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층간 소음 때문에 다툼이 많고 이로 인해 끔찍한 사건도 일어나고 있는데 유럽도 층간 소음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개인 주택은 별 문제없지만 아파트의 경우, 유럽은 한국에 비해 노후된 경우가 많아 층간 소음문제가 심각합니다. 저는 유럽에서 일정기간 계약을 맺고 월세로 살았기 때문에 (유럽은 전세제도가 없고 월세, 아니면 자가입니다) 여러 번 집을 옮겼고 한국의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져 모두 아파트를 택했기 때문에 그만큼 층간소음 문제도 많이 겪었습니다.
처음 유럽에 온후 아파트 3층에 살았는데 밑에 사는 네덜란드 이웃이 그다지 친절한 가족이 아니었습니다. 생김새부터 호감형이 아닌 중년의 안주인이 저희 가족이 처음 이사 온 날부터 불편한 시선을 보냈고 저희 집에서 누가 뛰는 것 같다고 수시로 조용해 달라고 찾아와 벨을 누르곤 했습니다. 당시 저희 집은 두꺼운 카펫이 깔려 있었고 하나 있는 딸도 워낙 조용한 성격이라 저희 가족이 낸 소음이 아니라 항변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출근해서 집에 없을 때 아랫집에서 올라와 현관문을 발로 차고 내려가 아내와 딸이 공포에 질린 적이 있었고, 밖에 종이 박스 쓰레기를 내버렸는데 다음날 이 박스가 저희 집 문 앞에 놓여 있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건 잘못이었지만 우리를 수시로 감시한다는 불쾌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한 번은 또 올라와서 소음 문제를 제기했는데 마침 저희 가족이 한국에 가 있었고 저도 출장 중이어서 아예 집에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럴 리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는데 막무가내더군요. 그때 이 이웃은 소음보다는 저희가 싫어서 이러는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인종차별이었지요. 결국 그 집은 계약기간이 끝난 후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미련 없이 다른 아파트로 이사 갔습니다.
다음 아파트는 2층이었는데 아래층에 젊은 벨기에 부부가 살았습니다. 둘 다 호감형이고 친절한 좋은 이웃이었는데 부인이 임신하고 나니 점점 예민해지더군요. 저는 당시 운동삼아 계단을 오르는 운동 기구인 Stepper를 아침마다 20분가량 했는데 이때 나는 삐걱 거리는 소리가 임산부에게는 거슬렸나 봅니다. 어느 날 편지로 정중하게 운동기구 소음을 줄여 달라고 요청하더군요. 직접 올라오지 않고 이렇게 서면으로 요청하는 것 자체가 예의 바르다고 생각했고 임산부가 산다는 특수 상황을 고려하여 곧바로 미안하다고 회신하고 다음날부터 집에서의 운동을 그만두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랫집 이웃이 출산을 한 후 수시로 애기가 울어대어 자신들이 소음의 가해자로 전환된 것인데 수차례 초콜릿이나 와인을 찾아들고 올라와 소음 때문에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더군요. 젊은 부부의 예의 바른 처사가 보기 좋았으며 아기 울음소리도 귀엽게 느꺄지더군요. 아마 지금은 더 늘어난 식구와 함께 이쁜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을 겁니다.
최악은 그다음이었습니다. 현지에서 회사를 옮겨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역시 아파트를 택했습니다. 주위 이웃이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한 저는 계약 전 이웃들에 대해 대충 알아봤는데 대부분 무난한 것 같아 계약을 했습니다. 저희 집은 2층이었는데 아래층 부부도 점잖고 친절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점잖은 부부가 이사를 나가고 새로 젊은 커플이 이사 왔는데 여자가 출근을 하고 남자는 집에서 살림을 하는 부부였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비정상적으로 예민하더군요. 수시로 올라와 벨을 누르며 조용히 해 달라고 하는데 웃긴 것은 자기는 아침 10시까지는 자야 하니 아침에 특히 조용히 해 달라 하더군요. 아침은 저의 출근, 아이의 등교 준비등으로 어느 정도 소음이 날 수밖에 없는데 이걸 트집 잡고 저희가 조금이라도 소음을 내면 올라와 항의를 하거나 천장을 두드리다 보니 저희 식구는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학교에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며 집에 들어오기 싫어하고 집사람도 집에 혼자 있기 무서워 하루종일 밖에 나가 있는 등, 가족의 안식처가 돼야 하는 집이 지옥과 같은 공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하여 어느 정도 위약금을 내고 집 계약을 중도 파기하고 이사를 갔습니다. 그 당시 층간 소음 문제가 폭력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겠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며 내린 현명한 결정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제가 살던 집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 그 위층 (3층)에 살고 있는 젊은 커플의 장인, 장모였습니다. 아마 딸 내외 곁에 살고 싶었던 것 같은데 이분들이 적어도 저희보다 소음을 적게 내지는 않을 겁니다. 저희는 정말로 조심했거든요. 화장실 갈 때조차 까치발을 할 정도였습니다. 만일 그 예민한 남자가 또 소음 항의를 할 경우 이분들은 만만치 않을 겁니다. 3층에 딸 내외까지 있어 숫적으로 우세하며 모두 토종 네덜란드 현지인들이니까요. 아래층 남자의 비 정상적인 행동은 저희가 외국인이라 얕잡아 본 부분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당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었기 때문에 지금도 층간 소음에 의한 사건/사고를 접하면 남의 일 같지 않고 몸에 힘이 들어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