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시안컵 축구 경기들을 보니 2002년 월드컵이 생각나네요. 저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유럽 주재원이었습니다. 그 월드컵 기간 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은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즐기며 추억을 만들었지만 저는 유럽에서 묵묵히 생업에 종사하며 현지 TV 등을 통해서만 월드컵 소식을 접했습니다. 당시 유럽은 전화선을 통한 인터넷 연결방식이 대부분이었고 당연히 유튜브나 SNS 도 없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정보 습득이 제한된 환경이었습니다. 그나마 인터넷 신문으로 한국 소식은 접할 수 있었는데 이전인 90년대만 하더라도 현지에서 발행한 교민 신문이나 며칠 지난 한국 종이 신문을 돌려 보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월드컵 열기는 본사와 통화 시 느낄 수 있었는데 한국의 저녁 시간에 경기가 있는 날은 본사 인원들 대부분이 일찍 퇴근, 모두 함께 모여 치맥을 즐기며 응원을 했는데 저는 그게 그렇게 부러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본사와 통화를 하다가 "이제 응원을 하러 나가야 하니 이만 끊자"라는 얘기를 들으면 당장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모든 경기가 유럽 근무 시간에 벌어져 경기 실황은 못 보고 지면상으로만 경기 결과를 접하다가 마침내 시내의 스포츠 카페에서 점심을 먹으며 직원들과 함께 한국과 포르투갈전을 TV 생중계로 보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당시 카페에는 다른 외국 손님들도 많았는데 의외로 한국이 선전하자 대부분 한국을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옆에 앉은 영국 손님은 한국 선수들이 좋은 플레이를 할 때마다 "Brilliant"를 연발하여 환호를 해 괜히 옆에 앉은 저까지 뿌듯해지더군요.
유럽 사람들은 한국인 이상으로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한국팀의 선전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제 거래선들도 이메일의 첫마디가 축구 애기 (주로 한국 축구팀을 칭찬하는 애기)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국팀이 승리했을 경우에는 업무와 상관없이 축하 이메일을 보내오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태리 거래선이 보내온 내용은 한국이 잘했지만 약간은 억울하다는 뉘앙스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국팀의 선전 이외에 한국의 길거리 응원도 유럽 현지 매스컴에 많이 조명되었는데 그 많은 인원들이 붉은 옷을 맞혀 입고 일사불란하게 응원하는 것을 신기하게 지켜보았고 특히 응원이 끝난 후 스스로 쓰레기를 치워 깨끗한 거리가 유지되는 모습에 유럽인들은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런 시민 의식이 보도되면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상당히 끌어올렸다 생각합니다. 당시 네덜란드의 한 신문 1면에 대문짝 만하게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붉은 옷을 입고 수십만 명이 응원하는 사진을 게재했는데 기사에는 이런 대규모 집회후에도 거리는 놀랄 정도로 깨끗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 사진을 보여준 네덜란드인이 대한민국 대단하다고 엄지 척을 하더군요. 당시 월드컵은 대한민국이 4위를 함으로써 새로운 축구 역사를 쓰게 했고 많은 국민들에게 즐거움, 희망을 줌은 물론, 대한민국의 위상을 한차례 업그레이드 시켜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페인전은 토요일이라 편하게 집에서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막강한 스페인과 대등한 경기를 벌이다 승부차기에서 홍명보가 승리를 결정지으며 환한 웃음을 지우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승리의 순간 저와 식구들이 이국의 땅에서 서로 껴 않고 환호를 했는데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집사람도 그렇게 환호를 하는 것을 보니 외국에서 살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라는 말이 맞는가 봅니다. 모쪼록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