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임원

직급이 벼슬, 책임은 실무자의 몫... 권위주의 임원에 대한 고찰

by 새벽


이전 회사에서의 일이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을 거쳤으며 화려한 성공 경험을 이력서에 가득 채운 임원이 있었다. 그는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조직의 비전을 이끌어야 할 임원이었다. 하지만 이 임원의 실제 역할은 '책임 없는 권력'을 누리는 것에 가까웠다.


1. 책임은 실무자에게, 성과는 나에게

이 임원의 가장 큰 특징은 스스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보고를 받고, 지시하지만 정작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본인이 지시한 일임에도 실무자 탓을 하며, CEO에게서는 요리조리 빠져나가기 바빴다.

성공하면? 내가 제시한 그림 안에서 잘 나온 결과라며 스스로의 공을 널리 알린다.

실패하면? 실무단에서 디테일을 놓쳤다. 우려했던 부분인데... 이런 건 이렇게 하면 안 됐어 라며 언제든 빠

져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2. 직급과 나이가 벼슬, 협업은 뒷전

이 임원은 자신의 나이와 직급을 '완장'처럼 여겼다. 자신의 부서가 아닌 타 부서 사람을 대할 때도 어김없이 이러한 성향이 나타났다.

- 공식적인 업무 요청 라인은 무시하고 타 부서 실무자에게 전화 걸어 그거 빨리 처리하라고 지시한다. 본인이 지시한 거는 빨리빨리 해야 한다며 다그치기 일쑤였다.

- 본인의 경험을 일반화하며 "네가 이런 걸 안 해봐서 모르나 본데", "내가 이렇게 해봐서 아는데" 등 다른 팀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 타 부서에서 요청한 거는 제 날짜에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3. 회사는 본인의 감정의 쓰레기통

이 임원은 감정 조절 능력이 부족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본인이 감정 조절을 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라고 생각했다고 느낀다. 대표이사를 제외하고는 본인이 직급이 가장 높고 나이도 많기 때문에 자신의 기분에 따라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고, 타 부서 직원이 있는데서 본인의 부하직원의 전문성을 폄하하기 일쑤였다. 직책과 직급이 존재함에도 이름을 부르며 누구야 라고 했고, 본인 생각과 다르면 "네가 몰라서 그런 거다"라는 식의 발언은 항상 있었다.


그렇다면 이 임원이 매니징 하던 부서에는 무엇이 남았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용한 황폐화'였다.


첫째, 유능한 인재들이 소리 없이 떠나갔다. 일 잘하고 유능한 직원들은 조용히 사직서를 냈다. 그들은 해당 임원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거나 싸우는 대산,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는 길을 택했다.


둘째, 남은 자들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졌다.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생존법을 터득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지 않고, 어려운 질문은 피했으며 지시받은 만큼만 일했다.


셋째, 신뢰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해당 임원의 이기적이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행동은 부서 간 협업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저 임원은 말이 안 통해", "본인이 요청한 거 말고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봐"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소통이 단절되고, 각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업무 방식이 고착화되었다.


해당 임원은 항상 본인이 근무했던 유명한 회사라고 본인이 주장하고 오래 다닌 회사의 사례만을 주야장천 떠든다. "이 회사에 있을 때 말이야...",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과거에 대한 이야기만 주야장천 해댔다.


해당 임원의 조직이 병들고, 유능한 인재가 떠났지만 CEO에게는 본인의 성과를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언제나 빠져나갈 공간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필자가 퇴사하기 전까지 해당 임원은 본인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었고, 지금도 재직 중인 것으로 안다.


리더의 자리는 과거의 업적을 쌓아 얻은 왕관이 아니라, 구성원과 조직의 미래를 위해 더 무거운 책임을 지는 위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의 가장 높은 곳이 책임을 지는 위치가 아닌 권력이라는 꽃길만 걷고 있다면 가장 큰 문제는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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