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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희 강 Mar 19. 2024

다정하고 친절한 말이 필요한 시간

지금, 나에게.. 그리고 

  23년 3월 코로나 종식이 선언되었다. 하지만 3년여의 세월은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것 같지 않은 변화가 느껴진다. 

 반려 동식물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급증했고, 인터넷 쇼핑과 배송은 감염증 시대보다 줄어들긴 했어도 짜장면 배달처럼 일상화되었다. 직접적인 대화는 물론이고 목소리를 듣는 통화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도 많고, 갈등이 폭력을 동반하는 사례가 많이 보도되며 더 직접적인 대면을 회피하는 상황을 낳기도 한다. 

 카톡 katok 등 모바일 메신저가 대면을 대신에 하는 일이 더욱 많아졌지만 그에 대한 피로도 증가하면서 읽지 않은 메시지에 대한 빨간 숫자가 늘어나는 경향도 생겼다. 페북이나 인스타 등의 SNS를 넘어 혼자 보는 OTT, 유튜브 사용의 횟수가 늘어났고, 10분 내외의 유튜브 YouTube에 서사 story도 힘들어 틱톡 Tictok 같은 1분 내외의 숏폼 ShotForm에 몇 시간을 소비하는 건 일상이 되었다. 성인뿐만 아니라 사회화의 과정에 있는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도 비대면의 시대를 지내면서 소통의 방식에 뭔지 모를 문제가 느껴진다.     

 

   소통은 컴퓨터, 인터넷이 없었을 때도 물론 힘들었다. 소극적인 성향의 필자 역시 직접 말하기보다 쪽지나 편지로 생각을 전하는 게 편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에 과몰입되는 성향으로 섣부른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좋지 않다는 억압의 기재가 있었다. 

 청소년기 - 중학교 때 어떤 죽음의 상황을 접한 후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마음과 자신을 표현하며 살아가는 삶을 지향하게 되면서 친구라고는 짝꿍밖에 없던 내가 다른 친구들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10년쯤 노력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그 폭은 넓지 않았다. 그래도 단짝 친구만 있던 나는 대여섯의 친구가 생겼다. 그때 읽었던 소설 <데미안>의 문장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그 작고 여린 생명이 그 딱딱한 껍데기를 깨지 않으면 죽는다는 설명에 좀 놀랐던 거 같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온다.’라는 당연한 자연의 행위가 그 껍질을 깨지 못하고 죽은 새도 있고, 어미새가 그 껍질을 깨도록 도와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의미를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선택해야 할 것도 많았고, 해야 할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서툴렀지만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떨림 가득한 목소리로 노래도 하고 춤도 췄다. 사실 끔찍한 일이었지만 ‘지금 해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시도했다.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 바쳐라, 사랑은 그럴 때 아름다워라. 술 마시고 싶을 때 한 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마셔보아라.” 이런 말도 안 되는 노래도 있었지만 20대 초반의 나에겐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게 미친 듯 술을 마시기도 하고, 동아리 활동이며 낯설고 새로운 공간을 누렸다. 당시 인천대학교는 학원민주화 투쟁이 한창이었고, 전대협- 한총련으로 이어지는 운동권 활동과도 종종 접점이 있었고, 그것도 하나의 문화로 여기고 데모, 집회에도 진심을 다했고,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부풀린 파마머리에 커다란 귀고리, 하이힐과 진한 화장을 한 나는 환대받는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운동권이 주류를 이루는 데모현장에서 그런 존재는 부르주아 어쩌고 머 그런 거였을까?

 물론 그런 생각을 한 것은 훨씬 나중이었고, 그때는 내 마음이 옳다고 믿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에 몸과 마음을 쏟았으니 스스로 충분했다. 운동권들이 '작업'을 하지 않아서 자유로운 존재였고, 덕분에 다양한 문화를 나만의 방식으로 만나며 그 시절을 보냈다. 어찌 되었든 스스로는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성장하는 시기였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통 -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었다. 소극적인 성향의 나는 듣는 것에 익숙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나누고 싶었지만 언제 말해야 하는지 몰랐다. 말하는 사람은 마구 말했고, 끊임없이 말했으며 – 어른이던, 선배들이던 다들 그랬다. 듣는 사람은 서서히 지겨워졌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자리와 그런 사람들 모이는 자리는 피했다. 함께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어딘가를 찾기 시작했다.  

