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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빈 Feb 10. 2021

거리 두기

평소와는 다른 날이었다. 마땅한 변명거리도 생각나지 않고 매번 거절하기도 민망해 학교 앞 포차를 따라 나섰다. 맥주 500cc에도얼큰하게 취한 것처럼 보이는 얇은 피부 덕에 한 시간 만에 자리에서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렇게 어지럽지않으면서도 알딸딸한 기분이 좋아 고개를 이쪽 저쪽 흔들었다.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면서 학교 앞 술집은두어번이나 가봤을까. 다른 사람들은 없는 술자리를 만들어서라도 모이는데 난 왜 이러는걸까 생각하다 피식웃고 말았다. 그 사람들과 나를 동일선상에 놓는게 말이라도 되나.


애초에 친해질 수가 없는 게임이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데다 모임의수가 네 명이 넘어가면 기가 빨려 오래 있지를 못한다. 그런데 삼수를 넘어서 편입까지 했으니, 이건 뭐 불러주는게 기적이지 따로 기적이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처음부터 혼자의 길을 걸은 건 아니었다. 입학한 첫 해엔 졸업반에 더 가까운 동네 친구들의 조언에 따라이곳 저곳 껴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사람들은진우에게 더 많은 걸 원했다. 형, 형은 이 문제를 어떻게해결할 지 아시죠. 제가요 정말 힘든데요 오빠라면 어떻게 하셨을 거예요?


치기 어린 스무살들이 술을 포션 마냥 꿀꺽꿀꺽 삼키며 잘 알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울음을 토해내면서부터 진우는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삼년을 재수학원에 쳐박혀 있었으니 20대의세상에 대해 알 방법이 있겠는가. 진우에게 스무살이란 그저 집과 학원의 반복, 그러니깐 학교에서 학원으로 바뀌기만 한 고삼의 연장선이었다. 그런자신에게서 인생의 조언을 구하는 꼴이라니. 등을 토닥여주며 위로를 해주었건만 남는 건 다음 날 어색한눈인사뿐이었다. 비밀을 쏟아붓고는 도망치는 자와 듣고 싶지 않은 비밀을 들어주었지만 외면 당하는 자. 울고 싶은 건 나였는데.



미야옹 미야옹. 집 근처 골목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낡은 빌라촌 골목이라 그런지 동네에 굴러다니는 쓰레기통이 많았고, 고양이들은그 틈을 놓치지 않고 먹을 만한 것을 찾아다녔다. 편의점을 가다 길고양이를 마주치면 어쩐지 안쓰러운마음에 고양이용 사료캔을 사다 앞에 놓아주곤 했다. 진우가 근처로 다가서면 고양이는 저 멀리로 숨어든채 경계 어린 눈빛으로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르릉 거리면서. 그소리가 마치 네가 뭔데, 네가 뭔데라고 들렸다. 그 후로몇 번이고 사료캔을 앞에 놓고 기다렸지만 고양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나와보면 캔은 늘 말끔하게비어있었다. 


여느 날처럼 편의점에 들렸다 나오는 길이었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지만반가운 척이라도 하면 또다시 달아날까 애써 눈길을 돌리며 캔 뚜껑을 깠다. 그런데 고양이가 앞으로 다가왔다. 엄마가 ‘감사하다고 해야지’ 하면어색하게 감사합니다아 하며 몸을 배배 꼬는 어린 아이 마냥 삐쭉삐쭉한 걸음으로. 그 이후로 고양이는종종 내 뒤를 따라 오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보면 멈추고 또 멈추고 했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란히걸었다.

다시 미야옹 소리가 들렸다. 옆을 보니 고양이가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이제는 손을 뻗어 쓰다듬어도 경계 태세를 짓지 않는다. 먼저 다가와다리에 몸을 부비고 꼬리로 툭툭 치며 나를 빤히 바라본다. 무슨 일 있냐고 묻는 듯한 눈망울. 그제서야 나는 씨익 웃는다. 너가 있었지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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