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仁政)이란 무엇인가?
인정(仁政)이란 무엇인가?
창덕궁엔 인정전이 있다.
국가유산청의 창덕궁 소개 글을 보면
<인정전(仁政殿)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궁중 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으로, ‘인정’은 ‘어진 정치’라는 뜻이다.>
참으로 무미건조하다.
여기서 말하는 인정(仁政), 어진 정치란 과연 무엇인가? 어진 정치...... 별로 느낌이 오지 않는다.
아마도 인(仁)을 어질 인으로 읽고서 붙인 설명일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우리 한자 공부의 문제가 있다.
천자문 공부를 하다보면 한 글자에 하나의 뜻만을 되뇌이게 된다.
‘인(仁)’은 유교 사상의 최고이자 가장 근본적인 개념이다. 이것을 단순히 ‘어짐’ '사랑'이나 '자비'로 읽는다면 그 깊이를 다 담아내지 못한다.
인(仁) 이란, 근본, 씨앗이란 의미이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 그 근본이 인(仁)이다. 살구씨를 행인(杏仁)이라 부르는 것처럼, 인은 근원, 근본이란 뜻이다.
그래서 ‘인(仁)’의 가장 기본적인 뜻은 내면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사람다움'이다.
공자는 사람다움을 인간이 인간으로서 지니고 태어난 가장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 상태, '측은지심(惻隱之心)' 을 기초로, "인자(仁者)는 애인(愛人)이니라." 이라고 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애인(愛人)'은 계층을 초월한 보편적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의 출발은 바로 부모가 자식에게 보내는 무한한 사랑(친친, 親親)에서 시작된다.
최근 우연히 결혼식장에서 신부 어머니가 딸에게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나는 그 노래가 그렇게 슬픈 노래인줄 처음 알았다.
그 노래는 <무조건> 이었다.
‘내가 필요할 땐 나를 불러줘, 언제든지 달려갈게, 낮에도 좋아 밤에도 좋아 언제든지 달려갈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르면 한참을 생각해 보겠지만 당신이 나를 불러준다면 무조건 달려갈거야......무조건 무조건이야 ’
무심히 즐기던 유행가가 콧날을 시큰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가족에 대한 사랑(親親)에서 출발하여, 군주가 백성을 자식처럼 여기며 베푸는 그 사랑이, 인(仁)이며 이를 실천하는 것이 군주의 인정(仁政)의 출발이다.
그러나 그 인(仁)이 관념과 구호에만 그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반드시 인은 실천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통치자의 인(仁)의 실천이 인정(仁政)이다.
그리고 그 실천은 백성들의 구체적인 생활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래서 맹자는 인정(仁政)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백성에게 안정된 생산과 생활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농사지을 토지를 분배하고, 농사철을 존중하며, 세금을 가볍게 하는 등 백성으로 하여금 의식주에 걱정이 없도록 하는 것이 인정(仁政)의 출발점이다.
구체적 실천없는 공허한 구호는 백성들에게 더 큰 고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은 군주 입장에서는 불편했겠지만, 공자보다는 맹자를 더 큰 가치로 여긴 듯하다.
경복궁 향원정의 편액은 고종의 어필이다.
그런데 향(香)자가 다르다.
벼 화(禾) 밑의 글자는, 날 일(日)이 아니고, 밥솥 부라는 글자로서 향(香)자의 원형이다.
즉 향이란 샤넬 No 5가 아니고 밥지을 때 나는 냄새이다.
배고픈자에게 그것보다 좋은 냄새가 어디에 있을까?
고종이 날일자 받침을 몰라서 그렇게 쓴 것이 아니다.
자신이 고민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이 백성의 먹거리, 즉 인정(仁政)임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고종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한다면, 향원정에서 향원익청(香遠益淸, 연꽃의 향기는 멀리 갈수록 아름답다) 만 되뇌이게 된다.
그 순간 고종은 나라가 망해가는 순간에 향원정 정자를 지어놓고 흥청망청하는 군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군주가 저러하니 조선이 망했지하는 의식을 심어준다. 이게 식민사관이다.
고종은 아주 뛰어난 임금은 아니었다. 고종을 생각하면 공부는 열심히 하는데 성적은 잘 오르지않는 학생이 떠오른다.
그러나 조선말기의 어려운 순간에도 백성의 먹거리를 고민했던 고종의 마음을 읽어준다면, 향원정은 단지 왕실의 후원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선다.
무심히 인정(仁政), 어진 정치 어쩌구 했던, 인정(仁政)의 근본적 의미를 다시 돌아본다면, 인정전, 인정문은 달리 보일 것이다.
즉위식을 거행하고 조하를 했다는 것에 그치지않고, 인정(仁政)이란 편액 밑에서, 왜 그런 즉위와 행사를 해야했는지, 인정을 실현하기위해 군주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런 마음 가짐을 갖고 실천을 고민하는 곳이 정전(政殿)이라면, 좀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최근 창덕궁 주변을 얼쩡거리다 인정전을 보며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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