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균열과 파국 - 끝나지 않은 전쟁의 기록
보이지 않는 전쟁
신뢰가 무너진 관계 속에서 사소한 오해와 불만은 증폭되기 마련이다. 민희진은 하이브가 의도적으로 뉴진스를 차별하고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차별에 대한 인식'은 사실 여부를 떠나 갈등을 심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민희진은 뉴진스가 성공한 이후에도 하이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보 및 마케팅 자원 배분에서 다른 레이블에 비해 불이익을 받고 있으며, 하이브의 중앙 지원 조직(인사, 재무 등)이 비협조적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뉴진스의 성공이 하이브의 지원 없이 스스로 이루어낸 성과라고 강조하며 피해 의식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하이브는 구체적인 수치(2023년 뉴진스 관련 보도자료 273건 배포 등)를 제시하며, 타 그룹 대비 결코 적지 않은 수준의 지원을 했다고 차별 주장을 일축했다. [7-1]
갈등의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는 이른바 '인사 논란'이다. 뉴진스 멤버 부모들의 항의 이메일을 통해, 하이브의 특정 임원(혹은 방시혁 의장)이 사내에서 뉴진스 멤버들의 인사를 받지 않고 무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는 단순한 에티켓의 문제를 넘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문제로 비화하였다.
이 사건은 뉴진스 멤버들과 민희진에게 깊은 감정적 상처를 남겼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이브 시스템 안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하이브는 즉각 '사실과 다르다'며 해명했지만 논란은 계속되었다. 민희진 측은 하이브 해명이 진정성 없다고 반박했고, 하이브 측은 오히려 민 대표가 부모들을 내세워 여론을 호도한다고 맞섰다. [7-2]
심리학적으로, 한번 불신이 형성되면 상대방의 모든 행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작동하게 된다. [8] 민희진은 이미 하이브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이브의 행동 하나하나를 자신에 대한 공격과 차별의 증거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차별에 대한 인식은 양측의 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고,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주주 간 계약(SHA)과 성공의 대가
감정적인 갈등과 불신이 쌓여가는 가운데, 갈등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결국 돈과 권력의 문제였다. 뉴진스의 폭발적인 성공 이후, 성공의 과실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둘러싼 치열한 암투가 벌어졌고, 그 중심에 주주 간 계약(Shareholder Agreement·SHA)이 있었다.
뉴진스의 성공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2023년 어도어는 매출 1,103억 원, 영업이익 335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민희진에게 자신의 기여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기대 심리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뉴진스의 성공이 오로지 자신의 창의성과 노력의 결과라고 믿었고,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과 권한을 요구했다. 주주 간 계약(SHA)은 투자계약으로서, 창업자인 민희진과 대주주 하이브 간 권리·의무를 정리한 문서였다, 하지만 급등한 기업 가치로 분쟁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갈등의 핵심 쟁점은 민희진이 보유한 어도어 지분 18%에 대한 풋옵션(Put Option·주식매수청구권)의 가치 평가 방식이었다.
1. 기존 계약의 내용과 한계
기존 SHA에 따르면, 풋옵션의 행사가격은 어도어의 영업이익에 13배의 멀티플(Multiple·배수)을 적용하여 산정하게 되어 있었다. 뉴진스의 성공으로 어도어의 영업이익이 급증하면서, 이 풋옵션의 가치는 약 1,000억 원 규모로 추산되었다. [9]
2. 재협상 과정과 30배 요구의 의미
2023년 하반기부터 민희진은 하이브에 SHA 재협상을 요구했다. 그녀는 풋옵션의 멀티플을 13배에서 30배로 상향 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실현될 경우 그녀의 지분 가치는 약 2,700억 원까지 상승하는 수준이었다. [10] 이는 단순한 돈의 문제를 넘어 자기 능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었다.
3. 하이브의 거절과 협상의 결렬
하지만 하이브는 이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30배라는 멀티플은 과도한 수준이었고, 다른 레이블과의 형평성 문제도 야기할 수 있었다. 결국 양측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고, 협상은 결렬됐다. 하이브는 민희진의 요구를 탐욕으로 간주했고, 민희진은 하이브가 자신의 기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다른 핵심 쟁점은 경업금지 조항이었다. SHA에는 민희진이 퇴사 후 일정 기간(계약 만료 시점인 2026년 11월까지) 동종 업계에서 일할 수 없도록 하는 경업금지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민희진은 이 조항이 자신의 창작 활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하고,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이 조항 때문에 하이브를 떠날 수도 없고, 자신의 지분을 매각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토로하며, 이를 '노예 계약'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하이브는 해당 조항이 일반적인 계약 조건이며, 민 대표에게 충분한 보상(가만히 있어도 1,000억을 번다)이 주어졌기에 '노예 계약'이 아니라 '파격 대우'라고 반박했다. [11]
이는 법적인 문제를 넘어, 창작자의 권리와 윤리적 문제와도 연결된다. 경업금지 조항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은 양측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고, 민희진이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게 만드는 배경이 되었을 수 있다.
