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균열과 파국 - 끝나지 않은 전쟁의 기록
전쟁의 장기화
2024년 봄의 충돌 이후, 사태는 초기 폭로전을 넘어 장기적인 법정 공방으로 치달았다. 이 과정은 K-팝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 치열한 권력 투쟁으로 기록되었다.
전면전이 시작되자 민희진은 2024년 4월 25일, 전례 없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여론을 뒤흔들었다. 이후 사태는 사법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민희진은 하이브의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막기 위해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2024년 5월 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민희진이 어도어의 독립을 모색한 것은 분명하지만, 구체적인 실행 행위로 나아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하이브에 대한 배신적 행위가 될 수는 있겠지만, 어도어에 대한 배임 행위가 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며 가처분을 인용했다. [17] 이로써 민희진은 대표직을 유지하는 듯했으나, 하이브는 임시 주총에서 민희진의 측근 이사들을 해임하며 이사회를 장악했다.
결국 민희진은 2024년 8월, 경영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어도어 대표직에서 공식 해임(또는 연임 불가 통보)되었으며, 이사직에서도 사임하며 회사와 결별했다.
민희진은 퇴진 직후 본격적인 법적 대응에 나섰다. 2024년 7월, 그녀는 아일릿 표절 의혹을 부인하며 자신을 비난한 김태호 빌리프랩 대표 및 관계자들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하고, 50억 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동시에 "뉴진스의 성과를 일부러 깎아내렸다"는 이유로 하이브 홍보 책임자들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하이브와 빌리프랩 측도 맞대응했다. 김태호 대표는 2024년 10월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표절 주장은 사실무근"이라 단언하며, 민희진을 상대로 형사 고소 및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고 확인했다. 양측의 대형 로펌들이 총동원되며 분쟁은 더욱 복잡해졌다.
뉴진스의 개입과 최후통첩
민희진 퇴진 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뉴진스 멤버들의 직접 개입이었다. 2024년 9월 11일, 뉴진스 다섯 멤버 전원은 돌연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하이브 스태프로부터 미묘한 따돌림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2주 안에 민희진을 대표로 복귀시키라는 최후통첩을 밝혔다. 이는 K-팝 역사상 전례 없는 아이돌의 공개적인 항명이었다.
데드라인인 9월 25일, 어도어는 민희진의 경영 복귀는 거부하면서도 타협책을 제시했다. "민희진 전 대표의 이사회 임기 연장을 위한 주주총회를 소집하겠다"고 밝히고, 동시에 "앞으로 5년간 민희진이 뉴진스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안을 제안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하이브가 뉴진스 멤버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한 절충안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뉴진스는 타협안이 아닌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2024년 11월 14일,어도어에 계약 조항 시정을 요구하는 문서를 보낸 후, 최종 기한일인 11월 28일 밤 전격적으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진스 멤버들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어도어와의 전속계약을 전원 해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멤버 하니는 "어도어는 뉴진스를 보호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 여기 남아봐야 우리의 정신적 고통과 시간 낭비만 길어질 뿐"이라고 결별의 변을 밝혔다.
어도어 측은 즉각 법적 대응에 돌입했다. 2024년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전속계약 효력 유지 가처분을 신청하여, "뉴진스는 어도어 관여 없이 독자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잠정 명령을 받아냈다. 이에 따라 뉴진스는 사실상 활동 정지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양측은 전속계약 존속 여부를 두고 본안 소송에 돌입했다.
양측 주장의 쟁점은 "신뢰 관계 파탄이 계약 해지 사유로 인정될 수 있는가"였다. 뉴진스 측은 "민희진 총괄 프로듀서가 쫓겨나면서 회사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고, 신뢰가 완전 붕괴하였다"는 논리를 폈다. 반면 어도어/하이브 측은 계약서 조항을 근거로 계약을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재판부는 이 분쟁을 "미지급 정산이나 노예계약이 아닌, 신뢰도 문제로 소송까지 간 독특한 사례"라고 평했다.
