014년 쇼미더머니 3 시절에 나는 아이언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그런 플로우는 처음이어서다. 무대를 사로잡는 기운도 좋았고, 여러모로 탁월했다. 그 뒤로 발표한 곡들도 참 좋았다. 허나 개인사적 측면에서는 어두움이 더 많았다. 그의 과오에 대해서는 구태여 말하지 않겠다. 음악에 대한 순수한 정열만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보여줬던 '진짜'의 곡만은 언제나 감탄케 한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참, 작품은 찬란하게 빛나는데 생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참으로 어려운 지점이다. 잡아먹히지 않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사람은 가고 곡은 남았다. 아쉬운 마음과 안타까움을 담아 애도하는 12월의 오후다. 한동안 듣게 될 거 같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떠나온 나의 첫사랑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