SHA를 둘러싼 갈등은 결국 '창작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는 K-팝 산업에서 자본과 창의성이 충돌하는 핵심적인 지점이다.
민희진은 창작자의 아이디어가 성공의 핵심이며, 이는 기존의 재무적 지표로는 측정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가진다고 믿었다. 반면 하이브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기업의 가치는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평가되어야 하며, 시스템의 규칙을 벗어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두 가지 철학은 공존하기 어려웠다. 이는 단순히 민희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창작 대 자본이라는 K-팝 산업 전반의 딜레마를 드러낸 사례였다.
필연적 파국을 향하여
2024년 초, 하이브와 민희진의 관계는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고, 경제적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SHA 재협상이 결렬된 후, 민희진은 하이브 시스템 안에서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녀는 자신과 뉴진스의 생존을 위해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성된 내부 문건들(이른바 '프로젝트 1945' 등)은 향후 '경영권 탈취' 의혹의 핵심 증거가 되었다. 이 문건들에는 외부 투자자 유치, 하이브 지분 매각 유도 등 어도어의 독립을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가 담겨 있었다. [12] 민희진은 이것이 단순한 상상 수준의 사담이었다고 주장했지만, 하이브는 이를 심각한 배임 행위이자 경영권 찬탈 모의의 증거로 규정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마지막 순간은 바로 '아일릿 카피캣 논란'이었다. 2024년 3월, 하이브 산하 빌리프랩(하이브와 CJ ENM의 합작 레이블)에서 데뷔한 신인 걸그룹 아일릿이 뉴진스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민희진은 이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2024년 4월 초 하이브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내부 고발 메일을 보냈다. 그녀는 아일릿의 카피가 뉴진스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는 단순한 표절 시비를 넘어선, 하이브에 대한 최후통첩이자 선전포고였다. 민희진은 이 문제를 통해 그동안 쌓여왔던 불만을 폭발시키고,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결과적으로 2024년 봄의 파국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이브와 민희진의 결합이 가진 근본적인 모순과 구조적인 문제들이 누적되어 폭발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서로 다른 꿈을 꾸었던 두 주체는 멀티 레이블 시스템이라는 불안정한 구조 속에서 충돌했고, 신뢰의 붕괴와 감정의 대립은 갈등을 증폭시켰으며, 성공의 대가를 둘러싼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은 파국을 앞당겼다.
뉴진스의 성공 신화는 이 모든 갈등을 덮고 있는 화려한 외피였을 뿐이다. 그 이면에서는 이미 붕괴가 진행되고 있었다. 결국 2024년 4월, 누구도 원치 않았던 폭발이 현실화하고 말았다.
[각주 및 참고문헌]
[7-1] "[전문]하이브, 민희진 기자회견 내용 정면 반박", 『노컷뉴스』, 2024년 4월 26일자 기사. (하이브는 "지난 1년간 뉴진스 관련 보도자료를 273건 작성·배포했으며, 이는 타 레이블 대비 결코 적지 않다"고 밝힘).
[7-2] ""뉴진스 인사 안 받아"vs"홀대 사실무근"... 민희진·하이브, 또 충돌[MK이슈]", 『스타투데이』, 2024년 5월 13일자 기사. (인사 논란에 대한 양측의 주장 및 하이브의 5월 13일자 입장문 내용 참조).
[8] Daniel Kahneman, Thinking, Fast and Slow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2011). (확증 편향 및 인지적 오류에 대한 심리학적 이론 참조).
[9] 박수지, "'1000억 풋옵션'의 진실…민희진-하이브 주주계약 해부", 『한겨레』, 2024년 5월 3일자 기사. (주주 간 계약 내용 및 풋옵션 가치 추정치 분석 참조).
[10] "민희진, 지분가치 보상 '13배→30배' 요구... 하이브 "과하다" 거부", 『동아일보』, 2024년 4월 30일자 기사. (30배 적용 시 지분가치 추산액(약 2,700억 원) 분석 참조).
[11] 민희진, (2024년 4월 25일). 긴급 기자회견 발언 내용 및 하이브 공식 반박문(2024년 4월 26일) 참조. (민희진의 '노예 계약' 발언과 하이브의 '파격 대우' 반박 내용).
[12] "하이브, '경영권 탈취 모의' 문건 공개…민희진 측 '사담 수준'", 『조선일보』, 2024년 4월 25일자 기사. (논란이 된 내부 문건의 내용 및 양측 주장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