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6-1 1주차 <엔칸토: 마법의 세계>

* 이 글은 <엔칸토: 마법의 세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엔칸토: 마법의 세계>의 포스터


여러분,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무엇인가요? 누군가 제게 이렇게 묻는다면 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바로 <엔칸토>!!라고 답할 것이랍니다. 엔칸토...? 디즈니에 그런 영화가 있었어? 네!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예요!!!


이 영화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가족은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기에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하지 않은 채 각자의 방에 남아 있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겉으로 보기엔 화목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쉽게 꺼내지 못하는 감정이나 기대, 그리고 각자 감당하고 있는 역할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엔칸토> 속 인물들은 각자 고유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능력은 곧 가족 안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루이사”는 겉으로 보기에 굉장히 강해 보입니다. 그리고 강해야 하는 사람이죠. 하지만 그 강함이 사실은 얼마나 불안한 상황 위에 놓여있는지 드러납니다. “내가 약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생각은 단순한 개인의 불안이 아니라 자신의 역할이 무너질 때 존재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 가깝죠.


“이사벨라”는 완벽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아름다워야 하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야 하는 존재죠. 심지어 원하지 않는 결혼까지 받아들이려 했던 이유도 그게 가족이 원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가 ‘완벽함’을 포기하는 순간 오히려 더 다양한 꽃을 피워낸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틀 안에서는 꽃만 만들던 사람이, 틀을 벗어나자 선인장과 덩굴, 예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형태의 식물들을 만들어냅니다. 이건 단순한 해방이라기보다, 그동안 규범이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막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지죠.


이 영화의 주인공인 “미라벨”. 가족 중 유일하게 아무 능력도 받지 못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애매 한 위치에 놓이죠. 도움이 되는 사람도, 그렇다고 완전히 소외된 사람도 아닌, 어딘가에 끼어 있는 존재. 그래서인지 미라벨은 계속해서 자신을 증명하려 합니다. 가족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하지만 끝내 그는 ‘능력’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수행성’이라는 개념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동과 기대를 통해 그 정체성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 루이사는 계속 강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강한 사람’이 되고, 이사벨라는 완벽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완벽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 수행이 멈추는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흔들리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보면 <엔칸토>는 단순히 특별한 능력을 가진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누군가는 강해야 하고, 누군가는 완벽해야 하고, 누군가는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 그 역할을 잘 해낼 때는 인정받지만,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금세 불안해지는 구조. 그게 꼭 이 가족만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진 않습니다. 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 역할들을 부여한 아부엘라 자신은 어떨까요? 그녀야말로 이 수행 체계의 설계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 역시 오래된 역할 안에 갇혀 있었던 사람입니다. 페드로를 잃은 순간부터 아부엘라는 '가족을 지키는 사람'을 수행해왔고, 마법은 그 수행의 증거였어요. 그러니 마법이 흔들린다는 건 단순한 위기가 아니 라, 남편의 희생이 의미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깝습니다. 루이사가 "내가 약해지면 어떻게 되지?"라고 두려워했던 것처럼, 아부엘라도 같은 공포를 오십 년 넘게 혼자 감당해온 셈이죠.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이 통제하는 방식이 되어버린 건, 어쩌면 그 두려움이 너무 오래 지속된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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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중요한 등장인물인 ‘까시타’에 대해 좀 더 살펴볼까요? 이 영화에서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까시타’로 등장합니다. 모두를 지켜주고, 품어주고, 함께 숨 쉬는 존재. 그래서 처음에는 그 집이 무너지는 순간이 곧 가족의 붕괴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조금 다르게 보면, 이 영화는 오히려 반대로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우리는 흔히 ‘집’을 떠올릴 때 물리적인 공간을 생각하지만, 영어에서 노숙자를 ‘houseless’가 아니라 ‘homeless’라고 부르는 것처럼, 집이라는 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돌아갈 관계, 연결된 존재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방은 각자의 능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방은 개인의 공간이기도 한 한편 동시에 그 능력에 갇힌 폐쇄적인 공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각자의 역할이 그대로 공간으로 구현된 셈이죠.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창문이 있는 방에 머무는 미라벨은 다른 캐릭터들과 조금 다른 위치에 있습니다.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 즉 가족의 구조를 한 발 떨어져서 들여다볼 수 있는 인물처럼 그려지죠. 그래서인지 미라벨은 능력이 없는 인물이 아니라, 오히려 이 세계를 ‘너머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진 존재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영화 내내 까시타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가장 먼저 균열을 감지하고, 결국 마지막에 가족을 다시 이어 붙이는 역할을 해냅니다. 그리고 그 역할은 이 가족의, 사회의 기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한 자리이죠. 미라벨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었어요. 집 자체가 미라벨의 능력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건 ‘까시타’라는 공간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있던 관계였던 게 아닐까 싶어요. 마법이 사라지고 집이 무너져도, 결국 다시 이어지는 건 가족이고,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이죠. 어쩌면 그동안 이 가족을 지탱해 왔던 건 마법이 아니라, 서로에게 부여했던 역할이었고, 그 역할이 무너진 이후에야 비로소 진짜 관계가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과 성장이라는 주제는 항상 제 눈물샘을 가만히 두는 법이 없습니다. 미라벨의 부모님이 “You have nothing to prove!”라고 외칠 때 저는 이미 이 영화가 제 최애 영화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죠. (이 대사는 영화가 시작한 지 11분 되는 지점에 나온답니다... 하하) 그리고 이 영화의 넘버인 <Waiting On A Miracle>이 나올 때면 매번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이 넘버 가사 중 “AmItoolateforamiracle?”에 이 영화는 대답합니다. ‘아니, 항상 너와 함께 있었어. 네 존재가 miracle이야!’


Open your eyes. What do you see?
I see me. All of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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