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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현 Nov 02. 2024

우리는 틀리지 않았어 (4)

20대 청년의 로컬 이주 도전기 - 부여로 가다

부여는 나에게 굉장히 낯선 곳이다. 우리나라 어딘가에 부여란 동네가 있다는 것만 알았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역사 속 고구려에게 멸망한 부여가 나에겐 더 익숙했다. 100년의 넘는 오랜 시간 동안 백제의 수도였단 사실도 부여에 와서 알았으니 말 다했다.(역사 시간에 배웠을텐데 까먹었거나 수업 시간에 졸았던 것 같다)


캠프 시작이 가까워올수록 아는 것도, 연고도 없는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일주일을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만 커져갔다. 하지만 시간은 멈추는 일 없이 계속 흘렀고 그렇게 <부여 상상 위크 캠프> 시작일이 되었다


길이 막혀 시작 시간에 간신히 맞춰 부여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면 서울남부터미널에서 부여시외버스터미널까지 2시간이면 가지만 캠프 일정 외에 따로 움직일 것을 생각해 차를 끌고 온 것이 문제였다.


분위기를 파악할 시간도 없이 자리에 앉자마자 자기소개가 시작됐다. 이미 부여의 매력에 푹 빠져 이주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 나처럼 도시를 떠나 로컬에서의 삶을 꿈구는 사람, 잠시 쉬기 위해 온 사람들까지 모두가 다르면서도 비슷한 맥락의 이유로 캠프에 참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3일 차까지는 부여 여행을 온 것 같았다. 국립부여박물관, 부소산성, 정림사지, 백마강 등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고 부여 청년들이 애정하는 공간들을 방문했다.

높은 건물이 없어 저 멀리까지 시원하게 보이는 푸른 하늘, 출퇴근 시간에도 한적한 도로, 느긋한 충청도 사투리만큼이나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들까지 모든 것이 좋았다. 내 속도와 부여의 속도가 일치했다.


일자리 상상 시간은 말 그대로 체험해보고 싶은 일을 선택해 일을 해보는 시간이었다. 표고 농장, 스마트팜, 부여로 이주한 청년이 창업한 카페, 젤라또가게 등 여러 선택지가 주어졌고 나는 표고 농장을 골랐다.

표고 농장이 궁금했다기보다는 표고 농장의 주인인 '마스터'(마스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따로 할 예정이다)가 궁금했다. 

캠프 참가자들 중 가장 이른 시간에 숙소에서 나와 정림사지로 향했다. 전날 끝난 행사의 무대 철거를 해야 한다고 해 아시바에 올랐다. 안전장비를 차고 10m~15m쯤 돼 보이는 아시바에 올라 쪽가위로 줄을 끊어냈다.

아시바에 오른 마스터와 나

1시간 바짝 일하고 이어서 표고 농장으로 버섯을 따러갔다. 표고는 어떻게 키우는지, 사이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설명을 듣고 하우스를 돌며 다 자란 표고버섯을 땄다.

다 자란 버섯을 바로 따주지 않으면 상품성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우리의 마스터는 아침에 2시간씩만 버섯을 따기 때문에 다른 농장보다 버섯값을 잘 못 받으신다고 한다. 일하는 시간을 늘리면 돈은 더 많이 벌겠지만 당신의 인생에서 돈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에 막연하게 내가 생각만 하던 삶을 먼저 살아가고 계신 분이라 느꼈다. 


로컬로 이주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이것저것 찾아볼 때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있다. 로컬에서는 서울에서와 다르게 집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 물론 서울에서도 집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은 높은 집값에 내가 원하는 컨디션의 집을 예산에 맞춰 구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으로 궤가 다르다. 

로컬에서는 '다X', '직X'과 같은 어플은 거의 쓸모가 없고 매물로 나와있는 물건 자체가 별로 없어 구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있는데 그렇기에 먼저 부여로 이주한 청년들의 주거 이야기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부여에서 집을 구하는 방법은 크게 3가지 방법이 있는데 첫 번째는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부여의 TOP2 부동산인 '보배부동산', '으뜸부동산'을 이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시장이나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사거리', '교차로' 같은 신문의 부동산 지면을 확인하는 것으로 아직까지 신문 광고면을 이용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세 번째는 지인 찬스를 쓰는 것으로 마을 이장님이나 주변에 발이 넓은 분을 통하는 것이다. 실제로 [부여안다] 청년 분들도 마스터의 소개, 식당 사장님의 소개 등으로 집을 구한 일이 많다고 했다.


감사하게도 집을 공개해 주신 청년분들이 계셔서 집 내부 구경도 하고 집을 구할 때의 에피소드 등도 들을 수 있었다. 각자의 개성이 담긴 주거 공간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나의 공간을 구해 예쁘게 꾸미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꽤나 빡빡한 일정에 일주일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내가 이렇게 오랜 시간 다른 사람들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던 것은 군대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군대와 달리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매일 저녁 캠프 일정이 끝나면 같은 숙소를 쓰게 된 동지들과 술 한잔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이야기를 정리해 나갈 수 있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내가 좋아하는 것, 또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어렴풋이 그 윤곽을 그려낼 수 있었다


내향인으로서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에너지를 충전할 시간을 갖지 못해 괴로웠지만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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