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느꼈겠지만 나는 ‘착함’과는 세상의 이 끝과 저 끝만큼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것은 요즘말로 내 ‘추구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나는 십수 년을 큰 다툼 없이 지내왔고 시집에도 기꺼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정은 주고받으며 산다.
남편은 결혼해서 지금까지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 대신, 최선을 다해 나에게 잘해왔다. 결혼 전에는 모든 것이 서툴렀는데 꾸준히 애정표현과 보살핌의 능력치가 상승하고 있다.
서툰 요리나 욕실 청소 등은 못해도 재활용 쓰레기 내다 버리기 밀대로 바닥청소하기, 창틀 닦기 같은 자신이 잘하는 일은 빠짐없이 해왔다.
여행을 가던 외식을 하던 나는 고기 굽는 집게를 잡아 본 적이 없다. 간혹 음식점에서 서빙하시는 분이 노년이나 중년의 여성분이신 경우 종종 내게 집게와 가위를 주시는데 그러면 남편이 자기 앞으로 챙겨간다. 정성껏 고기를 구워서 내 앞에 몇 점 놓아주고 나서야 자기 입으로 들어간다. 대게나 킹크랩을 먹으러 가면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인데도 손질해서 내 앞에 먼저 놓아준다.
큰 수입을 벌어들여서 사치를 하게 해주는 사람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부수입이 생기면 안 쓰고 모아놨다가 몇 년에 한 번은 작은 것이라도 명품을 사준다. 나는 그걸 들고 다닐 데가 없는 사람이라 굳이 더 거한 명품이 필요치도 않거니와 남편의 그런 소소한 선물이 그 마음이 반갑고 고맙다. 명품관에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차림의 우리가 재미있어서 쿡쿡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 아빠가 작은 수술을 받았을 때 친정 식구보다 더 일찍 병원에 도착해서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빠 곁을 지킨 것은 내 남편이었다.
지난 4년여의 시간 동안 내가 암 전이 검사를 일 년에 한두 번씩 할 때도 한 번도 빠짐없이 그 검사만큼은 꼭 같이 가주었다. 해야 할 일이 늦어지니 야근을 해야 했지만 일이 바쁘다던가 피곤하다던가 싫은 내색도 전혀 없이 그날만큼은 아침에 잠 깨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예약시간보다 훨씬 서둘러서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는 4년을 하루 같이 절대 전이가 되지 않을 꺼라 굳게 믿고 확신해 왔다. 해서 나도 덜 두려웠다.
신혼 초에 별나게 힘든 지점에 발령이 나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렸을 때 남편은 내 머리에 손을 올리고 기도를 해주었고 통증이 나아졌었다. (은사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이고 일하심이란 것을 잘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내 남편에게 치유의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뿐이다. )
하루는 어느 토요일 오전에 남편이 밤을 꼬박 새우고 들어와서 간신히 한숨 자려는데 꼬막 껍데기를 과도로(이걸 왜 수저가 아니라 칼을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까다가 손을 다쳐서 내가 수건을 둘둘 말고 피가 철철 흐르는 손을 들고 남편을 불렀다. 피곤해서 짜증이 날만도 한데 얼른 나를 데리고 주말에 문 여는 병원을 찾아서 데려가 몇 바늘 꾀 메고 집에 온 적이 있다. 그걸 왜 칼로 하냐고 퉁박을 주긴 했지만 절대로 “너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이게 뭐냐”라고 짜증을 내지는 않았다. 치료를 받고 돌아와서 그대로 남겨져있던 꼬막을 마저 까서(수저로) 양념을 했다. 꼬막 무침은 남편의 최애 반찬이다.
결혼 전에 날을 잡고 나서 엄마가 이전 남자친구들에게 받은 인형을 모조리 내다 버린 일이 있었다. 남편이 남사친일 때 사준 인형 하나만 남기고 몽땅. 그 이야기를 기억해서 인지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형 곰 인형을 시작으로 지금 까지도 크고 작은 인형들을 사주거나 뽑아 온다. 이제 결혼 전보다 나는 인형부자다.
남편은 날 불안하게 하지 않으며 결혼 전보다 편안하고 푸근한 생활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누구 마음이 더 큰지 재어볼 것도 없이 남편 덕분에 나는 항상 마음이 두둑하게 배부른 느낌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충만한 기분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시외가 단톡방에 아침 말씀 한 구절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십수 년을 정작 시 외가 며느리는 한 명도 참여치 않는 단톡방을 지키고 있다.
