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 코드: 위기의 K팝 13

제2부 균열과 파국 - 끝나지 않은 전쟁의 기록

by 도라지

제6장: 방아쇠는 당겨졌다


모든 거대한 붕괴에는 결정적인 방아쇠가 존재한다. 2024년 봄, K-팝 산업을 뒤흔들고 2025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하이브와 어도어의 전면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양측의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불신과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임계점에 도달해 있었다. 뉴진스의 성공이라는 화려한 외피 아래 곪아가던 갈등은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시한폭탄이었다. 그리고 그 뇌관을 건드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브 산하의 또 다른 레이블에서 데뷔한 신인 걸그룹, 아일릿이었다.


2024년 3월 25일, 아일릿의 등장은 단순한 신인 데뷔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그것은 하이브 멀티 레이블 시스템의 모순이 극명하게 시각화된 사건이었다. 민희진 대표에게는 자신의 창조적 정체성에 대한 실존적 위협, 즉 '카피캣(Copycat)' 사태로 인식되었다. 이 논란은 그동안 잠재돼 있던 모든 갈등을 단숨에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후 1년 반에 걸친 기나긴 법정 공방과 K-팝 역사상 유례없는 아티스트의 계약 해지 선언으로 이어졌다.


거울 이미지의 등장

2024년 3월 25일,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 소속의 아일릿이 데뷔곡 'Magnetic'을 발표하며 공식 데뷔했다. 티저 이미지가 공개되자마자 온라인에서는 "뉴진스인 줄 알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중과 팬들은 아일릿에서 뉴진스의 강력한 기시감, 즉 데자뷔 현상을 느꼈다.


유사성은 전방위적이었다.


1) 비주얼 콘셉트와 스타일링: 아일릿은 뉴진스가 선도했던 Y2K 감성과 자연스러운 10대 소녀의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처럼 보였다. 긴 생머리, 연한 메이크업, 몽환적이면서도 키치한 색감 등 '민희진 감성'의 핵심 요소들이었다. 민희진 대표는 "헤어, 메이크업, 의상, 안무, 사진, 영상, 행사까지 뉴진스를 모방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사례들을 열거했다. [1] 특히 데뷔 쇼케이스 의상, 안무 대형, 심지어 명절 한복 사진의 구도와 색감까지 유사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2) 음악 스타일과 사운드: 음악적으로도 아일릿은 뉴진스가 개척한 '이지 리스닝'의 계보를 이었다. 'Magnetic'은 편안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특징으로 한다. 이는 뉴진스의 음악이 가진 핵심적인 특징인 미니멀한 구성, 몽환적인 사운드, 자연스러운 보컬과 맞닿아 있다.


3) 브랜딩 및 마케팅 전략: 10대 소녀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강조하는 콘셉트, 데뷔 초기부터 패션 브랜드 행사 참여를 통한 이미지 메이킹 전략 등은 뉴진스가 이미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 논란이 이토록 심각한 갈등의 방아쇠가 되었는가?


1) '취향'의 도용과 브랜드 가치의 훼손: 뉴진스의 성공은 '민희진 감성'이라는 취향과 미학에 기반하고 있었다. 아일릿의 등장은 이러한 고유한 취향이 도용되고 복제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이는 뉴진스의 브랜드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민희진에게 이것은 자신의 창조적 정체성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었다. 그녀는 입장문을 통해 "아류의 등장으로 뉴진스의 이미지가 소모되었고, 불필요한 논쟁의 소재로 끌어들여져 팬과 대중에게 걱정과 피로감을 주었다"고 토로했다. [2]


2) 멀티 레이블 내부의 카니발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 더욱 결정적인 문제는 이것이 외부의 경쟁사가 아닌, 같은 지붕 아래 있는 하이브 내부에서 자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멀티 레이블 시스템이 시너지는커녕,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파괴하는 '카니발라이제이션(자기 잠식)'이 현실화한 것이다. [3]


