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오디세이 06] 인류를 도약시킨 발명품, 하이어라키
"피라미드는 외계인이 만든게 확실함(Aliens built the pyramids obv)."
몇 해 전,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X(당시 트위터)에 뜬금없이 이런 글을 남겨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후 이집트의 국제협력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피라미드 건설자들의 무덤을 보러 오라"며 머스크를 공식 초청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죠.
평균 2.5톤에 달하는 무거운 돌덩이 230만 개를 쌓아 올린 고대 이집트의 압도적인 스케일이, 21세기 최고의 혁신가에게조차 외계인의 소행처럼 경이롭게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앞선 연재([경영의 오디세이 01])에서 우리는 피라미드를 만든 힘이 채찍이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을 움직인 진짜 원동력은 협력을 가능케한 소속감과 동료애, 그리고 '맥주와 빵'이라는 보상 시스템이었습니다. 경영의 탄생을 알리는 위대한 신호탄이었죠.
하지만 크레인도 무전기도 없던 시절에 무려 10만 명에 달하는 작업자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여전히 기적에 가깝습니다. 만약 10만 명이 제각각 움직였다면 오늘날 피라미드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거대한 카오스(혼돈)를 어떻게 코스모스(질서)로 바꾸었을까요? 그 비결은 바로 인류 문명을 비약적으로 도약시킨 보이지 않는 발명품, '하이어라키(Hierarchy, 위계조직)'에 있었습니다.
조직론에는 '통제의 범위(Span of control)'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한 명의 관리자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부하 직원의 수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파라오나 건축가 한 명이 10만 명의 작업자에게 일일이 지시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집트의 건축가들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0'이라는 마법의 숫자를 활용했습니다. 한 명의 관리자가 현장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소통할 수 있는 최적의 인원을 10명으로 본 것입니다. 이들은 이 '10'을 기본 단위로 삼아 거대한 인력을 잘게 쪼개고 묶어 완벽한 '피라미드형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이 거대한 조직의 구조를 들여다볼까요? 흥미롭게도 1화에서 크루(Crew)와 필레(Phyle)로 소개했던 이 조직의 기저에는 치밀한 지휘 체계가 숨어있었습니다.
차티 (Tjaty / 재상 또는 수석 건축가) : 파라오의 대리인인 재상 혹은 수석 건축가로서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CEO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미-르 (Imy-r / 고위 감독관) :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차티 아래에 피라미드의 각 면(동서남북)이나 핵심 공정(채석, 운송, 건축)을 책임지는 고위 감독관 '이미-르'(‘지시를 내리는 자’ 라는 의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수십 개의 '크루'를 묶어 관리, 조율했습니다. 현대 조직의 '본부장' 정도의 역할로 볼 수 있습니다.
크루 (Crew) : 약 2,000명 단위의 대규모 작업집단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를 '아페르 (Aper)'라고 불렀습니다. (예: '쿠푸왕의 친구들' 크루)
필레 (Phyle) : 하나의 크루를 다시 200~400명 단위로 나눈 중간 부서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이 단위를 '자(Za)'라고 불렀으며, 후대의 학자들이 이를 '부족'을 뜻하는 그리스어 '필레'로 번역해 불렀습니다. '자'는 배의 앞, 뒤, 좌, 우 등을 뜻하는 항해 용어에서 따온 것으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명명된 체계적인 '부서'의 개념입니다.
갱 (Gang / 소규모 팀) : '필레(자)'는 다시 10~20명 단위의 소규모 작업조로 나뉘었는데, 현대 고고학에서는 이를 편의상 '갱'이라고 부릅니다.
* 저자 노트 : 크루, 필레, 갱과 같은 용어는 고고학자들이 비문, 표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용어이며, 문헌에 따라 상하관계와 인력규모에 대한 설명이 일부 다릅니다.
가장 밑바닥에는 10명의 작업자가 있고, 그 위에는 10명을 관리하는 '조장'이 있습니다. 조장 10명이 모이면 1명의 '자(Za)' 책임자가 이들을 관리하고, 이 책임자들이 모여 더 큰 단위인 '크루'의 총괄 감독관에게 보고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수석 건축가와 파라오에게 도달합니다.
이러한 하이어라키 덕분에 파라오의 명령은 단 몇 단계를 거쳐 맨 아래의 작업자 10만 명에게 오차 없이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피라미드라는 거대한 석조 건축물의 형태는, 사실 그것을 짓던 조직의 형태(하이어라키)가 돌이라는 물질로 투영된 결과물이었습니다.
하이어라키가 작동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존재는 누구일까요? 권력을 쥔 파라오일까요, 아니면 땀 흘리는 작업자들일까요? 경영의 관점에서는 그 사이에 있는 '중간 관리자(Middle Manager)'들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점토판과 파피루스 기록을 보면, 피라미드 현장에는 수많은 '서기(Scribe)'와 '감독관'들이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작업자를 감시하는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하향식(Top-down) 지시의 '디테일 설계자': 이들은 파라오와 수석 건축가의 거시적인 비전("여름까지 1층을 완성하라")을 현장의 구체적인 업무("오늘 우리 '자(Za)'는 2.5톤짜리 석회암 10개를 북쪽으로 50미터 이동시킨다")로 잘게 나누고 설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상향식(Bottom-up) 보고망: 동시에 현장의 문제(식량 부족, 도구 파손, 작업자 부상)를 취합하여 상부로 보고함으로써, 경영진이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피드백 루프의 핵심이었습니다.
