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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푸덴스(Homo Pudens)

by 박성미

호모 푸덴스(Homo Pudens),염치 있는 인간을 위하여

AI가 글을 쓰고, 알고리즘이 판단하며, 인간의 얼굴이 데이터로 환원되는 시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기술이 아니라 염치(廉恥)다.
염치는 옳고 그름을 가르는 지식이 아니라, 그른 일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감정이다.
이 감정이 사라질 때, 사회는 합리적으로 보여도 차갑고 냉혹한 경쟁장으로 변한다.

고대 로마에는 ‘푸도르(pudor)’라는 말이 있었다. 이는 단순한 수치심이 아니라, 자신이 공동체 앞에서 지켜야 할 품격을 자각하는 도덕적 감정이었다.
이 말에서 파생된 개념이 바로 호모 푸덴스(Homo Pudens) —
“부끄러움을 아는 인간”, “염치 있는 인간”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호모 푸덴스’는 부끄러움을 통해 인간됨을 지키는 존재다.
지식의 총량보다 양심의 깊이가,
AI의 연산 능력보다 인간의 자각이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의 사회가 잃은 것은 기술도, 제도도 아니다.
“염치가 있는 인간”, 즉 호모 푸덴스의 회복이다.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사회만이 정의를 다시 세울 수 있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이야말로,
인간이 여전히 인간일 수 있는 마지막 자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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