시어머니가 달에 한 번쯤 아들이 어찌 사나 궁금해서 연락을 하시면 귀찮아하지 않고 곧잘 문자나 전화로 소식을 전해드린다. 내가 명퇴금 털어 아드님 임플란트를 해주었는데 남은 건 언제 하나 거진 일 년을 물어보셨을 때도 왜 나한테 그러시냐고 면박을 주지 않았다. 해준 것이 없어서 (당신 아드님한테) 미안하다(이것도 아드님에게)면서 남편의 건강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바라시고(임플란트, 허리 등) 신앙의 성장(이건 주님의 영역입니다. 어머님), 그리고 본인의 여행(늘 어딘가를 여행하고 싶어 하시는 것은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으신 까닭인가 늘 궁금하다.)에 내가 애를 써주기를 바라셔도 그저 같이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 합시다 정도로 훈훈하게 마무리한다.(우리 주님은 진정 나의 피난처시다.)
이미 임플란트에 얼마나 돈이 들어갔냐고, 나는 은행을 명퇴하고도 해외 한번 못 나가 보았는데 평생 이렇다 할 직장도 갖지 않으신 어머님은 그럭저럭 성지순례며 동남아, 중국 등지로 잘 다니시지 않았냐고 만족하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감사를 잊지 마시라고 다그치지도 않았다. 나쁜 뜻으로 한 소리가 아니라고 한들 타당치 않은 소릴 하면 내 부모라도 뒤집어질 나인데 이게 참아지더라는 것이다.
아직도 내가 시외할머니 빈소에 상복을 입고 삼일을 앉아있었다고 하면 모두 놀라워하는데 그 초상기간에 가족들 사이에서 기분 상한 것은 있지만 그 일 자체는 불만을 갖고 있지 않다. 그때 남편 곁을 꼭 지켜준 건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명절에 빼먹지 않고 소갈비에 예쁘게 부친 전을 꼭 시외삼촌 댁 것까지 좋은 그릇을 장만해서 담아가고 있다. 이제 3년쯤 그렇게 지낸 것 같다. 명절 전날 하루, 명절 아침까지 음식을 한다. 우리가 풍족한 형편이 아니지만 일 년에 두 번 명절 음식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처음에 음식을 해가니 부실하게 담긴 걸 식구들에게 내고 모양과 양을 보아 더 좋은 걸 동생 집 몫으로 빼놓으시기에 이제 아예 두 집 몫을 장만하고 그중에 더 보암직도 먹음직도 한 걸 미리 이건 목사님 댁에 가져가시라 말씀드린다. 당신 남편과 자식들보다 동생 입에 들어갈 음식이 우선이냐 타박하지 않는다. 이해는 못해도 용납은 하기로 했다.
십여 년째 눈치를 챙기지 못하고 있는 시누이가 잔잔바리로 성질을 건드리지만 내놓고 시부모님 앞에서 맞붙어 대거리를 하지도 않았다. 내 성질 건드리는 건 그렇다 치고 제발 자기 동생 속은 좀 긁지 말았으면 좋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내가 시집에 한 어떤 행위나 배려, 용납, 인내, 챙김 등, 그것이 무엇이던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내 남편이 먼저 나와 꾸린 우리 가정과 나의 마음을 구한 까닭이다. 마음이던 물질이던 어떠한 수고나 노력도 모두 내가 우선이니까 나를 밀어 놓지 않으니까 이쯤은 베풀 수 있지 하는 마음이 들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결론이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결국 고부갈등이던 시집 식구와 며느리의 불편한 관계 던 모든 것은 그 집 아들, 그 집 남편 할 탓이다.
“우리 엄마가 그랬을 리 없어. 우리 부모님은 좋은 마음으로 한소리야. 그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잖아. 일 년에 몇 번이나 된다고 피곤하데. 당신이 좀 참아 주면 좋잖아.” 중에 하나라도 발화해 본 경험이 있다면 당신의 아내에게 진정한 가해자는 남편인 당신이다.
아내에게 당신을 사랑은 하는데 부모님이고 가족이니까 인내하고 희생해 주면 고맙겠어, 미안해 따위의 이야기는 하지 마시라.
그리고 브런치 스토리에도 종종 등장하는 며느리 공황장애 오게 하는 권사님, 장로님들, 정말이지 천국에서 보지 맙시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갖은 용심은 다 부리고 꼭 그 끝에 ‘주여’ 좀 찾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도 진저리 날 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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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 브런치 북 연재 글들을 읽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분히 스트레스 해소용 글쓰기가 되어버린 이 연재의 주제가 ‘시집’과 관련되었던 것은 시작 즈음 명절이 다가오던 까닭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나게 나쁜 사람들이 아니어도 시집은 시집인지라 십수 년간 쌓여 온 감정들이 많지만 남편과 나의 관계를 생각해서 더 내밀한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후에 남편 마음에 앙금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 어찌 되었든 그에게는 원가정이니까요.
이 글을 쓰고 난 후로 저는 저와 남편이 꾸린 우리 둘의 가정에 더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하소연 같은 이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다양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 항상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