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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희 강 Apr 09. 2024

4월 이야기

슬프고도 아름다운 

춥니덥니 하던 3월을 지나, 4월 5일 식목일이니 필 꽃들이 피었고, 더러는 일찍 더러는 늦게 꽃망울을 터뜨렸다. 3월이면 새 학기를 시작하니 봄이라 생각했는데 4월이 돼야 꽃피는 봄, 봄다운 봄이었다.


배다리 철로변길 - 황토벽집 담장@2020. 4.

도원역에서 내려 배다리 작업실로 가는 철로변길에 시시철철 다양한 새와 식물들을 만나지만 이 봄에 냉이꽃 씀바귀꽃에 키 작은 민들레와 보랏빛 제비꽃에 허리를 숙이다 보면 벚꽃 살구꽃 복숭아꽃까지 피고 만다.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벌써 19년째 오가는 길이다. 


출퇴근길 멀리 서쪽 중구의 답동성당 종루와 더불어 자유공원 일대의 스카이라인이 나와 카메라의 눈에 담겨왔다. 작업실로 내려가는 철로변길에 답동성당 종루, 내리교회 십자가(아마도), 길병원, 자유공원 등 중구 쪽 건물들이 온도와 습도에 따라, 미세먼지, 황사, 안개 등에 따라 달라지며 눈높이에서 펼쳐졌었다. 이제 이런저런 건물들이 그 스카이라인을 지우고 있어 아쉽다. 


도원역에서 동인천방향으로 가는 배다리 철로변길, 멀리 내리교회와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보인다.@2020.04

꽃 필 데가 적은 출근길, 부흥로터리에서 부평역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콘크리트, 아스팔트, 보도블록 사이에서 얼굴을 내민 초록들이 귀하다. 그조차도 노인일자리-조끼를 입으신 어르신들이 지나가고 나면 없어지기 일쑤다. 그래서 새삼 뽀록뽀록 손톱만큼씩 올라온 어린잎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물들고 나서야 도시의 계절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연신 누르는 카메라엔 노란 리본이 달랑거렸고, 그렇게 10년, 봄의 환희와 4월의 잔인함 속에 놓인다.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문밖에 거대한 유세차가 노래를 부르고, 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그런 활동을 온 열정을 다 해본 적도 있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과도한 애정과 반대하는 정당에 대한 혐오가 충전되어 발이 부르트고, 목에서 쉰 소리가 나도 가슴이 참 뜨거웠다. 언제나 그렇게 치열하길 바랐던 나였다.    


1998, 2004, 2008,.... 거대 양당 사이에서 어부 지리였을지, 등 터지는 새우였을지 모르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 ‘일하는 사람이 인간답게 대접받는’, ‘88만 원 세대’,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99% vs 1%’, ‘작은 화분에 주는 물이 지구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와 같은 어구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여전히 정치는, 선거는 가장 역동적인 사람들의 모습이고, 내 심장도 덩달아 뛰게 만든다.       

나에게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가지라 했던, ‘민중’을, ‘민주주의’를, ‘진보’를, ‘진보정치’를 가르쳐줬던 이들은 흩어지고 사라지고 낡아지고 찌그러졌다. 이런저런 이름으로 끝없이 싹을 틔워보지만 잘 크지는 못하고 있다. ‘성장통’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걸까?     


2015년 4월 골목갤러리 한점으로부터 @

가끔 자료를 찾기 위해 오래된 외장하드디스크에 전원을 연결한다. 텍스트파일은 살아있지만 이름만 보이고 썸네일이 뜨지 않는 이미지 파일이 적지 않다. 이미지만 보면 대략 알 수 있었기에 이름 짓기를 미뤘을, 일련번호로 되어있는 파일들에 내가 찾지 못한 정보가 있으리란 생각에 아쉬웠다. 그 가운데 어따ᅠ간 이유인지 아직! 살아있는 사진들에서 그들을 본다. 선명하다.    

  

더러는 사라지고, 더러는 남은 파일들을 보며, 디지털 이미지 파일의 속성을 미흡하게 이해하고 저장한 것은 나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술(또 누군가 만들었을)이 그런 인간의 속성을 파악해 그들이 원하는 것(정보와 같은)을 내어놓고 있지만, 관련 정보들이 이익 여부에 따라 사라지고 감춰지고 과장되는 상황에서 ‘분별’은 나의 몫이 된다.       


  

부평캠프마켓, 최바람_설치미술작품 '날개, 싸돌아다니다'@2022년 5월


한동안 <사피엔스>, <이기적 유전자>, <자본과 이데올로기>, <총균쇠>, <코스모스> ... 등의 빅히스토리를 담은 글들을 읽으며 나는 누구이며, 인간은 어떤 존재일가를, 삶은 무엇이며, 함께 산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하는..  진보는 무엇이고, 더 나은 존재가 된다는 건 또 어떻게 가능할까 생각도 해보고, 지천명이 넘은 나이는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어진다.  


4월 1일 만우절을 지나 4.3 제주의 붉은 동백꽃에 어린 슬픔, 4.11 임시정부 수립일, 4.16의 세월호 노란 리본의 기억, 4.19 민주주의 혁명의 깃발, 4월 20일 장애인의 날 .. 그리고 내일은 4.10 22대 국회의원 선거다. 


국가는 왜 존재하며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삼권분립은 어떤 의미인가? 보수와 진보의 역할은 무엇인까? 국가 소멸 수준의 인구 증가율 앞에 무엇들이 서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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