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라 불렀지만 권력자가 쥔 판단의 도구였다.
이전에 필자가 몸 담았던 회사는 겉보기엔 꽤 괜찮아 보였다.
투자도 잘 받고, 매출도 좋고 CEO는 빠른 실행력을 가진 리더였다.
뛰어난 판단력과 추진력으로 8년의 시간 동안 성장만 해오던 회사였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민낯이 드러났다.
매출 대부분이 특정 품목에 집중되어 있었고,
외부 충격 한 번에 매출은 90% 이상 하락하게 되었다.
파이프라인을 다양화하기보다,
지금 잘되는 물품을 많이 판매하는 것에 치중했던 것이었다.
결국 사람들을 휴직을 보내야 했다.
남아 있는 직원들도 멘털이 가라앉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때, 회사는
매년 2회 진행하던 컬처 평가를 시행하겠습니다.
직원들은 모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던 상태였다.
휴직의 여파로 같이 일하던 동료가 일거리가 없어서 휴직에 들어간 상태였고, 남은 사람들조차 조직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영업조직은 하루에도 몇 번씩 불려 가서 보고하고..
"버틴다"라는 말로 정리되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컬처 평가는 결국
"회사는 위기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난 네가 우리 문화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봐야겠어."
이런 말로 해석 되었다.
"대표님, 이번에는 휴직자도 많고 하니 컬처 평가는 한번 건너 뛰고 직원들 면담 위주로 진행함이 어떨까요?"
"남은 사람들 있잖아, 그냥 진행해."
그때 느껴졌다.
컬처는 가치가 아니라, 도구로 쓰인 다는 것을.
이때 직원들이 조심스레 나에게 물어본 것이 있었다.
"OO님, 이번 컬처 평가로 또 휴직자나 권고사직자 정하는 건가요?"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은 "정리되기 위한 평가인가요?"라는 두려움에서 비롯됐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 평가를 하는 게 맞니?라는 물음이었다.
당시 대표가 정리를 목적으로 평가를 진행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봤을 때 평가 이후에 정리가 된 인원은 없었다.
정리를 목적으로 컬처 평가를 진행한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매년 하던 것이니까,
이번에도 그냥 하는 것이 맞고, 남은 사람들은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나 한번 보겠어.
이 의도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팀원들 입장은 전혀 달랐다.
당시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상태 자체가 아니었다.
부서에서도 몇 명씩 휴직 상태이고, 매출은 붕괴 직전이며
남은 사람들은 회사가 이대로 괜찮을까?를 고민하여 버티던 시기였다.
문화에 적응하기보다는 생존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회사는 생존의 흔들림에 대해 이해도 공감도 없이 평가를 진행했다.
아니, 내가 진행했다.
컬처 평가는 구성원들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의 컬처 평가는 그저 회사가 잘 굴러가고 있다는 위안에 가까웠다.
컬처 평가 내내 사람들은 어떠한 표정도 말도 없었다.
다만, 자기에게 주어진 평가지를 작성할 뿐이었다.
컬처 평가가 끝나고 조직에 나타난 반응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가장 먼저, 영업 조직을 이끌어 가던 팀장급이 퇴사를 했다.
컬처 평가가 끝나고 채 1개월이 안되서의 일이다.
그는 컬처 평가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회사의 위기에서 본인이 영업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며, 더 유능한 사람이 영업 팀장 자리를 맡아야 한다며 떠났다.
또 한 직원은 평가지를 받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회사 위기 상황에서도 연차도 안 써가며 열심히 발버둥 쳤는데, 이 평가를 보니 내가 문제인 것 같네요."
이후 그 직원도 머지않아 퇴사를 했다.
사내 행사도 잘 참여하지 않았고,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만 하며 조용한 퇴사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평가 이후 대표는 오히려 더 강하게 말했다.
"위기일수록 문화가 중요하며, 우리 문화에 맞지 않는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지키기 싫으면 떠나란 말이었다.
문화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경영진과 구성원들이 오랜 시간 만들어 내는 것인데, 이렇게 안 할 거면 떠나세요라는 법이 된 것이다.
결국 조직은 더 조용해졌고, 결국 필자도 퇴사 수순을 밟아서 나왔다.
아직 해당 기업이 폐업을 하진 않았지만 매출이나 규모가 많이 축소되고,
4~5년 정도는 규모나 매출 부분에서 과거로 돌아갔다고 들었다.
조직이 위기에 빠졌을 때, 해야 할 일은 평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뢰를 되찾고,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문화 적합성, 몰입도에 대한 평가는
조직이 안정적이고 구성원들이 심리적으로 소속감을 느끼고 있을 때,
효과를 발휘한다고 본다.
컬처란 사람이 모여 살만하다고 느낄 때 발전되고 만들어지는 것이지,
리더가 마음속에 그려둔 기준에 맞게 훈련시켜서 얻는 결과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컬처를 평가했지만,
정작 그 평가를 통해 드러난 건
"이 조직은 아직 사람을 붙잡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