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방주가 홍수로부터
세상의 생명을 구했다면,
지금의 방주는 디지털 속에도 존재한다.
나에게는 10살 차이가 나는 초등학생 늦둥이 동생이 있다.
어릴 적 동생은 매일 창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창문이라는 투명한 경계를 사이에 두고, 바깥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이제 동생은 또 다른 창, 스마트폰 스크린 너머의 세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두 세계를 모두 경험한 우리 세대와 달리, 태어날 때부터 미디어라는 바다를 항해해 온 동생의 세대를 '베타 세대'라 부른다고 한다.
처음엔 나도 많은 이들처럼 걱정이 앞섰다. 하루 대부분을 메타버스라는 망망대해에서 보내는 동생을 볼 때마다, 시력 저하와 사고력 감퇴를 우려하며 현실이라는 육지의 소중함을 강조했었다.
동생의 손에 핸드폰이 들려있을 때마다 빼앗으며 자주 이야기했다. "나가서 하늘을 봐야지, 밖에서 친구들과 직접 어울리며 공을 차야지. 진짜 세상을 경험해야지" 하면서. 실제의 삶은 가상과 다르다고, 부딪히고 깨지면서 배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침이 닳도록 이야기했다.
그때마다 동생은 우리 반 모든 애들이 다 한다면서, 왜 나만 못하게 막냐며, 형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떼를 쓰며 울던 날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보이기 시작했다.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 끝없는 경쟁의 폭풍우, 혼란스러운 정세와 같은 재난들이 현실을 삼켜가는 것을 말이다.
기후 위기, 치열한 경쟁 사회, 사회 양극화를 가진 세상이 오히려 거센 풍파가 몰아치는 홍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모두가 위험하다고 단정 지었던 메타버스는 동생과 같은 베타 세대들에게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한 피난처 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전처럼 동생의 핸드폰을 무장적 빼앗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사는 험한 현실을 모르는 편이 더 났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물리적인 전쟁, 기아, 양극화가 없는 가상 세계가. 미소를 지으며 게임 캐릭터로 친구들과 대화하고, 협동해 나가는 모습이.
옆에서 보기엔 더 평화로워 보인다.
우리가 흔히 베타 세대를 향해 '미디어 중독', '온실 속 화초'라 부르는 이 현상이, 과연 특정 세대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각자의 방주를 통해 생존을 위한 혼돈의 시대를 건너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긴 항해가 두렵지 않은 이유는 등대의 빛이 있기 때문이다. 소망과 희망, 그 어느 꿈 없는 항해는 삶을 표류하게 만들 뿐이다.
요즘도 가끔 동생과 나란히 창가에 앉아 하늘을 본다. 예전처럼 맑진 않지만, 여전히 그곳엔 구름이 떠다니고 새들이 날아다닌다.
우리는 이제 두 개의 방주를 가졌다.
하나는 현실을,
하나는 가상을 항해하는 배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두 방주가 건너는 바다를 모두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폭풍우 치는 시대에,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