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여행 (1)

대희년의 순례

by 김현정

2025년은 가톨릭 대희년이기도 해서 나가사키 여행을 계획했다. 엄마, 나, 친구. 좀 낯선 조합이지만 새로움도 있을 것 같았다. 이번 기회로 나가사키에 대한 여러 책들을 사 읽었다. 나가이 다카시 박사의 '나가사키의 종'을 '영원한 것을'에 이어 읽었다. 게다가 '침묵'의 엔도 슈사쿠가 제2의 고향으로 나가사키를 사랑했던 사실도 반가웠다. '엔도 슈사쿠와 기리시탄'이라는 책도 조용한 관광객의 마음가짐을 갖는 데 도움이 되었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부산에서 먼저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친구를 만났다. 그녀가 웰컴 모찌를 사들고 밝게 웃었다.


"이번 여행에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 나는 조용히 따라다닐게. 힘들면 호텔 방에서 쉬고 있고 둘이서만 돌아보고 와도 돼. 정말 상관없어."


나가사키로 가는 버스 안에서 엄마는 창밖을 보며 일본의 시골 풍경을 구경했다. 나는 다 못 끝낸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엄마의 휴식과 나의 순례가 조화로운 여행이 되기를 바랐다. 가만히 우리 모녀를 지켜봐 주겠다는 친구도 원하는 시간을 갖기를. 비가 버스 유리창을 때렸다. 우리 셋은 각자의 바람을 가지고 나가사키를 향해 가고 있었다.


도착 다음 날, 첫 일정은 오우라 성당이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에서 나가사키의 250년간의 천주교 박해에 대해 생각했다. 내게 일본 박해시대의 이미지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에서 봤던 장면들에서 시작한다. 신자들이 온천에서 고문받았던 운젠 지역이 시내에서 한 시간 거리. 이번 일정에는 없었다. 나가사키는 일본의 어느 도시보다 한적했다. 길거리 사람들의 표정도 편안하고, 신기하게도 일본에서 자주 보이는 신사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일본 최초의 가톨릭 공동체가 있던 곳이다. 1549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일본에 천주교를 전한 이후, 나가사키는 기리시탄(Christian의 일본식 발음)들의 중심지가 되었다. 하지만 1597년 26 성인의 순교를 시작으로 박해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신앙을 지킨 '가쿠레 기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1865년 오우라 성당에서 그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전차를 타고 도착한 오우라 성당. 입장료는 노후된 시설을 관리하는 데 쓰이는 것 같았고, 사제관을 비롯해 대부분의 건물들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생각보다 풍부한 자료들이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했다.


전시실에서 영화 '사일런스'에서 봤던 '후미에'를 실제로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새겨진 작은 동판들이 유리관 안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언뜻 보면 아름다운 성화 같지만, 실제로는 에도 막부가 고안한 가장 교묘한 가톨릭 신자 색출 방법이었다. 사람들에게 예수와 마리아의 성상을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밟으면 살 수 있지만 신앙을 배반하는 것이고, 밟지 않으면 그리스도교인으로 간주되어 죽음을 맞았다. 작은 동판을 발치에 두고 생과 사의 기로에 있던 옛 신앙인들의 마음을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성당 언덕에서 바라본 도시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박해의 시대 후에는 원폭까지 겪은 이 도시가 이렇게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곳으로 재건된 것이 기적처럼 여겨진다.

원폭으로 죽은 여동생을 업고 화장 순서를 기다리는 소년. The Fruit of War (그림 김현정)

관람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 점심시간을 놓쳤다. 관광지에 브레이크 타임이라니. 첫 일정부터 맛집은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 근처 편의점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초라한 여행이 돼버려 미안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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