현대 기업에서 전략이 아무리 훌륭해도 팀장과 파트장 등 '허리'가 약하면 실행되지 않는 것처럼, 피라미드를 쌓아 올린 진짜 원동력은 현장에서 정보를 위아래로 전달하고 조율했던 고대의 중간 관리자들이었습니다.
이집트인들이 완성한 이 하이어라키 시스템은 피라미드 건설이 끝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시스템은 인류 문명 전체의 발전을 이끄는 가장 보편적이고 강력한 '사회적 운영체제(OS)'가 되었습니다.
진화심리학자인 로빈 던바(Robin Dunbar)에 따르면, 인류가 위계질서 없이 친분과 신뢰만으로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약 150명('던바의 수')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150명이 넘어가면 누가 누구인지 기억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무임승차자가 발생하며 조직은 분열됩니다.
하지만 '하이어라키'라는 구조를 도입하자 마법이 일어났습니다. 인류는 150명이라는 생물학적 한계를 깨고 1,000명, 10만 명, 나아가 수백만 명이 모인 제국을 통치하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 군단의 백인대장 제도는 물론이고, 가톨릭교회의 교황-주교-신부 체계, 그리고 오늘날 CEO-본부장-팀장-사원으로 이어지는 현대 주식회사의 조직도까지, 모두가 5천 년 전 이집트의 '자(Za)' 시스템에서 파생된 하이어라키의 후예들입니다.
경영학적으로 보면 하이어라키는 누군가를 억압하기 위한 계급 제도가 아니라, '대규모 인간 협력을 가능하게 만든 정보 처리 시스템'이었던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하이어라키의 이러한 효과는 현대 과학에서도 증명됩니다.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Clauset 외, 2008)에 따르면, 생태계나 인터넷망 같은 복잡한 네트워크는 무작위로 연결된 것 같지만 그 내부에는 뼈대 역할을 하는 '계층적 구조(하이어라키)'를 갖고 있습니다.
즉, 하이어라키는 수많은 노드(사람, 조직 단위)가 효율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정보 처리 네트워크’인 것입니다.
오늘날 '하이어라키' 혹은 '위계질서'라는 단어는 수직적이고 꼰대 같으며 혁신을 가로막는 낡은 문화의 대명사처럼 쓰이곤 합니다. 실리콘밸리의 '수평적 조직 문화'가 각광받으면서, 직급을 없애고 호칭을 통일하는 것이 모든 기업의 지상 과제처럼 여겨지기도 하죠.
하지만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하이어라키 자체는 악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가 거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방대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고 실행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고안해 낸,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도구입니다.
조직이 굳어지고 소통이 막히는 것은 하이어라키라는 뼈대 때문이 아닙니다. 지시만 아래로 내려가고 작업자들의 목소리가 위로 올라가는 '상향식 정보의 흐름'이 막혔을 때, 위계조직은 관료주의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거대한 조직일수록 뼈대(위계)는 단단해야 하지만, 그 뼈대 사이를 흐르는 신경망(소통)은 수평적이고 자유로워야 합니다. 피라미드를 짓던 그 시절이나 수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현대의 글로벌 기업이나, 조직의 성패는 결국 이 뼈대와 신경망의 조화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요? 거대한 목표를 향해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모으는 튼튼한 하이어라키가 작동하고 있나요, 아니면 소통이 꽉 막힌 거대한 돌덩이처럼 굳어가고 있나요? 문명을 도약시킨 하이어라키의 기원 앞에서, 우리의 조직을 다시 한번 돌아볼 시간입니다.
※ 집필 노트: 이 원고는 고고학적 사실을 경영학적 통찰로 풀어내기 위해, 저자가 여러 인공지능 모델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자료를 검토하고 교차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저자의 문제의식과 해석이 AI의 방대한 데이터와 만나 탄생한 ‘지적 협업의 결과물’입니다.
[함께 읽어볼 만한 자료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2015) : 인류가 어떻게 150명이라는 생물학적 한계('던바의 수')를 넘어 거대한 제국과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는지, 그 협력의 메커니즘을 통찰하고 있습니다.
페터 야노시, 『피라미드 속의 과학』 (도솔, 2007) : 피라미드에 대한 통설과 오해를 점검하면서, 피라미드 건설 과정을 고고학과 건축사 자료를 바탕으로 생생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노동자 수와 조직’ 문제를 포함해 피라미드라는 거대 건축 프로젝트의 조직, 운영과 협력 메커니즘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낸 책입니다.
게리 해멀·미셸 자니니, 『휴머노크라시』 (한국경제신문, 2021) : 하이어라키(관료제)가 과거 인류 발전에 기여한 바를 인정하면서도, 변화가 극심한 현대 비즈니스 환경에서는 혁신·적응·몰입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합니다. 통제 중심 조직을 인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살리는 ‘휴머노크라시’로 전환하기 위한 원칙과 사례, 실행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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