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왔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는 심정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김이 서린 헬멧을 올린 배달 아저씨가 입김을 거칠게 내뿜으며 내게 봉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봉투를 공손히 두 손으로 받고,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갓 튀겨진 음식에만 나는 따뜻하고 고소한 냄새가 복도부터 스며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치킨이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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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우리 집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뇌종양에 걸리시면서 병원비가 밀렸고, 어머니의 퇴원 후 아버지는 그 비용을 메우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셨다. 누군가 우리 가족을 멀리서 봤다면 '불행한 가정'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만 아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있었다. 바로 매달 마지막 날, 온 가족이 함께 치킨을 먹는 날이었다.
그날 밤이면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그동안 모아둔 용돈과 잔돈을 꺼냈다. 동전과 지폐를 하나하나 세며 금액에 맞는 치킨을 고르는 과정은 마치 작은 축제 같았다. 돈이 적으면 집 앞에서 파는 저렴한 전기 통닭을, 돈이 좀 더 모이면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집의 바삭한 후라이드를 시켰다.
치킨이 도착하면 우리 가족은 마치 오랜 연습이라도 한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버지가 치킨 박스를 펼치면, 동생은 치킨무 국물을 버리고, 나는 앞접시를 나눠주고, 어머니는 소금과 소스를 세팅하셨다. 아무런 소통이 없어도 우리는 한마음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모두 자리에 앉으면 나와 동생은 부모님이 먼저 드시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항상 닭가슴살부터 집으셨다.
"아빠는 닭가슴살이 좋아!"
"엄마도~"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나의 사랑하는 닭다리를 빼앗기지 않았다는 마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싸 닭다린 내 거다!ㅎㅎ"
그러다 매번 치킨을 먹을 때마다 가슴살을 고르시는 부모님을 보며, 어린 나는 부모님이 정말로 닭다리를 싫어하시는 줄만 알았다.
"왜 이걸 안 드시는 거지?"
부드러운 닭다리를 내 입 속으로 넣으면서 이해를 못 한 채 그저 고개를 젓기만 했다.
어느 날, 옆 집 세훈이네에서 생일 파티가 있었다. 세훈이 어머니께서는 파티 후에 남은 치킨을 우리 집에도 가져다주었다.
"치킨이 남았는데 좀 드시겠어요?"
"아휴, 감사합니다"
당시 나와 동생은 이미 저녁으로 고기를 많이 먹은 터라 들어갈 배가 없었다.
"엄마 전 배불러요.. 안 먹을래요"
"저도요.."
그렇게 나와 동생은 비디오 게임을 실컷 하다가 일찍 잠에 들었다.
자다가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려고 뒤척이며 일어났을 때였다. 눈을 비비며 부엌을 지나려던 중 잠시 멈칫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식탁에 나란히 앉아 남은 치킨을 드시고 계셨던 것이다. 그중 닭다리를 들고 천천히 뜯고 계시는데 그때 부모님의 표정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온 보물을 손에 쥔 사람처럼.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사실 부모님도 닭다리를 좋아하셨다는 것을. 하지만, 부모님에게는 닭다리보다 바로 자식들을 향한 사랑 더 소중했기에 언제나 자신의 몫을 양보하며 퍽퍽한 가슴살을 드셨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다. 첫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집에서 치킨을 시켰다. 이번에는 내가 부모님을 위해 준비한 특별한 날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신제품이나 다양한 시즈닝이 첨가된 치킨들도 많았지만, 후라이드를 유독 좋아하시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위해 가장 기본적인 후라이드를 선택했다.
치킨 상자를 열자마자 어머니, 아버지는 변함없이 닭가슴살부터 집으셨다. 내가 일부러 먼저 퍽퍽 살을 집어 들며 "아버지 어머니, 이제 닭다리 좀 드세요."라고 말했지만, 어머니는 대답 대신
"이 집 기름 참 깨끗하네.", "너무 맛있다."
아버지는 "너희 많이 먹어^^"라며 계속해서 가슴살만 드셨다. 가슴살을 씹고 있는 건 내가 아닌데, 내 목이 자꾸 메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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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넘어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상자를 열었을 때 퍼지는 고소한 풍미, 바삭한 껍질 속 촉촉하고 부드러운 살결과 육즙은 누구나 사랑할 만하며, 각종 시즈닝과 양념으로 취향에 맞게 즐길 수도 있는 변화무상한 음식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치킨의 가장 큰 매력은 다른 곳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 자리에 모여 둘러앉아 다양한 부위를 나누고,
동시에 함께 마음을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치킨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
나는 치킨이라는 음식이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는 걸 이젠 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의 추억이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며,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랑 배달 왔습니다."
그래서일까? 요즘 배달원의 "배달 왔습니다~"라는 목소리가 사뭇 다르게 들린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