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의 성벽 1

1. 무화과나무와 연못, 그리고 나의 '공주 시절'

by 갱s토리

92년생인 나의 기억이 시작되는 곳은 부산 송도 바닷가 앞, 정원이 딸린 이층 집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집은 나에게 거대한 성이었고, 그 안에서 나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공주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나를 반기는 건 할머니가 지극정성으로 가꾸신 정원이었다. 사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형형색색의 꽃들 사이로 탐스러운 무화과나무가 서 있었고, 그 곁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연못 속 비단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오후의 평화로움. 그 풍경은 어린 나의 정서를 채워준 첫 번째 배경화면이었다.


대가족이 모여 살던 그 집에서 나는 지독한 '공주님'이었다. 외출할 때면 반드시 내 마음에 드는 공주 드레스를 입어야 했고, 작은 귀찌와 목걸이까지 완벽하게 갖춰야만 신발을 신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겠노라 떼를 쓰던 철부지. 하지만 그 고집마저도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고모들과 작은삼촌까지 온 가족은 너그러운 웃음으로 받아주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생생한 건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밥때가 되면 나는 늘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할아버지의 널따란 무릎은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식탁이었고, 그 품에서 전해지는 온기는 나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해 주는 사랑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기다려졌던 건 할아버지의 퇴근길이었다. 대문 들어서는 소리가 들리면 버선발로 뛰어나갔다. 할아버지의 손에는 늘 사각거리는 껌 한 통이 들려 있었다. 그 소박한 껌 한 통이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귀하게 느껴졌던 건, 그 안에 나를 향한 할아버지의 지극한 마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96년, 귀여운 남동생 정현이가 태어났을 때도 나의 공주 대접은 여전했다. 나는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떼를 쓰고, 사랑받고 싶은 만큼 사랑을 갈구하며 빛나는 유년의 한복판을 걸어갔다.


그때는 몰랐다. 정원의 꽃향기와 무화과나무의 달콤함, 그리고 할아버지 무릎의 온기가 영원할 줄만 알았다. 나의 세계를 지탱하던 이 견고한 성이 한순간에 허물어질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나는 그렇게 눈부시게 행복한 꼬마 공주로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