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 날아든 칼날
단순한 연휴의 후유증이었을까요?
평소 꿈을 꾸지 않던 제가 오늘은 웬일로 악몽에 시달리다 깨어났습니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을 만큼 절망스러운 내용이었죠. 최근 만화방에서 읽은 '귀멸의 칼날'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이 도깨비에게 가족을 잃거든요.
악당을 향해 휘둘러야 할 칼날이 제 꿈속에까지 찾아온 것일까요?
검은 개?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자 노력하며 이불 속의 온기를 조금 더 음미했습니다.
바로 그때였어요.
창가에 드리워진 커튼을 바라보던 찰나에 '그 친구'의 기척을 감지한 것은.
맞아요. 그건 틀림없이 한동안 잊고 지냈던 '검은 개'였습니다.
'검은 개'는 윈스턴 처칠이 우울증을 가리켜 붙인 별칭이라고 해요. 우울증은 일상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고, 집요하게 따라오는 '검은 개'와 같다는 이유로 말이죠.
저는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뀔 무렵에 가벼운 우울감을 느낍니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검은 개'를 맞닥뜨리곤 하는 거죠.
바로 오늘처럼 말이에요.
피라미드
가령 이런 그림이 있다고 해볼게요.
마치 피라미드를 위에서 내려다본 것 같아 보이죠?
하지만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그림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실상 이 그림이 돌출된 것인지, 푹 꺼져있는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하고자 하는 말은 '돌출되어 있다고 믿게 되면 좀처럼 그 생각을 바꾸기가 어렵더라'는 것입니다.
'아닌데? 난 쉬운데?'
뭐, 그런 사람도 있겠습니다만.
불안의 질주
그러고 보면 사람의 마음은 참 이상합니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가득할 때는 모든 게 좋아 보여요.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 한 번 불안이 찾아오면?
모든 게 의심스럽고 비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조금 전과는 다르게 피라미드 그림이 땅 아래로 푹 꺼져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그러한 '관념'은 마치 거대한 기관차와도 같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쉽사리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곤 하죠.
불안의 질주를 멈추려 애쓸수록 '걱정'이라는 땔감을 쉴 새 없이 던져 넣는 일이 될 뿐입니다.
주문을 외워봐
오늘 아침, 저는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검은 개를 만난 탓이겠죠. 어느 덧 연례 행사처럼 되었음에도 식은 땀이 나곤 해요.
너무 깊이 빠져버리면 제 의지만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으니까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골치 아픈 일들이 떠올랐고, 그로 인해 파국을 맞는 상상을 하는 데까진 채 5초도 걸리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무력감이 더 커지기 전에 최근에 터득한 주문을 속으로 외웠습니다.
'결국엔 잘 해결될 거야.'
답정너?
답정나!
맞아요.
막연하고 대책 없는 주문일 뿐입니다. 하지만 뒷부분이 조금 더 있어요.
결국엔 잘될 거야.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면 기분이 완전히 달라지더군요.
내가 그렇게 만들겠다고 정했으니까 그렇게 실행하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저는 요즘 가벼운 우울증세와 무기력함은 이 주문으로 해결하고 있답니다.
속는 셈치고 한 번 써먹어보세요.
답을 정하는 건 네가 아니라 바로 '나'라고.
그게 내가 사는 세상의 규칙이라고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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