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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chel Nov 19. 2022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

그렇게 엄마가 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헉!! 얼른 베란다로 가서 아이들이 오늘 입고 갈 체육복을 만져본다.

아직 축축하다. 얼른 걷어 건조기에 넣어 돌려놓고 아이들을 깨운다.

그리고 식기 건조대에 아이들 식판과 수저통을 꺼내 챙기며 볶음밥을 할까 주먹밥을 할까 고민하며

이내 쉬운 주먹밥으로 결정하고 밥통에 밥을 꺼내 아침 준비를 한다.

그 사이 일어난 딸들은 또 화장실에서 낄낄거리고 투닥거리다 결국은 '엄마'를 부른다.

쉬 한번 하는데도 한참이다.

아침을 차려 놓고 갈아입을 속옷을 꺼내 놓고 다시 한번 건조기를 살핀다.

여전히 축축하다 다시 돌려놓고 아이들은 속옷만 입고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다시 건조기 안의 체육복을 살펴본다. 그래도 여전히 군데군데 축축하다.

시간이 없으므로 냅다 꺼내 드라이기를 가져와 말려 입힌다. 

이쯤 되면 건조기도 있는데 왜. 미리 돌려놓고 자면 되지 아침에 그 난리통을 치나 할 것이다.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빨래를 돌려 바로 건조기에 돌리는 게 나는 용납이 안된다.

수건이나 속옷은 바로 건조기에 돌리지만 일반 옷들은 세탁기에 돌린 후 베란다 건조대에 말려 다 마르면

걷어 다시 건조기에 넣어 이불 털기 코스로 먼지만 털어낸다. 이중으로 일을 하는 것이다. 

왜냐고 또 한 번 묻는다면. 그냥 옷이 줄어드는 게 싫다. 금방 천이 상하는 느낌도 싫고. 

또 햇볕에 말리면 살짝 안 지워진 김칫국물 자국이 얼마나 잘 없어지는데. 또 햇볕에 잘 말린 옷을 걷을 때

그 까실함이란. 뭐,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이렇게 빨래를 한다. 그러니 항상 빨래에 치여산다.

지구를 아끼고 환경을 생각하는 분들이 들으면 한마디 하시겠지만, 

한번 입고 난 옷은 빨지 않으면 손이 안 간다. 

그래서 바로 빨래통에 넣게 된다. 아이들도 그런 나를 닮았다. 

유일하게 남편만 계속 입던 옷을 입다 나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때때마다 침대패드와 베개커버를 갈아줘야지 그러다 손님이라도 오면 이불빨래가 몇 배로 늘어난다. 

그리고 소파 커버 주방과 화장실 발매트 그 외 걸레류등등 모조리 조금 더럽다 싶으면 빨아 버린다. 

그림책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에도 나 같은 엄마가 나온다. 

  


보이는 건 무조건 빨아버리는 엄마. 처음엔 '이 엄마 굉장히 웃기네' 했었는데, 

지금 내가 똑같은 모습으로 보이는 건 무조건 빨아버리는 그런 엄마가 되어 버렸다. 

대학 동아리 OT 때 선배 언니가 '은경아. 여기 방 좀 닦아라' 하며 걸레를 던져 주는데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언니 방은 어떻게 닦아요?' 나는 당연히 몰라서 묻는 말인데, 

그 방에 있던 모든 동기 선배들이 입을 틀어막았다고 한다. 

대학생이나 돼서 방을 못 닦는 것도 이상한데 당당히 한 번도 안 닦아 봤다고 얘기하는 내가 너무 신기했다고.

엄마는 나를 그렇게 키웠다.

진짜 속옷 하나까지 다 빨아주시고 한 번도 나에게 집안일을 시킨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때의 나의 반응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지금까지도 대학 동기들끼리 모이면 그 일화로 나를 놀린다. 

그리고 지금 180도 달라진 내 모습을 보면 또 깜짝 놀란다. 공주같이 손가락만 튕기던 내가 쌍둥이를 키우고, 집안 구석구석 먼지 하나 없이 쓸고 닦고, 매일 같이 빨래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결혼생활과 육아는 몰랐던 나의 성향을 발굴하는 과정인지도. 

아니면 사람을 바꾸는 개조 시스템이거나. 

이 책의 뒷부분에는 엄마의 빨래 줄에 걸린 도깨비가 엄마의 레이더망에 걸리고, 

강제 빨래당하면서 다시 예쁜 도깨비로 거듭난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수백, 수천의 더러운 도깨비가 

엄마에게로 와서 외친다!! '빨아주세요. 씻겨주세요!' '그려주세요. 예쁜 아이로 만들어 주세요!' 

그런데 이 엄마의 대답이 기가 막히다! '좋아. 나에게 맡겨!' 

뭐든 잘 해내는 엄마의 모습에서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든든함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뭔가 측은하다. 그냥 내 모습 같아서. 

10년 결혼생활 7년 동안 육아를 하면서 바쁜 군인 남편 때문에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뭐든 스스로 척척 

해내는 아내, 엄마가 됐다. 

주변에서도 남편 없이 어떻게 혼자 이사며 운전이며 육아를 다 하냐고 대단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기까지 나를 바꾸기까지 얼마나 많이 내려놓고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다그쳤는지. 

하지만 방도 못 닦는 OT 때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뭐든 잘 해내는 엄마 든든한 아내로 조금 더 있고 싶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나는 주변을 돌아본다. 빨 것이 없는지. 

현관에 흙 묻는 아이들 운동화가 눈에 들어온다. 

'좋아! 나에게 맡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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