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로라 May 16. 2024

너무 직설적이고 까칠했던 여직원

제가 약 20여 년 전 함께 일했던 안느메리라는 네덜란드 여직원이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인 답지 않게 아담한 체형의 금발 백인이었는데 귀여운 인상이었지만 까칠함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업무를 지시할 경우 왜 이 업무를 해야 하는지 배경 설명을 해 주어 납득을 시켜야 했고 업무지시가 나름 부당하다고 느꼈을 때는 얼굴을 붉히며 항의를 하기도 하여 저도 긴장감을 유지하며 함께 일했습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졌지만 20여 년 전 유럽인의 시각으로는 아시아 변방의 한 조그마한 국가였을 것이고 이 아가씨도 비슷한 시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당시 함께 출장을 가는 일이 잦았는데 제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했을지는 모르지만,  변방의 소국에서 온 아시아 국적의 상사와 함께 다니는 것을 다소 창피해하고 불편해하는 느낌을 주는 경우도 있어 여러모로 쉽지 않은 직원이었습니다. 


이 직원은 프랑스어도 유창했는데 한 번은 프랑스 거래처와 프랑스어로 한참 통화 후 저에게 "이 프랑스 거래선이 너 싫어하더라"라고 말해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당시 이 프랑스 업체와 업무관계로 논쟁 중이어서 당연히 저를 좋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이 애기를 저에게 직설적으로 전하는 행위는 프랑스 업체의 감정에 본인의 감정도 약간 추가하여 증폭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무튼 이후 이 직원과의 인연은 끝나 20여 년이 흘렀는데 얼마 전 우연히 연락이 와서 함께 점심을 했습니다. 


얼굴 및 후덕한 몸매에서 세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지만 성격은 상당히 여유롭고 부드러워졌더군요. 오랜만에 점심시간이 훌쩍 지날정도로 이 애기 저 얘기하다 보니 마치 20여 년 전 함께 일하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현재 네덜란드 와인을 홍보하고 있었는데 네덜란드는 와인제조용 포도경작에 적합한 지역이 아니라 제조물량도 적고 품질도 그다지 우수하지는 않다고 솔직히 말하더군요.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이 우리 농산물을 선호하는 것처럼 지역 상품을 선호하는 네덜란드인들이 많아 기꺼이 비싼 값을  주고 네덜란드산 와인을 구매하기 때문에 판매에는 문제없다 합니다. (가격은 이태리산 와인보다 약 3배 비싸다 하네요) 그녀는 와인 판매뿐만 아니고 와이너리 견학 및 파티도 주최하는데 행사 사진을 보니 마치 프랑스나 이태리 와이너리에 온 것 같은 이국적인 분위기여서 구미를 당기게 했습니다. 


선물로 받은 네덜란드산 와인을 마셔보니 생각보다 맛이 fruity 하고 훌륭하더군요. 옛 직원도 도와줄 겸 그녀가 일하는 와이너리에서 행사도 한번 해 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다소 불편한 사이었지만 세월이 지나 또 이렇게 만나는 걸 보니 이 아가씨와도 인연이 있나 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만만치 않았던 유럽에서의 개인사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