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집을 놀러 가게 되면 유난히 편안한 집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갑자기 친해져서 몰려다닌 친구 중에 인숙이라는 친구네 집이 그런 기억 속의 편안한 집이었다.
70년대의 집들은 일본식 가옥을 그대로 이어받은 한옥 형태의 집이 대부분이던 동네였고 집집마다 대문의 모양새나 마당의 크기와 부엌의 규모에 따라서 각기 특색을 지닌 집구조가 있었던 기억이 남는다.
인숙이네 집은 큰 길가에 있기도 하고 대문 앞 계단수가 적당했고 널찍한 구조들로 꾸며진 집으로 생각된다.
인숙이네 집을 특히 편안해하고 자주 놀러 간 추억이 떠오른다. 인숙이는 그야말로 세상 평온한 조건의 가족 구성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어린 나이에도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건축 설계사인 아빠와 동네 모임을 주도하는 괄괄한 성격의 엄마가 돋보이는 외동딸이면서 귀염둥이 막내딸이었다. 늦둥이로 태어나서 오빠 3명은 대학생이고 고등학생들이었으니 인숙이네 집은 여섯 식구지만 왠지 늘 한가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인숙이는 늘 원피스로 옷을 챙겨 입었고 원피스랑 비슷한 색의 머리끈이나 머리띠로 이쁘게 꾸미던 친구였다.
나는 오빠와 동생이랑 북적이는 복잡한 분위기의 우리 집보다 고요한 느낌의 인숙이네 집에서 둘이 뒹굴거리고 노는 걸 좋아했는데 무엇보다 인숙이네 집은 경쟁력 없이 넉넉한 간식이 늘 넘쳐났으니 나는 왠지 인숙이가 계속 나랑 친하게 지내길 바랐던 것 같다. 가끔 자신의 우위를 내세워서 친구를 제멋대로 쥐락펴락 하며 대장놀이를 하는 친구들도 알고 있기에 인숙이의 평온하고 착한 마음이 참 좋았다.
인숙이 엄마도 여러 명이 와서 난삽한 것보다 딱 나만 데려와서 놀게 해 주시니 나는 인숙이의 단짝이 되어 늘 희희낙락 쾌활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년 정도 지난 어느 날 인숙이네 집에는 갑자기 노란등이 달리고 동네에서 두런두런 인숙이 아버지의 죽음과 사업의 정리 등 어른들이 오고 가는 말들이 생겼다.
여전히 인숙이와 나는 동네 한편 어디선가 단짝이 되어 놀았고 누가 뭐라 안 해도 우리 둘은 더 이상 인숙이네 집 독채 놀이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얼마뒤 인숙이네 큰 대문과 계단이 없어지고 담벼락도 없애더니 우리의 은밀한 앞마당이 훤히 보이는 공사를 하고 인숙이네는 집대문 없이 커다란 유리문으로 드나드는 보신탕집이 되었다.
손님들이 북적이는 식당은 아니었고 동네 사람들이나 관공서 등 지인들이 드나드는 식당이었고 다시 인숙이와 나는 긴 밥상이 놓인 어느 방인가를 차지하고 수다도 떨고 공기놀이도 하였다. 인숙이는 여전히 착하고 배시시 웃고 앙보도 잘해주는 친구였고 나는 인숙이가 아빠가 보고 싶을까 봐 절대 인숙이 앞에서 아빠 이야기는 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숙이가 엄마가 없는 식당에서 놀자고 했고 인숙이 엄마는 어린 인숙이에게 외출하면서 혹시 손님이 오게 되면 해야 될 일을 몇 번이고 일러두는 걸 듣고 한가한 식당에서 마냥 뒹굴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우르르 들어왔고 인숙이는 여태껏 보아온 헐렁한 인숙이가 아닌 야무진 모습으로 손님상을 차려내고 있었다.
밥상마다 놓여있는 화구에 검은 냄비를 착착 갖다 두었는데 인숙이 엄마가 미리 냄비 속에 준비해 둔 야채 가득 재료들이 차곡차곡 담겨있었다. 분주한 인숙이를 보며 나는 무얼 할 건지도 모른 채 눈만 바빴다.
갑자기 인숙이가 옆테이블로 부르더니 빨간색 커다란 채반을 놓고 도와달라고 하였다. 인숙이가 하는 대로 열심히 재료를 잘게 찢으며 신기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인숙이는 재료가 모자란다고 휙 무언가를 내 앞에 던져주고는 아저씨들이 부르는 테이블 쪽으로 가면서 아까처럼 잘게 찢어달라는 거였다.
나는 4학년이었고 보신탕은 개를 음식으로 주는 걸 인식도 안 했고 더구나 생전 처음 검게 그슬린 개의 넓적다리를 손에 들고 있었다.
우정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버거웠던 그날의 기억은 너무도 강렬하다.
나는 아마도 울먹였던 것 같고 바쁜 인숙이의 뒷모습을 힐끗거리며 천정을 본채 그저 손을 움직여 그것을 잘게 찢은 기억이 있다. 마지막에 느껴지던 묵직한 뼈의 느낌은 꽤 오래 나를 힘들게 했다.
곧이어 인숙이 엄마가 오시고 우리는 밖으로 해방되었지만 나는 더 이상 놀지 못하고 집으로 와서 저녁도 못 먹고 오래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날 이후로 인숙이네 집보다 놀이터로 가서 놀았고 철부지 공주 같던 인숙이가 자꾸 언니처럼 여겨졌던 4학년 그날의 비망록이 저 아래 잠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