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떠오르는 과거의 인물묘사를 하다 보니 우리 동네 최고의 유지로 큰 축을 맡은 한의원집의 서사를 놓치지 못하고 끄적여야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경자언니의 식모살이 주인집이고 그 당시 고만고만한 살림살이에 따로 식모를 둔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었기에 그리고 티브이가 있는 집도 드문 경우라서 한의원집은 동네에서 보이지 않는 부자의 힘을 과시하는 분위기였다.
한의원집주인은 연배가 있고 첫 번째 부인에게 두 딸을 낳고 동네 초입의 큰 다방 마담과 살림을 차린 것이다.
70년대 시대상이 두 번째 부인을 두는 경우가 간혹 있거니와 첩이라는 용어로 비하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한의원집 두 번째 부인이 낳은 딸 소희와 한 살 차이로 자주 어울렸다. 특히 한의원 진료가 끝나고 나랑 소희는 진료실 침대에서 병원놀이를 하며 실감 나는 도구들이 마냥 좋았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의원집에는 진료 대기실 긴 소파와 커다란 티브이가 있는 엄청난 장소였다.
동네에서 엄청 비난을 받고 독특한 엄마분위기인 소희엄마이자 한의원집 두 번째 부인은 그 당시 첩이라고 대놓고 ㅡ이면서 동네 큰 다방의 마담이었던 소희엄마는 늘 틀어 올린 머리와 껌을 씹었던 기억이 난다. 소희는 세상 순하고 착하고 나한테 후하게 대해주었고 나는 시설 좋은 소희네를 편하게 드나드는 특혜를 누리느라 나름 소희의 비위를 맞추었으리라!
집집마다 이른 저녁을 먹고 하나둘씩 모여들면 한의원 대기실과 통로까지 사람들이 찼고 드라마 여로를 모두 보는 시청의 시간이었다.
자료를 보니 월요일부터 금요일 7시 20분부터 7시 50분까지 방영이라니 그 시간 동안 꼼짝 마였다.
엄마들은 아이들을 간수한다는 명분으로 따라와서 서성거리며 여로에 푹 빠졌고 아버지들은 연배 있는 한의원 주인장을 형님이라 부르며 또 서성거리면서 여로 드라마를 보았다. 아이들은 최대한 빼곡하게 줄을 맞추어서 보았는데 그저 몰려다니고 싶은 마음반 드라마 내용이 재밌어서 보는 것 반이었다.
바보스러운 남자 주인공의 외모나 모습에 빵빵 터지고 눈물짓는 여자 주인공 따라 훌쩍이기도 하였던 3학년 시절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역시 어린 시절의 뒤안길은 소중한 한 조각의 무언가를 남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