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 공놀이

by 리단쓰

어린 날 골목마다 노닐던 추억이 소환되었다.

어제까지 마무리하여 제출하기로 한 박완서 작가 작품 읽고 쓰기 모임의 숙제 때문이었다.


글쓰기 주제의 방향성은 3가지 정도 고민을 했었다. 태어나서 결혼 전까지 살았던 동네에서의 소소한 서사를 잔잔하게 떠올려서 쓰거나 대학 시절 민주화 열기 속 느꼈던 이념과 현실의 소용돌이로 만난 사건들도 염두에 두었고 나머지 하나는 이북 출신 시부모님의 애틋한 러브 스토리를 한국 전쟁과 1.4 후퇴등 격변기 속 시대상과 버무리고 싶다는 구상으로 한 주 동안 뒤척였다.


함께 모임에 참석한 멤버끼리의 추억이 되는 정도의 과제 수행이고 A4 2장 정도의 분량이니 그럭저럭 고민의 방향을 잡았다.


사실상 박완서 작가 작품들의 특징대로 경험적 서술로 추억을 엮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생각하면서 어린 시절 한편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남자상의 몇 가지 특징이 모아진 스타일을 알게 되었다.


늘 친구들과 좋아하는 아이의 성향이 어긋나서 이상하다 했는데 나는 평균적 잘생김 이상의 외모는 호감이 생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일단 보조개 있는 남자를 좋아하는데 그저 스치듯 생겨도 좋아하는 편이다. 그리고 갸름이는 썩 안 좋아한다. 동글동글 귀염상이며 못생긴 편안한 얼굴에 말수가 없고 잘 웃는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산출이 나왔다.


내가 선호하는 외모의 원형적 시작점은 그 골목 추억 속 '효성'이라는 동갑내기 남자아이였다.


60대인 지금의 기억 속에도 내가 학교 끝나고 골목으로 나가서 만나는 효성이의 보조개가 남는 얼굴을 좋아하는 여자 아이인 게 선명해진다.


효성이의 집은 동네 길목이 이어지는 지점의 좁다란 골목 속 기다란 빈 공간을 만들어 놓은 또 다른 골목길이라 우리가 아지트처럼 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래서인지 동네 아이들은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아도 당연한 듯이 효성이네 집 앞 골목으로 하나둘 모여들었고 모이는 순서대로 알아서 시시덕거리며 무언가를 즐기다가 어느 정도 멤버가 채워지면 술래잡기나 담방구라는 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나는 효성이가 좋았고 빨리 보고 싶었기에 학교를 마치면 가방을 휙 던져놓고 쏜살같이 그 골목으로 달려갔다. 늘 효성이는 미리 골목 담벼락에 서있었기에 나는 효성이와 둘이 놀고 싶어서 서둘러 달려 나가던 10살짜리 아이였다.


효성이는 내가 좋아하는 보조개 미소와 동그란 얼굴을 보여주며 둘이서만 할 수 있는 짬뽕공을 손에 쥐고 있었다.


짬뽕 공은 테니스공의 옛 명칭인 듯싶다. 지금으로 치면 스쿼시 같은 원리로 짬뽕공놀이를 하며 즐겼던 것 같다. 효성이가 골목길 벽 한쪽에 튕기면 그걸 내가 받아서 다시 벽에 튕기고 그걸 다시 효성이가 받아서 지그재그 놀이를 하는 방식이었다.


그건 완벽한 호흡이 맞아야 하고 조용한 골목길 공명으로 탁탁 거리는 공의 울림이 너무 신났고 한번 튕기고는 뭐라도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도 학교 숙제 많은지 학교는 재미있었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효성이랑 나는 둘이서만 키득대고 나누었고 속도감과 박자감을 유지한 짬뽕공은 계속 탁탁 움직이던 오후가 떠오른다.

아이들이 슬슬 더 오면 효성이는 짬뽕공을 주머니에 넣고 그만두었는데 나는 아쉽고 재미있었지만 그건 우리 둘만의 놀이로 정해진 것이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모여서 놀거리는 엄청 많았고 각자 집에서 저녁 먹으라고 데리러 올 때까지 골목의 아이들은 신났다.


그 골목의 아이들 소식은 끊어진 아이도 있지만 엄마들끼리 계모임으로 여전히 경조사도 챙기고 소식이 들리기는 하였다.


효성이는 중간에 전학을 가기도 했지만 엄마들 계모임을 안 한 까닭에 소식은 진즉에 끊어진 아이였다.


골목길 친구들을 떠올리자니 충분한 삽화들이 꾸려져서 이것저것 습작 노트에 적어두기로 마음먹은 게 이번 과제수행 중 최고의 득템이기도 하였다.


모임 과제를 꾸리다 얼결에 떠오르는 추억 보따리는 잘 정리해 두고 나의 과제는 그냥 14살부터 60대에 이르는 비망록으로 숙제를 제출했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내 옆에 딱 앉혀준 채로 자리매김을 해줄 때 의미가 있다는 걸 새삼 한번 더 느끼게 되었다.


60대의 효성이는 여전히 동그스름하고 적당히 귀여운 보조개 웃음을 가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