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독서 모임 중 발제로 나온 내용 중 미신이나 사주팔자를 믿는가를 두고 잠시 토론을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 생활 속에 자리 잡은 미신이나 점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 기억이 스쳤는데 그 당시 동네에서 철학관을 운영하는 신 씨 아저씨에 대한 기억이었다. 선비 같은 조용조용한 분이었는데 제법 많은 예약한 손님들을 받는다고 용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어느 날 우리 집 건넌방에 신 씨 아저씨가 두어 달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철학관 상가에 문제가 생겨서 손님들 예약된 것을 취소할 수 없어서 우리 집 건넌방에 앉은뱅이책상과 방석을 두고 손님을 받았다.
그다지 번잡한 일은 아니어도 신경이 쓰이기는 하였다. 마당가에서 내 시간을 보내다가도 신 씨 아저씨 철학관 손님이 오면 마루나 툇마루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며 우리 식구들은 그들의 사연을 듣게 되기도 하였다.
어느 날 엄마는 김치 만두를 하신다며 마당과 부엌 툇마루에 김치를 다지며 도와달라고 해서 나는 김치국물을 뒤집어쓴 채 엄마를 돕게 되었는데 그때 하필 신 씨 아저씨 철학관에 아담한 여자분이 점을 보러 왔고 나는 쑥스러워서 부엌 쪽에서 조심스럽게 토닥이며 김치를 다지며 어쩔 수 없이 철학관에 온 여자손님의 사연을 대략이나마 들으며 어린 나이에도 목소리 이쁘고 얼핏 보았을 때 아담한 몸매의 여자분이 안된 마음이었다. 남편이 돈벌이를 안 하고 고시공부를 하며 백수로 지낸 지가 꽤 되었고 이제 그만하면 좋겠는데 포기를 안 한다고 하소연하며 고시 합격운을 점치러 온 것이었다.
한참 김치국물을 뒤집어쓴 채 마무리하고 수돗가에서 씻으려고 마당을 가로지르려는 순간 마침 철학관의 손님도 용무가 끝나서 하얀 하이힐을 막 신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나는 막 김치 다진칼을 들고 얼굴에는 김치국물도 얼룩진채 앞자락도 벌건 김치국물이 범벅이었다. 괜스레 부끄러워서 휘릭 돌아서려는 순간 여자손님과 눈을 마주쳤고 순간 들고 있던 칼을 놓칠뻔했다.
세상에나 여자 손님은 우리 학교 인기 짱 가정선생님으로 딱 배우 김자옥 같은 분위기인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선생님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라 신 씨 아저씨한테 내가 딸인지 물었고 아저씨는 나를 어찌 아는지 물으니 선생님은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이라며 혼비백산 나갔다.
나는 가정선생님을 마주친 것도 놀랐지만 사연을 들은지라 신 씨 아저씨한테 선생님 남편이 고시에 붙는지 물었고 다행히 합격운이 있다고 해서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이후 학교에서 가정 선생님이 너무 불편해하시는 걸 느꼈고 나는 친구들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고 혼자만의 비밀을 지켰다. 어제 남편과 수다를 나누며 우연히 기억이 떠올라 봉인해제된 것이다.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을까?
사람의 운은 역시 존재할까?
가정 선생님 남편은 고시합격생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