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세식 화장실 추억

by 리단쓰

박완서 작가의 단편 중 '어떤 야만'이라는 작품 속에 묘사된 부분으로 책모임에서 잠시 추억 나누기가 있었다.

화장실 문화의 변천사에 대한 나눔 시간으로서 현재의 수세식이 보편화되기 전 일반가정의 화장실은 소위 푸세식이라는 형식의 모양새가 있었던 것이다. 그걸 떠나서 전라도 지역의 깊고 깊은 푸세식 중 일 보는 아래 깊숙하게 돼지나 닭이 있는 경우도 회자되었다. 제주도 태생인분은 제주도 흑돼지와 얽힌 추억도 이야기되었다.


서울과 지방에 따라 동시대의 동년배임에도 화장실 문화는 차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40대의 여러분은 수세식 이전의 화장실 형태인 푸세식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로 모두 신기한 느낌을 나누기도 하였다.


책 내용의 주제를 되짚으며 작중 인물의 성격이 묘사되는 부분에서 화장실 문화를 묘사하는 부분이 있었기에 이야기의 흐름은 다양하게 펼쳐진 것이었다.


수세식은 그야말로 변기밑 정화조로 처리되는 방식이라면 푸세식은 직접 똥차가 출동해서 푼다는 의미로 푸세식이라고 이름 지어진 것이다.


푸세식도 훨씬 이전에는 똥지게라는 형식으로 사람이 직접 푸고 양쪽 똥지게로 이동해서 처리하는 방식에서 어느 순간 두툼한 호스로 똥을 빨아들여 처리하는 방식으로 발전되는 양상까지 이야기의 다발은 무궁무진하게 펼쳐졌다.


60대인 나의 경험 속에도 초등학교는 푸세식이었고 점차로 수세식으로 변천을 겪었던 기억이 있다.


일본식 가옥으로 지어졌던 우리 집은 대문 옆에 화장실이 있었고 중문을 지나 마당과 수돗가 그리고 장독대가 있었고 봉당이라는 계단과 툇마루 형식의 구조였으니 집안에 화장실은 없었다. 기억해 보니 고등학교 때까지 푸세식 구조였다가 내가 대학 들어가던 82년도 그해에 자식들 교육비가 부담되서인지 한옥을 헐고 집 바깥 둘레를 빙 둘러 상가를 두르고 안채로 우리 살림집을 둔 형태로 고치며 화장실은 수세식으로 변모하였다.


과거로의 추억과 소설 속 내용들을 교차해 가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의 어린 시절에도 존재했던 똥차와 똥지게 그리고 실어 나르는 똥지게의 개수대로 똥값을 치르는 일화들이 떠올라서 놀랐다.


소설 속 인물이 똥지게의 값을 줄이려고 악다구니를 쓰는 장면에서도 역시 슬그머니 나의 어린 시절 장면 한 자락이 스쳤다. 똥지게 한통마다 가격이 매겨지니 쌍방 간 실랑이가 있었던걸 기억하게 되었다. 어린 나에게 아버지는 성냥개비를 쥐어주고는 똥 치우는 아저씨가 똥통 하나씩을 채우고 가져갈 때마다 성냥개비를 바지 주머니에 옮기라고 했고 나중에 성냥개비 숫자와 아저씨들의 셈이 맞는지를 헤아렸다는 걸 어린 시절의 나는 잘 몰랐고 박완서 작가 독서 모임을 참여하며 드디어 인지된 추억 한 자락이 되었다.


언제고 소설 한 편을 적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대는 어린 시절 살던 골목골목의 일화들은 너무도 생생해서 저릿거렸다.


어린 시절을 보내고 거기에서 결혼을 하고 떠나온 동네가 문득 소환된 책 읽기의 달콤함을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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