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구슬이 삐그르르 굴러간다. 놀이터 한 편의 아이들이 그쪽으로 몰려간다.
‘그래, 아직도 구슬치기는 남아있구나’ 구슬을 따냈는지 모자 쓴 아이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그 아이의 행복감을 충분히 알 수 있는 마음이 되어 추위에도 손가락을 불어가며 구슬 하나 더 따려고 안달이던 저편의 유년이 아른거린다.
하얀 백묵으로 커다란 삼각형을 그려놓고 주머니에서 예쁜 구슬을 한 개씩 내려놓는다. 한 사람씩 자기의 전투용(?) 구슬을 던져서 삼각형 밖으로 나간 구슬을 따먹는 놀이는 조준만 잘하면 꽤나 재미가 괜찮았다. 다른 방법은 한쪽 눈을 감고 계단 모서리에 구슬을 튕겨서 멀리 나간 사람부터 남의 구슬을 맞히는 놀이다. 자기 구슬과 상대방 구슬의 간격을 발뼘으로 재어서 구슬을 따먹는 것이다. 구슬을 잃은 남자아이들은 볼멘소리로 몇 개 팔라고 하지만 책상 위의 보물단지에 열심히 모으기 시작했다. 구멍가게에 가면 하얀 눈깔 사탕하고 바꾸어 주기도 하고 돈으로 바꾸어 주던 시절이었다. 커다란 분유통에 나날이 늘어나는 것을 흐뭇해하며 사탕의 유혹이나 돈으로의 환산에는 절대 흔들림 없이 찰랑거리는 구슬소리가 좋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터졌다.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는 신중을 기하던 찰나 대문이 삐긋이 열리며 큰 덩치의 누런 복실개가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얼떨결에 구슬은 멀리 튕겨져 나갔고 주저앉은 내 다리에는 피가 줄줄 흘렀다. 놀란 개 주인이 나와서 치료를 해주는데 하필이면 동네에서 여자아이들한테 인기 있는 같은 학년 남자아이가 약솜이며 약들을 엄마 주문대로 날라주었다. 개 이빨 자욱이 위아래로 그대로 박힌 장딴지를 보며 그렁그렁한 눈물을 매단 채 얼굴이 벌게진 그 아이를 보느라 아프다는 소리도 못했다.
저녁이 되어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자 옆집 할머니가 물린 개의 꼬리털을 태워서 된장하고 붙여야 덧이 안 난다고 엄마를 부추겼다.
다음날 기가 막힌 민간치료제[개털과 된장]를 붙인 채로 교실에 들어섰다. 담임선생님은 남자아이들에게 다리 건드리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짓궂은 아이가 발로 차서 나를 울렸고 그 아이는 교탁 옆에서 벌을 받게 되었다. 심술이 난 그 아이는 선생님에게 모든 걸 고자질했다.
“선생님 ㅇㅇㅇ은 구슬치기 하다가 개한테 물렀대요”
학교에서 얌전한 아이가 동네에서 구슬치기 도사라는 게 안 믿기는지 웃음 띤 얼굴로 확인하시는 선생님께 어찌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엄청난 수모가 있어도 구슬치기는 즐거움을 나날이 주었고 6학년이 되자 실력은 향상되고 책상 위 보물 상자는 두둑해졌다. 중학생이 된 오빠는 여전히 바깥 놀이에 열심인 내가 걱정되었는지 아니면 시샘이 났는지 남자아이들하고 구슬치기 하는 모습만 보면 난리였다.
그즈음에 구슬치기 전성기를 막 내리는 또 하나의 일이 생겼다. 공부를 억지로 가르쳐주는 오빠와 딴전만 부리던 내가 티격태격 싸우게 되었다. 발끈한 오빠는 갑자기 구슬을 모아둔 보물상자를 덜렁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얘들아 이 구슬 줍는 사람이 임자다” 하면서 와르르르 쏟아버렸다.
수지맞은 동네 아이들은 하나라도 더 주워가려고 바글거렸다. 눈물을 쓱쓱 닦으며 옥상을 내려왔다. 속마음이야 엉망진창이 되어 별 못할 욕을 다하면서.....
나름대로 충격이 된 건지, 중학생이 된다는 생각에서인지 그 후로 구슬치기는 막을 내렸다.
지금은 100원에 몇 개일까? 그때는 10원어치가 꽤 많았는데....
미끄럼이 싫증이 났는지 그네로 달려가는 딸아이의 웃음 속에 덩달아 기뻐져서 달려가 그네에 앉아본다. 흔들흔들 기분 좋은 리듬감에 눈을 살짝 감으니 몽롱한 듯 가슴살이 간지러워진다. 언젠가 오늘의 사소한 그네 타기도 그리워지는 저 편 세월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소중하게 소중하게 발을 굴러 그네를 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