  '말하기' 대신 일기를 지금까지 쓰고 있다. 생각이나 느낌, 하루의 빛깔과 바람에 대한 생각, 그래서 떠오른 시와 시인의 이야기, 노래 가사와 그림, 영화에 대한 이야기, 그러다가 영화에 푹 빠지기도 했다. 소소하고 평범한 느낌과 생각을 소심하게 적어갔다. 그렇게 펜을 굴려 일기를 쓰다 보면 몇 장이 넘어갔다. 손가락이 휘어지도록 쓰다니.. 나도 참 말하고 싶은 - 말이 많은 아이였다. 그래서 컴퓨터에 키보드로 글을 쓰게 되면서 손가락이 안 아파서 좋았다. 

  그렇게 ‘똘이장군’으로부터 ‘무찌르자 공산당’을 노래하던 아이에서 ‘자본주의의 붕괴’와 ‘지속가능한 더 나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아이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동전 두 개로 걸던 공중전화에서 스마트폰으로,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카세트레코더의 테이프 Tape에 녹음하던 아이에서 MP3와 유튜브로 음악을 듣고, 펜촉에 잉크를 적시며 쓰던 편지에서 카톡이나 텔레그램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시대의 전환을 온몸으로 맞은 91학번 '영희'는 브런치 스토리를 쓴다. 

  직접적인 대면이 어려웠던 아이는 통화보다 문자를 많이 했고, 급하지 않다면 타인의 시간을 뺏는 통화보다는 시간이 될 때 볼 수 있는 문자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어른이 되었다. 나는 문자를 보더라도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상황과 조건이 반영된 감정과 뉘앙스는 전달되지 못해서 종종 오해를 불러오기도 하고, 이해가 부족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여전히 낯을 가리는 성향은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았다. 천성일수도 있고 환경일 수도 있다.


 왜 나는 눈을 보며 대화하는 것이, 목소리를 들으며 통화하는 것이 어려웠을까? 고단한 삶 속에 나의 부모도 형제자매도 따뜻하게 말하는 법을 몰랐던 거 같다. 다정한 말 한마디 들어본 적 없으니 말을 듣는 일이 힘들었던 거 같다. 우리 대부분은 다정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만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코로나 기간 드러나는 다양한 상황들에서 친절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벼운 토닥임, 다정한 쓰다듬기, 추울 때 건네는 따뜻한 물 한 잔의 친절함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그러나 목마르다고 말하지 않으면 여전히 모를 수 있는 것도 있다는 걸 알게 한다. 

  대부분의 민중-우리들은 고단하고 힘들다. ‘두둑한?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말이 어쩌면 대부분의 고단한 삶 속에 있는 사람들의 거칠고 날카로운 말이 어디로부터 나왔는지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감염증이 아니더라도 단절은 있었고, 날카로움과 거침, 폭력은 있었다. 다만 모두가 한꺼번에 앓는 전 세계적 통제와 단절은 기존의 것들을 냉정하게 드러나게 했고, 더불어 현재의 문제들도 고스란히 드러냈다. 만날 수 없었던 이들은 고립의 상황에서 유튜브와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스스로의 치부까지도 만나게 되었다.   

 감염증 시대에 타인을 만나는 일, 눈을 보고 손을 내밀고 말을 거는 일은 당연하지만 위험한 일이었고, 남에게 해를 끼칠까, 타인이 우리 아기에게 병든 부모에게 해를 줄까 하는 두려움을 넘어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코로나가 종식되었지만 우리 내면에는 여전히 그런 두려움이 있다 그것을 넘어서는 다정함과 친철함이 필요하다. 

 필자는 여린 내면에 비해 강해 보이는 외면으로 차가움과 거리감을 준다고 한다. 감정적인 성향을 숨기고자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자 했던 태도가 거기에 더해져서 더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러링’처럼 똑같이 대하는 습성이 있다. 친절하게 대하면 친절하게, 거칠면 거칠게..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지만 생각이 다른 타인에게 친절하게 말하는 법을 배우고 싶다. 불친절한 타인에게 우아하고 착한 말로 친절하라고 말하고 싶고, 잘못된 행동에 반발하지 않고 바꿔야지 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단어가 궁금하다. 싸우기기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가기 위해 말하고 싶다.      


  다정하고 친절한 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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