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정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원한 캐나다 소재 풀타임 MBA에 합격했어요. 지난 5월까지 9군데에서 떨어졌는데, 10번째 지원한 학교에서 오라고 하네요. 학교는 캐나다에서 TOP 10 안에 든다고 하니, 노력한 만큼은 결과가 나온 거 같아요. 오랜 꿈이 40대 중순이 되어서 이루어 졌네요.
면접을 못봐서 불안한 마음으로 일주일을 기다렸습니다. 새벽 1시, 합격메일을 받고, 자고 있던 아내를 깨웠습니다. 그동안 도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안아주었습니다. 눈물이 많이 나더라고요.
꿈꾸는 바보의 꿈이 이루어졌어요.
몇 번 언급했다시피, 원래 공부를 못했고, 어릴 적 가정형편은 상당히 어려웠었습니다. 고3 수능성적은 학급에서 뒤에서 두 번째였고요. 꿈도, 소망도, 계획도 없던 20살의 어느 날 꿈이 생겼었습니다.
호주 시드니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 사진을 보고, '이런 데서 살아볼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해외여행 경험이 전무했던 터라 시드니가 미국인 줄 알았습니다.
'우아. 미국유학을 가면 이런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거야? 나도 대도시와 대자연을 누리며 살아보자.'
그때부터 유학의 꿈은 제 가슴속 깊은 곳에서 빠져나간 적이 없었습니다. '영어권 국가의 학교에서 공부하고, 현지 취업도 해보고 싶다. 세상을 더 느껴보고 싶다.' 그런 열망이 불같이 일었습니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그 꿈이 20살 제게 왔었습니다.
유학을 가려면 영어를 당연히 잘해야 하니까.
영어로만 말하고 살려면 영어를 잘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 많았습니다. 대학 편입시험이 그랬습니다. 영어성적이 당락에 가장 중요한 요소였거든요.
"어차피 미국유학 갈 거니까 영어를 열심히 해야 돼."
이런 생각은 멘탈을 단단하게 잡아 주었습니다. 편입학한 학교는 토플 고득점을 하면 교환학생에 보내주더군요. 그래서 대학시절 내내 토플책을 끼고 살았었습니다. 미국 교환학생으로 가서 2학기 동안 공부했는데, 집안 형평상 그 넓은 미국 어디 한 군데 여행가지 못하고 한국에 와야 했어요. 곧 취업을 하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회사에서 가끔 머리 좋고, 부자인 친구나 동료들이, 미국 캐나다 등 좋은 나라로 유학 가고 해외주재원 가면 속이 상하곤 했었습니다. 공부를 해보려다가도 '몇억이나 되는 해외유학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기가 죽었었고, 어느 학교에도 지원 한번 못해보고 아이 키우며 십수 년 세월을 보내버렸네요.
그러다 약 4년 전 승진심사에 밀려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화나는 일이 있었는데, 유력집안의 경력직 후배에게 제가 승진할 자리를 빼앗겼던 것이지요. 배신감과 공허감에 휩싸입니다. 가만히 당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민 중이었던 육아휴직을 던지게 됩니다. 그렇게 어설프던 주부생활이 조금 익숙해 지려 할 때, 슬며시 깊이 처박혀 있던 꿈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이들 현지에서 영어 배우기 딱 좋은 나이인데, 그냥 석사를 해버리면 어떨까?"
40대 초에 이런 엉뚱한 결단을 하고 육아, 공부, 투자를 병행한 지 만 3년이 흘렀네요.
오랫동안 꿈의 노예였는데, 이제야 해방이 된 것 같습니다.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이 해방감이 너무 좋다'라고...
이제는 해외로 나가는 누군가가 부러워, '나도 쟤처럼 집에서 밀어주면 할 수 있을 텐데...' 이런 속앓이들 하지 않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이루지 못한 꿈은 좌절의 연료가 되어 가슴 안에 만성적 슬픔을 만들고, 결국 냉소적으로 변하는 사람들을 보지 않습니까?
'나는 물러서지 않았고, 합격장을 받았으니, 지능, 출신, 자녀뒷바라지, 재산 같은 온갖 핑계들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변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 된 것 같아 너무 기쁘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그래서, 생라이브 창업일기는 당분간 쉬게 될 것 같습니다.
캐나다 이주 준비와 주식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빠서, 사업을 진척시키는 것은
당분간은 어려울 거 같아요. 따라서 연재도 무기한 쉽니다. 죄송합니다.
'나인투원' 사업은 천천히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래도 삶의 기록들을 남겨두고 싶기에 다른 주제로 어떻게 쓸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소중한 독자님들께 먼저 소식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끝으로,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저처럼 이런 소식으로 인해, 왠지 모를 슬픔을 느끼는 분이 있다면,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빠는 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