3) 방시혁 의장의 개입과 철학의 충돌: 특히 민희진의 분노를 증폭시킨 것은 아일릿의 프로듀싱에 하이브의 수장인 방시혁 의장이 직접 참여했다는 사실로 알려졌다. 민희진은 "아일릿의 뉴진스 카피는 빌리프랩 혼자 한 일이 아니며 하이브가 이를 주도한 일"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4] 이는 단순한 불신의 문제를 넘어, K-팝 산업화의 방향성을 둘러싼 철학적 충돌이기도 했다. 일부 비평가들은 방시혁 의장이 추구하는 K-팝의 '테일러리즘(Taylorism, 과학적 관리법에 기반한 효율적 대량생산 시스템)'과 민희진이 추구하는 '테일러메이드(Tailor-made, 장인정신 기반의 맞춤형 제작)' 방식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으로 해석한다. [5]


K-팝의 자기 복제와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의 딜레마

아일릿 사태는 K-팝 산업이 오랫동안 안고 있던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K-팝에서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란 무엇인가?


K-팝 산업은 성공한 모델을 빠르게 모방하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통해 성장해왔다. 이러한 '자기 복제(Self-Replication)' 관행은 산업의 효율성을 높였다. 하지만 콘텐츠의 획일화를 초래했다. 문제는 벤치마킹과 표절의 경계, 특히 콘셉트나 스타일의 영역에서 매우 모호하다는 점이다.


현행 저작권법 체계에서는 콘셉트나 아이디어를 보호하기 어렵다. 저작권법은 '아이디어(Idea)' 자체는 보호하지 않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구현된 '표현(Expression)'만을 보호하는 '아이디어/표현 이분법(Idea/Expression Dichotomy)'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6] 'Y2K 감성'이나 '자연스러운 소녀 이미지'라는 콘셉트는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한다.


실제로 법원은 이후 가처분 결정에서 "설령 아일릿의 콘셉트나 스타일이 뉴진스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뉴진스의 성과물이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재산상 이익을 침해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7] 또한 2024년 12월, 하이브 측이 제기한 소송과 관련하여 재판부는 "아일릿 콘셉트가 뉴진스를 베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8] 이는 콘셉트의 유사성을 법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 이는 K-팝 산업의 윤리적 책임과 상도의의 문제와 직결된다. K-팝 산업은 오랫동안 창작자의 권리와 오리지널리티를 존중하는 문화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멀티 레이블 시스템을 운영하는 하이브는 각 레이블의 독창성을 보호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했지만, 이 역할에 실패했다. 이는 하이브의 거버넌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내부 고발과 하이브의 역습

카피캣 논란이 확산하자, 민희진은 하이브 시스템 안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식적인 행동에 나섰다.


2024년 4월 민희진은 하이브 경영진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메일의 핵심 내용은 아일릿의 카피가 심각한 IP 침해이자 브랜드 가치 훼손이며, 하이브가 뉴진스를 차별하는 불공정 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이었다. 뉴진스 멤버들과 그 부모들까지 동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모들 역시 별도의 이메일을 통해 하이브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민희진의 내부 고발은 명분 확보, 협상력 강화의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의도는 하이브와의 결별을 각오한 최후통첩으로 보인다. 그녀는 "소속 아티스트의 문화적 성취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행동이 왜 회사 이익에 반하는 것처럼 왜곡되느냐"고 반문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9]


하이브는 침묵을 깨고 강력한 반격을 감행했다. 2024년 4월 22일 오전, 하이브는 어도어 경영진에 대한 감사를 전격 착수했다. [10] 동시에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하이브, '뉴진스 엄마' 민희진 감사 착수…'경영권 탈취 시도' 포착"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11]


하이브의 '경영권 탈취' 의혹 제기는 사태의 국면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강력한 전략이었다. 그것은 '카피캣 논란'과 '내부 고발'이라는 민희진의 프레임을 무력화시키고, 그녀를 '배신자'로 낙인찍는 효과적인 무기였다. 민희진은 순식간에 피해자에서 회사의 이익을 배신하고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탐욕스러운 가해자로 전락했다.


