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주님의 자녀

by neveres

어릴 때 나는 엄마가 권사님이고 아빠가 집사님으로 있는 교회에 다녔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주일마다 교회에서 “니가 누구네 누구구나”하면서 어른들이 아는 척을 하고 친근하게 대해주기 마련이다.


평일에 교회 시설을 이용할 일이 생겨도 부모님이 직분자인 내가 나서서 사찰 집사님께 이야기를 해야 일이 수월했다. 하다못해 교회에 국수 국물 탱크에 국물 한 사발을 얻어먹을래도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과 같이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이 유리했다.


불신 가정에서 혼자 전도받아 교회에 나온 아이들을 일부러 아는 척하고 챙겨주는 교인들은 없었다. 거의가 아니라 내 기억 속에 그냥 그런 교인들은 전혀 없었다.


주일이면 가장 좋은 옷으로 한껏 차려입고 온 가족이 교회에 가서 교인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예배를 드리고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믿음의 가정들 속에 조용히 소외되는 어린 영혼들이 있었다. 부모가 아닌 주님 손에 온전히 이끌려온 아이들.


믿지 않는 가정에서 일요일 아침에 교회 간다고 누가 입을 옷을 챙겨 줬을 리도 없고 싫은 소리나 안 듣고 나왔으면 다행인데 교회에 와보면 반겨주는 이는 주일학교 선생님들 정도이고 어쩐지 부모님 손잡고 온 아이들을 보면 위축되던 아이들이 있었다.


평일에 교회 중고등부 실이나 어딜 좀 들어가서 주보 작업을 하던 찬양 연습을 하던 하려고 해도 아무개 집사 권사 자녀가 아니면 ‘너는 누구냐?’는 냉랭한 눈총을 받고 열쇠하나 받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누구 집사 네 아이가 와서 “집사님~”하면서 이야기를 하면 “어머~너 누구 집사님 네 누구 아니니~”하며 반겨주고 뭐라도 챙겨주기 마련이었다.


예수님은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하셨는데 교인들이 반기고 챙기는 아이들은 내가 아는 누구네 집 아이로 한정되곤 했다. 다 같은 주님의 자녀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무개 집사, 권사와의 관계에서 파생된 ‘안면’ ‘친분’에서 나온 ‘친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챙겨야 할 것은 어렵게 전도해서 주일학교나 중고등부에 출석하게 된 불신 가정의 아이들이 아닌가. 온 가족이 교회에 나오는 집 아이들은 내버려 둬도 부모가 알아서 챙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교회 안에서 더 많이 신경을 쓰고 챙김을 받았어야 했던 친구들에게 어른들이 나서서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아이들은 주일 아침에 조용히 왔다가 누가 밥 먹고 가라는 이야기도 없으니 식당에서 자리를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구석에서 국수 한 그릇 먹고 가거나 눈치를 보다가 그냥 집에 가곤 했다. 그냥 둬도 자기 엄마가 알아서 데려다 먹일 애들은 눈에 띄면 “아이고 우리 누구 여기 앉아라”하면서 살뜰히 도 챙겨주면서 주변에 눈치 보며 뱅뱅 도는 아이들은 누구 하나 데려다가 자리를 잡아줄 생각을 안 했었다. 이름을 묻는 이도 이름을 불러주는 이도 없었다. 이름을 모르니 불러다 앉힐 일도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담임 목사님은 그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워주셨다. 그 당시 이미 환갑을 지난 나이셨는데도 목사님은 새로 온 아이들 한 명 한 명 꼭 이름을 물어보고 외워서 불러주셨다. 한 번에 외우지 못하시면 미안하다면서 “내가 세 번 만에는 꼭 외우마”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손길이 참 따스했던 것 같다.


이번 주일에 교회에 나가서 낯선 아이를 만나게 되면 인사를 건네어 보자. ㅇ집사네 ㅇㅇ이는 ㅇ집사가 알아서 챙길 테니 신경 끄셔도 무방하다. 예수님이라면 불신 가정에 믿음의 씨앗이 될 그 한 명의 아이에게 손 내밀어 주시지 않았을까.


집사님네 아이던 모르는 누군가의 아이던 우리는 모두 주님의 자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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