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 5주차 <아이 엠 러브> (2009)
*이 글은 <아이 엠 러브>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탈주, 아이 엠 러브에서 말하는 여성해방
루카 구아다니노의 ‘아이 엠 러브(I am Love)’는 부유한 레키 가문의 몰락과 더불어 엠마(틸다 스윈튼)와 그녀의 아들의 친구와의 사랑을 다루는 굉장히 자극적인 소재의 영화로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에서 넘어와 이탈리아 부유층 가문에 편입된 위치에 있는, 그래서 억압받고 또 억압받던 엠마의 자기 해방에 관한 이야기이다.
러시아에서 넘어온 엠마는 자신의 이름을 잃은 채 ‘엠마 레키’라는 이름으로 레키 가문에 편입되어 살아간다. 견고하고도 무거운 대저택 안에서 엠마는 개인의 주체성보다는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가문의 일원이라는 명목 하에 존재하게 된다. 그녀의 존재는 철저히 타자의 시선과 규율 속에서만 머문다. 엠마는 그 저택의 가부장제 안에서 언어와 계급이라는 여러 틀 속에서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간다. 여기서 루카 구아다니노는 시각적으로 그런 엠마를 형상화한다. 유리창에 반사해서 보여주거나, 프레임의 가장자리에 배치함으로써 그녀가 누군가의 시선 속에 존재하는 여성임을 상징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로라 멀비의 “남성적 응시(male gaze)”적 구조를 인지할 수 있다. 여성은 자신이 욕망하는 주체가 아닌, 타인의 욕망을 반사하는 거울로 존재하도록 구조화된 시각 체계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중반부를 넘어가며 아들의 친구이자 젊은 셰프인 안토니오와의 만남으로 그 시각적 구조는 깨지게 된다. 줄곧 정적이게 응시하며 머물던 카메라(시선의 주체)는 마구 흔들리고 다가가며, 집요해진 클로즈업으로 엠마를 비춘다. 그 가운데 엠마는 잃어버린 자신의 ‘키티쉬’라는 이름을 고백한다. 남편에 의해(그리고 수많은 구조에 의해) 잃어버렸던 본인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찾아가는 기로에 서게 된다. 결국 이 영화는 엠마가 본인이 갇혀 있는 사회적 규율과 가족의 기대 속에서 억압당한 욕망을 어떻게 파열시키고 꺼내어 해방하게 되는지에 대해 말한다.
결국, 내가 사랑이 될 때
그런 지점에서 해당 영화 내에 엠마와 엘리자베타(엠마의 딸)의 관계는 눈여겨볼만하다. 엘리자베타는 레키 가문의 규범을 거부하는 인물로 드러나며, 본인이 배우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세상을 관찰한다. 어느 날 엠마는 세탁소에 옷을 찾으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딸의 편지에서 엘리자베타가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상황은 엠마에게 강렬한 해방의 신호로 작용한다. 딸의 사랑은 사회가 정한 규범 밖에 있지만, 그 진실함 앞에서 엠마는 처음으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돌려보게 된다. 엘리자베타는 자신의 욕망을 두려움 없이 인정하는 존재로, 엠마에게는 억눌린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이 일련의 과정은 단순한 모녀의 이해를 넘어, 여성 사이의 감정적 연대와 자기 인식의 전이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즉, 딸의 ‘다름’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엠마 역시 자기 내면의 억누르고 있던 감정과 욕망을 마주 보게 된다. 여성이 다른 여성을 통해 자신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엘리자베타가 사회의 규범 안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다른 삶’을 선택하는 용기를 보여준다면, 엠마는 그런 딸의 모습에 지금껏 눌러왔던 자신의 욕망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스스로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시작의 용기를 얻는다.
<아이 엠 러브>의 마지막 장면은 위에서 언급했던 엠마의 고민과 앞으로의 해방에 대한 모든 내용들을 함의하고 있다. 마치 <인형의 집>의 결말을 떠올리게 하는 마지막 쇼트에는, 그동안 입던 답답한 원피스나 묵직한 장신구를 벗어던진 엠마가 존재한다. 수많은 명품 드레스를 벗어던진 엠마는 편안한 옷을 입은 채 딸 엘리자베타와 마주 보는데 이 장면은 단순한 모녀의 재회가 아니라, 서로의 선택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시선의 교환이 된다.
엠마가 규범으로 둘러싸인 저택을 나간 후, 카메라는 열려 있는 문을 비춘다.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은 채 빛을 통과시키며 화면을 채우고 그것은 곧 엠마의 앞에 남겨진 가능성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제야 엠마가 틀 안에서 빠져나와 ‘누군가의 사랑’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로 존재하는’ 인간으로 탄생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열린 문 너머로 그녀는 자신이 선택한 세계로 나아간다. 엠마는 항상 타인의 욕망과 질서 속에서 타자에 의한 존재로만 있었지만, 사랑을 통해 비로소 스스로의 주체로 태어난다.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아이 엠 러브>라는 제목을 다시금 해석해 볼 수 있다. 이 제목에서의 ‘러브’는 단순한 감정의 진술이 아니라, 존재의 선언이다. 엠마가 마지막에 갇혀 있던 이름과 구조를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때, 그녀는 “나는 사랑이다(I am love)”라는 말 그대로의 존재가 된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단순한 로맨스의 대상이 아니라 해방의 언어이며, 엠마가 세상과 자신을 다시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결국〈아이 엠 러브>는 ‘사랑을 통해 나를 잃지 않고 다시 태어나는 여성’에 대한 조용하지만 강렬한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