'경영권 탈취' 의혹과 여론전

하이브가 제기한 '경영권 탈취' 의혹은 이 사태의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었다. 하이브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내부 문건과 카카오톡 대화록을 증거로 제시했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이른바 '프로젝트 1945'라는 제목의 내부 문건이다. 이 문건에는 외부 투자자 유치 방안, 하이브 보유 어도어 지분 매각 유도 전략, 뉴진스와 함께 독립하는 방안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12] 또한, 어도어 경영진의 카카오톡 대화록에는 "어도어를 빈 껍데기로 만들어서 데리고 나온다"는 취지의 발언이 포함되어 있었다. [13]


이에 대해 양측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렸다. 하이브는 이것이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담고 있는 명백한 배임 행위라고 주장했다. 반면 민희진은 하이브의 부당한 대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나온 '사적인 대화'이자 '상상'에 불과했다고 반박했다. 그녀는 기자회견에서 "직장인들이 푸념하듯이 한 이야기를 가지고 경영권 탈취라고 몰아가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14]


핵심 쟁점은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의 성립 여부였다. 한국 법에서 배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계획이나 모의를 넘어 구체적인 '실행의 착수'가 있어야 한다. [15]


초기 여론전은 하이브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하이브는 정보를 통제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형성했다. 특히 자극적인 이슈들을 동원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주술 경영' 프레임이다.


하이브는 민희진이 무속인과 경영 관련 대화를 나눈 내용을 공개하며, 그녀가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했다고 주장했다. [16] 이는 민희진의 합리성과 신뢰성을 파괴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으며, 여성 리더에 대한 편견과 여성혐오적 시각과 맞물려 증폭되었다. 이는 여성을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과 연결되어 있으며, 민희진을 마녀사냥 하는 듯한 양상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양측의 주장을 검증 없이 전달하는 데 급급했고, 진실은 실종되었다.


[각주 및 참고문헌]

[1] JoongAng Daily. (2024.04.22). "ADOR CEO slams HYBE group ILLIT as 'NewJeans copycat'".

[2] 어도어(ADOR). (2024년 4월 22일). "뉴진스 카피 사태 및 하이브의 부당 행위에 대한 공식 입장문".

[3]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2024년 4월). 멀티 레이블 시스템의 카니발라이제이션 관련 인터뷰 발췌.

[4] 어도어(ADOR). (2024년 4월 22일). 공식 입장문.

[5] 별샛별. (2024.04.26). "테일러리즘 방시혁 vs. 테일러메이드 민희진". Stibee 칼럼 (델타월딩 뉴스레터).

[6] 오승종, 『저작권법』 (서울: 박영사, 2023). (저작권법의 기본 원칙인 '아이디어-표현 이분법' 참조).

[7]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 (2024년 5월 30일).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 결정문 (사건번호 2024카합20800).

[8] Reddit. (2024.12). "The court confirmed Illit didn't copy Newjeans". (해외 커뮤니티 반응 및 관련 보도 인용, 하이브 측 제기 소송 관련 법원 판단 보도 참조).

[9] 민희진. (2024년 4월 22일). 공식 입장문 발췌.

[10] Ko Dong-hwan. (2024.04.22). "HYBE launches audit into ADOR's management amid spin-off allegations". The Korea Times.

[11] "하이브, '뉴진스 엄마' 민희진 감사 착수…'경영권 탈취 시도' 의혹", 『연합뉴스』, 2024년 4월 22일자 기사.

[12] "하이브가 공개한 '프로젝트 1945' 문건…무엇이 담겼나", 『SBS 뉴스』, 2024년 4월 26일자 기사.

[13] "하이브, 민희진 카톡 공개…'어도어 빈껍데기 만들어'", 『동아일보』, 2024년 4월 25일자 기사.

[14] 민희진. (2024년 4월 25일). 긴급 기자회견 발언 내용.

[15] 대법원 2010. 7. 15. 선고 2009도14324 판결 등. (업무상 배임죄의 성립 요건 중 '실행의 착수'에 대한 판례 참조).

[16] "민희진, 무속인과 경영 논의?…하이브 '주술 경영' 의혹 제기", 『매일경제』, 2024년 4월 25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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