2025년, 끝나지 않은 전쟁
1년 반에 걸친 분쟁은 2025년 가을, 일차적인 법적 결론에 도달했지만,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법적 판단은 민사와 형사에서 엇갈렸다. 먼저, 하이브가 민희진을 고발했던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 서울 용산경찰서는 1년 3개월여 수사 끝에 2025년 7월 15일, "혐의없음” 결론을 내리고 사건을 불송치했다. 하이브가 제기한 지분 무단 매각 시도 및 회사 기밀 유출에 따른 배임 의혹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는 민희진 해임의 주된 명분이 무력화된 것으로, 민희진에게는 중요한 승리였다.
반면 전속계약 분쟁에서는 하이브가 승리했다. 2025년 10월 30일, 서울중앙지법은 뉴진스와 어도어 간 전속계약 분쟁 1심 판결에서 "계약상의 의무 위반이나 법률상 해지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뉴진스의 계약이 2029년까지 유효함을 확인했다. 재판부는 민희진 해임으로 인한 불신은 이해되지만, 그것이 법률적으로 회사의 의무 위반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판결 직후 어도어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뉴진스 측은 즉시 항소 의사를 밝히며 "어도어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2025년 10월 16일, 민희진은 (주)ooak(오크)이라는 신규 엔터테인먼트 법인을 설립하고 독립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이는 그녀가 새로운 아티스트를 발굴하며 제2의 도약을 준비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한편, 뉴진스는 2024년 하반기 이후 공식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2024년 5월 싱글 'How Sweet' 이후 공백기가 1년 반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K-팝 최고 인기 걸그룹이 분쟁으로 인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하이브에도 연간 수백억 원대의 기회비용 손실을 의미했다. [18]
사태의 발단이 된 아일릿은 꾸준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2025년 6월 발표한 미니 3집 'BOMB'은 성공을 거두었고, 데뷔 이래 모든 앨범을 빌보드 200 차트에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2025년 8월에는 K-월드 드림 어워즈에서 2관왕에 올랐으며, 일본 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다는 평가다. 아일릿은 초기 '뉴진스 아류' 논란을 딛고 하이브의 차세대 주력 걸그룹으로 성장했다.
이 사태는 K-팝 산업 전반에 걸쳐 중대한 논쟁거리를 남겼다.
1) 아이돌의 주체성: 과거와 달리 아이돌이 소속사에 공개적으로 이견을 표출하고 자신의 커리어에 발언권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이 확인되었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창작 파트너로서 아이돌의 위상 변화를 보여준다.
2) 오리지널리티와 시스템: 콘셉트 표절의 법적 입증은 어렵지만, 창의적 고유성을 지키기 위한 업계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화두가 던져졌다. 특히 멀티 레이블 체제에서 콘셉트 중복을 피하기 위한 조율 시스템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3) 계약 관행의 변화 필요성: 신뢰 파탄으로 인한 계약 분쟁이라는 새로운 유형이 등장했다. 법원이 계약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함에 따라, 표준계약서 개정이나 분쟁 조정 제도 강화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4) 자본과 창의성의 균형: 이 사태는 K-팝 산업의 성장통으로 해석된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자본의 논리와 독창성을 중시하는 창의 권리의 충돌이었다. 하이브는 이번 사태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으며, 창의성 존중과 자율성 보장이라는 멀티 레이블의 명분이 무색해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기업형 기획사와 창의적 리더 사이의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5) 팬덤의 힘: 뉴진스와 민희진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팬들의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이는 K-팝 생태계에서 팬덤과의 소통과 사회적 눈높이에 부합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운영이 기업 가치에 직결됨을 보여주었다.
[17]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0민사부. (2024년 5월 30일).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 결정문.
[18] 증권사 엔터테인먼트 산업 분석 리포트 (2025년). 뉴진스 활동 중단에 따른 하이브 매출 손실 추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