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여행 (3)

나가사키가 말하는 평화

by 김현정

뇨코도를 둘러보고 언덕 위에 있는 우라카미 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라카미 성당 앞에 서자 엄마가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이 큰 건물이 날아갈 정도면….”


우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서로 대화 없이 조용히 성당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3분, 원폭이 터진 지점에서 불과 5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던 우라카미 성당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지금의 성당은 1959년에 재건된 것이다. 재건된 성당 마당 곳곳에는 당시의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 원폭으로 손상된 성상들과 성당 종탑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 말고도 한국 성지 순례단들이 성당 마당을 둘러보고 있었다.


성당에서 나와 원자폭탄 박물관으로 향했다.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 상공에서 터진 원자폭탄은 순식간에 7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도 3만 명이나 희생되었다. 전시장에는 나가사키 시민들이 기증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카타콤처럼 지하 무덤이 있을 것 같은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전시실이 나온다. 11시 3분에 멈춰 선 시계, 녹아내린 유리병, 그을린 도시락통 등이다. 엄마는 동물 그림이 그려진 도시락통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이 아이는 하교하는 길이었을까?”


한국에 있는 손녀 생각이 잠시 났나 보다. 내 경우는 11시 3분에 모든 시간이 멈춘 이곳에서 세계사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공감과 이해로 해소되지 못하고 의문으로만 기억되는 작품들이 몇 있다. 몇 년 전, 가을에 개봉했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와 중국 유학 시절 한 미술관에서 봤던 오호범(吳湖帆)의 1965년 작품이 그렇다. 두 작품 모두 핵무기 개발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한다. 세계 대전 중, 미국은 독일이 먼저 핵폭탄을 개발할까 서둘러 핵개발을 한다. 대량 살상의 위험을 숙고하기도 전에 일본을 최초의 핵폭탄 사용지로 정했다. 그 후 핵무기에 대한 조급함은 열강들에게 전해져 앞다투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다.

吳湖帆, 庆祝我国原子弹爆炸成功 (1965)

“왜 하필 나가사키였을까? 병참기지는 후쿠오카에 있었다며.”


내가 중얼거리자 친구가 조용히 알려줬다.


“원래 후쿠오카에 투하하는 게 목표였는데, 악천후로 가까운 나가사키에 투하하게 된 거래요.”


대량 살상 무기인 핵폭탄을 놓고 가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 어쨌든 나가사키는 당시 일본 최대의 가톨릭 공동체가 있던 곳이었다. 250년간의 박해를 견디고 다시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게 된 지 80년 만에, 그들은 또 다른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었다.


질문의 답은 갖지 못한 채, 폭심지를 공원으로 만든 ‘평화공원’으로 향했다. 원폭의 중심지에 인공 연못을 만들고 그 북쪽 언덕에는 원자폭탄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여기는 서양 관광객으로 붐볐다. 그들에게 영어로 설명하는 가이드 덕분에 귀동냥으로 나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폭심지를 인공 연못으로 만들고 ‘나가사키의 종’이라는 작품 아래 수도 장치를 이용한 설치물을 만든 이유는 모두 원폭 열기에 타 죽은 넋을 기리기 위함이라고 한다. 폭심지의 열기가 6,000도였다는데, 얼마나 뜨거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 전쟁을 주도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히로시마 폭격을 맞은 후에도 그 위력을 파악하지 못했다. 1차 폭격지가 폐허가 되었는데도 무조건 항복을 하지 않은 이유다. 나가사키까지 초토화된 것을 보고서야 항복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바닥을 봤는데도 기어이 지하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평화공원까지 보고 나니 여행이라고 왔는데, 역사 학회의 일정처럼 다닌 것 같아 엄마의 눈치가 보였다. 엄마는 쉬러 왔다가 무거운 이야기를 안고 가는 것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나가사키에서 대희년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고 간다. 여기는 한창 공부하는 아이들이 와야 하는 곳이야.”


“여기 방문한 사람들 중에 전쟁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우리 같은 소시민보다는 결정권이 있는 정치인들이 와서 봐야 할 것 같아.”


지금의 핵무기들은 당시의 성능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발전되었다. 이제 개발 성공을 확인하려면 인류 전체의 존망을 걸고 위력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전쟁이 멈추지 않는 지금 시대에 나가사키의 메시지는 더욱 간절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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