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회상에도 불쌍한 기억으로 남은 경자 언니의 단상을 남겨둔다.
동네 한의원집에서 식모로 살아가던 언니는 170 정도 되는 큰 키와 기다란 얼굴과 큰 입을 가진 외모로 곱상한 인상이기보다는 남자 같은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즈음부터 기억에 남아있는 경자 언니는 우리 집에 드나들며 우리 엄마를 언니처럼 따르던 가족 같은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그즈음 경자 언니는 한의원의 한약재를 배달하던 정수 삼촌과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한 시기였기에 이것저것 살림을 꾸리며 언니 같은 우리 엄마가 살피느라 우리 집을 자주 들락거렸다.
우리 집 건너편에 있던 한의원에서 결혼을 해서 우리 집 뒷골목의 집으로 신접살림을 차렸으니 자주 왕래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조각조각 기억을 모아보자면 경자 언니는 이쁘장한 얼굴은 아니고 큰 입으로 호탕하고 소리 나게 웃는 모습이 남고 정수 삼촌은 깔끔한 인상으로 기억된다.
결혼식 없는 시집을 간다는 표현 속에 엄마는 20년 넘게 식모살이시키며 결혼식도 안 해주는 한의원집 인색함에 불만을 했던 기억도 나고 한참 뒤 성인이 된 후도 묘사되는 회상 속에 나 또한 있는 자의 인색함에 혀를 찼다.
우리 동네 골목길 끝에 동네 아이들의 토목간이라고 불리는 놀이터가 있었는데 아마도 자재들을 보관하는 마당 있는 창고 같은 곳이었고 경자언니는 그 한편에 지어진 허름한 곳에 살림을 차렸다.
정수 삼촌 없는 시간에 경자 언니는 나를 자주 불러다 밥도 챙겨주고 큰 마당가에서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랑 술래잡기를 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큰 입으로 자주 깔깔 웃던 언니는 어느 순간 얼굴에 까맣게 점들이 생기고 배가 불러오니 임신을 했던 시기였다.
그즈음 경자 언니집을 안 가는 시간이 많아졌고 어른들 이야기 속에 불쌍한 경자라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 그러던 중 경자 언니네 음식을 가져다주러 간 심부름을 갔다가 무서운 장면을 보았다. 바로 부부 싸움의 폭력을 보게 된 현장이었다. 정수 삼촌은 무섭게 경자 이모의 큰 배를 발로 찼고 언니는 소리를 지르며 울어서 어린 나는 아무것도 할 수도 없었고 무서운 마음에 집으로 달려가서 어른들에게 알렸다.
그제야 경자언니가 불쌍한 건 임신한 뒤로 엄청난 매를 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놀랐다. 더 놀란 건 얼마뒤 경자 언니가 낳은 딸이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는 슬픈 사실이었다. 경자 언니 딸 명숙이는 거의 입도 못 다물고 늘 입을 벌리고 있었고 침을 엄청 흘리며 거의 방에 뒹구르 누워 있었다.
나는 경자 언니집에 여전히 들렀고 명숙이가 3살 정도 될 때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모르는 것 같아도 명숙이는 내가 가면 온몸을 버둥거리며 반가워했고 웃었다.
경자 언니는 정수 삼촌의 가출로 혼자서 명숙이를 감당하다가 어느 날 명숙이와 홀연히 우리 동네를 떠났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명숙이는 지방의 보육원에 경자 언니가 직접 버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이후 내가 6학년 정도 된 시기에 경자 언니는 새까매진 얼굴로 바짝 마른 몸이 되어서 우리 동네에 나타났고 우리 엄마를 보고 대성통곡을 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조각조각 기억으로는 명숙이를 버린 후 다시 찾아간 보육원에서 명숙이가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경자 언니도 간암 말기가 되어서 그리운 얼굴들이라도 보고 죽으려고 예전 살던 동네에 왔다는 것이고 훗날 다시 들린 소식은 결국 경자 언니도 남쪽 지방 어디선가 세상을 등진 것이었다.
가끔 과거 이야기 속에 경자 언니의 삶은 늘 측은하고 불쌍한 이야기로 떠올려졌다.
마지막 기억되는 경자언니는 엄마한테 막걸리 한잔 먹고 싶다고 투정을 부려서 술상을 받았고 어차피 죽는데 한잔 나누고 싶다고 했던 뿌연 기억이 떠오른다.
나와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얻어먹고 함께 지냈던 사람 중에 울컥 불쌍해지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경자 언니라서 절대 잊히지 않는 나의 기억 창고에서 각인되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