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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돈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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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상실 Jan 08. 2024

그 좋다는 직장 때려치우려는 녀자 프롤로그

내 살길 찾아 나서는 여정

" 그 좋은 직장을 왜 나오려고 그래??
방학에 정년 보장되지,
월급도 직장인 평균도 되고,
육아휴직을 써도 책상이 없어지니?
게다가 3년씩이나 애 키우라고 보장해 주는 직장이 어디 있다고"


와우! 생각해 보니 장점이 꽤 있네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여자라면 최고의 직업이라던 초등교사 타이틀을 쥔 지... 거의 15년째

그렇다고 때려 칠만큼 물려받을 재산이 있느냐면 절대 아닙니다. 결혼할 때 각자 오천씩 모은 돈으로 경기도 수원에 17평짜리 전세 얻은 것이 시작이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어떻게 하면 교대에 들어가서 임용에 합격할 수 있을지를 골머리 때리게 연구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나름 엉력이 좋고 공부머리가 쬠 있어서 들어간 시간만큼 성적표도 잘 나왔으니 이렇게만 쭈욱 간다면 워런버핏 같은 부우자는 아니더라도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는 할머니로 은퇴할 수 있겠거니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당당하게(?) 나올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때가 왔으니 인생사 진짜 새옹지마네요.



월급쟁이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그동안 했던 일을 그만두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키울 아이가 있다면 더더욱이나. 전 그 키울 아이가 둘이나 있고. 그것도 아직 미성년자니 그들의 인생에 폐가 되지 않으려면 닥치고 일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왕대접을 안 해주는지 따지는 공감능력 결핍 아이들을 상대하 더도, 우리 아이 기분 상한 건 어떻게 책임질 건지 따지는 학부모를 만났을 때에도 진상손님도 다 내 운명이고 책임이지 싶어서 품고 가려고 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길이 아니면 답은 없다는 무지막지함이 그렇게 만들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어딜 가도 이것보단 많이 받겠다는 마음조차 감히 품을 수 없었으니까요.  


때로는 보람도 있었어요. 아주 가끔이지만 조막손으로 눈이 얼굴의 반은 차지하는 인형 같은 그림을 그려오면서 선생님이라고 건네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 무쌍인데 그림은 금발에 쌍꺼풀....)



몸이 멈추라고 하기 전까지는

그냥저냥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을 테니까요.






늘 하던 유방 정기검진에서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예전에도 모양은 안 좋아도 잘 넘어갔으니까 이번에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전화가 와서는 암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이 이런 느낌!


빠른 시일 내에 보호자랑 같이 내원해서 큰 병원에 예약 잡아야 한다고 했을 때도 놀란 마음보다는 아이는 누구한테 맡기지가 먼저 떠올랐었습니다. 아오. 이 책임감 좀.

조직검사를 했던 병원에서 젊은 나이에는 드물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크기가 6Cm로 제법 크다도 했을 때 절망했었습니다.



전 39살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누구나 죽는구나... 를 처음 깨달았을 만큼 나이는 너무도 젊었습니다. 아직 30대였으니까요.

원인이 도대체 뭐냐! 난 뭐를 잘못한 거냐!로 거진 1년을 보냈고,  직장에서 휴직을 얻어 몸을 되살리는데 또 1년을 보냈습니다. 누구는 갈곳이 없으면 심심하고 지루하다던데 넘나 좋았습니다. 휴직 수당을 받고 몸만 생각하니 저절로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전처럼 살면 완전 멍청이니까요.


전신 검사로 1기라는 진단을 받고는 점점 살만해졌고, 수술도 재수술을 받긴 했지만 성공적, 항암도 패스하게 되어서 한숨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깨진 접시라는 생각은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아침밥을 먹다가 가족들 앞에서 건강했던 내가 왜 이렇게된거냐며 미친뇨자마냥 악을 쓰면서 울기도 했습니다. 괜찮았다 우울했다 살만해졌다의 반복..평생 재발에 대한 위험도 어마무시했고요.




그래도 모든 일에는 깨달음이 있다면 실패가 아니라는 초긍정 마인드로 결론을 내려보았습니다.


1.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나만 그렇게 사는 거였다.
2. 정년까지 일할 용기는 없다. (알고 보니 주위에 한 트럭...)
3, 돈에 여유가 없으면 진상고객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돈으로 여유를 만들자.
4. 몸이 힘들다 느껴지면 뭐가 됐든 멈춘다. 나 없으면 학교 안 돌아갈 거란 생각은 집어 치고 병가 쓰자. 죽는 것보다는 관리자한테 미움받는 게 낫다.



지금도 아직 일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기 때문에 일을 지속하고는 있지만 이전과는 분명 다른 점이 있습니다.

투자의 세계에 눈을 떴다는 점과 이 세계를 많이 알려서 월급쟁이들에게도 희망을 주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뭐 당연한 얘기를 하고 그래?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예전의 저처럼 직장을 그만두면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주식계좌 하나 없는 그야말로 금융신생아 상태였습니다. 지금은 실거주 집도 장만하고 야금야금 모으고 불려서 4억이 넘는 돈을 채권에 넣고 있습니다. 어느 누군가는 많지 않은 돈이라고 말하겠지만 이전의 나를 생각하면 돈의 크기도 그렇지만 돈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겁이 많아서 적금밖에 할 줄 몰랐던 제가 돈의 흐름을 알고 마음 편히(평가손일 때에는 씅질날 때도 있습니다...사람이니께요.)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보는 눈이 달라져서 일어나자 마자 미국시장과 채권금리, 유가를 봅니다. fomc결과와 pce는 어떻게 나왔는지 관심갖기도하고 생중계를 보기도 하고요.



요즘은 MZ세대 분들부터 교직에 대한 인기는 시들해졌습니다. 교대에서도 자퇴생이 속출한다니 정말 상황판단 능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해 보면 시야가 굉장히 좁았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다른 길을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최근 2~3년간 투자의 세계에 눈뜨게 되면서 조금씩 월급을 자산으로 옮기고 있는 중입니다.



부자책에 나온 것처럼 절약으로 종잣돈을 모으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요행으로 한 두 번 대박을 칠 수는 있어도 그 이후에 유지하는 것은 순전히 소비통제여부에 달려있으니까요. 저 역시도 부부 월급의 80%를 아끼고 모았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남편옷을 입고, 구멍 난 양말을 꿰매신고, 어지간하면 외식 대신 집밥을 해 먹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장률이 높은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예전처럼 예적금만 해서는 부자의 세계로 가는 건 어렵습니다. 절약은 꼭 필요하지만 부의길로 가는 데에는 한 가지가 더 필수적입니다. 그건 바로 투자입니다.



절약에만 일가견이 있던 예전의 저와 투자에 눈 뜬 지금이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경제적 자유를 위해 한 발짝 먼저 가서 시행착오를 겪은 이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용기 내어 글을 쓰려고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거라면 직장은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진상손님이 많아도 내가 여유로운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 부지기수니까요. 정 힘들면 나오면 되지라는 마음은 오히려 모든 일에 자신감을 줍니다.



빠르게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제2의 건강한 인생을 꿈꾸며 투자인으로 살고 있지만, 가끔은 지칠 때도 있고 다시 적금만 하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와 같은 결을 가지신 분을 만나 동기부여를 얻기도 하고 서로 힘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제가 투자를 하면서 고군분투를 했던 이야기와 왜 투자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앞으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나중에 제 아들 딸들이 엄마의 글을 읽고 일찍 자본주의에 눈을 뜬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주식과 투자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사이도 쪼.금.은. 더 돈독해진 것 같습니다.


겁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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