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돈』의 전개 방식으로 보는 철학함의 이유

플라톤 <파이돈>을 읽고

by 군옥수수맛아몬드

『파이돈』은 고대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의 처형 직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영혼 불멸의 논증으로 유명한 이 책은 소크라테스의 처형을 납득하지 못하는 제자들이 그를 찾아가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소크라테스와 제자들 간의 대화를 플라톤이 재구성해 쓴 형식을 띠는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육체가 죽더라도 영혼은 불멸하니 제자들이 슬퍼할 이유가 없다며 처형을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파이돈』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책이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논증을 되짚어보게 한다는 점이다. 이는 글이 쓰인 형식과도 맞닿아 있다. 작중에서 소크라테스는 영혼 불멸에 관한 논증에 의문을 품는 그의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한다. 일명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으로 알려져 유명한 산파술인데,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그냥 말하지 않는다. 질문의 형식을 통해 제자들은 주장의 논리적 오류를 스스로 점검하고, 자신이 무엇을 몰랐으며 어떤 점을 간과했는지 깨닫는다. 산파가 산모 대신 아이를 직접 낳아주진 못하지만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도록 유도하듯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독자는 이런 소크라테스와 제자의 문답을 보며 자신 역시 소크라테스의 한 제자로서 그의 질문에 자신만의 방법으로 대답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기만의 철학을 정립하게 된다.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와 제자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은 그 자체로 ‘철학함’이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논리적 오류를 찾는 것은 단단하고 촘촘한 사유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파이돈』은 철학이 무엇인지, 논리적인 사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좋을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소크라테스가 제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스스로 생각하고 논리적인 주장을 하도록 유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승의 입장에서 지식을 알려주고 가르치듯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제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탈옥할 것을 설득하고, 소크라테스가 그런 제자들과 영혼 불멸 관련 논쟁을 할 때만큼은 소크라테스도 그의 제자들과 같은 위치에서 평등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계속 질문하는 것은, 제자들의 생각을 고치기 위해서가 아니다. 소크라테스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제자들의 의견이라도 일단 수용한다. 그리고 그 의견을 수용했을 때 생기는 문제점을 발화자 본인이 알아차리게끔 유도한다. 소크라테스 역시 그의 말에 논리적 오류가 있었다면 이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 깨닫고 논증을 수정했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 이 시대에 『파이돈』을 다시 읽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고대 아테네와 비교해 현대는 놀라울 정도로 소통 기술이 발달했다. 굳이 대면으로 말하지 않아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의 소셜 미디어로 소통도 가능하고, 심지어는 화상회의 기능을 통해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직접 만나지 않고도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직접 대면해야만 혹은 오랜 기간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아야만 소통이 가능했던 과거에 비해 현재는 소통 자체는 훨씬 수월해졌다. 소통의 범위가 넓어지고 소통 대상은 다양해졌지만, 소통의 질은 확연히 낮아졌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으며, 정보의 바다라 불릴 정도로 취할 수 있는 정보가 많아졌지만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는 정보만 보여주는 알고리즘으로 인해 정작 건져지는 정보들은 확증편향을 공고히 할 뿐이다. 질문을 통한 신사적 설득은커녕, 자신의 의견과 다른 주장은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끊임없이 스스로 반문하고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소크라테스와 제자들의 소통 방식은 현대인의 소통 태도에 돌을 던진다. 『파이돈』의 전개 방식 자체가 곧 철학이며 철학함의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다.


형식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우리는 『파이돈』을 통해 철학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또 철학은 이 감옥의 영리함을 간파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 감옥이 욕망을 통해서 성립하는 것이어서, 무엇보다도 갇혀 있는 사람 자신이 그 구속의 조력자라는 점이네." (『파이돈』, 83a**)** 라고 이야기한다. 플라톤은 무지와 욕망으로 이루어진 몸을 가장 경계한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알지 못하는 무지와 우리의 탐구를 저해하는 욕망은 사람이 가장 멀리해야 할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에 관해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그저 평범하게 살아왔던 사람이 갑자기 의식을 가지기란 쉽지 않다. 이에 대해 플라톤은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리를 감옥에 가둔 것이 우리 자신이라면, 이 감옥에서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것 역시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뿐이다. 무지와 욕망으로 뒤덮인 영혼이라면, 덕과 현명함을 획득하면 된다. 그리고 그 덕과 현명함은 철학을 하면서 획득할 수 있다. 철학을 통해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우리를 번뇌에 빠트리는 욕망을 인식할 수 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독자들에게 철학을 계속할 것을 강조하는 듯하다.

『파이돈』은 온몸으로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저자들이 하나둘씩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논파당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은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자신이 굳게 믿고 있었던 것들을 자기 손으로 뒤집으며 논증을 구성해나가는 것을 보면, 철학은 그리고 철학적 질문은 그 자체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도록 돕는다. 또한, 평등한 관계에서의 건설적인 쌍방향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와 제자들의 문답은 양극화가 심해지고 확증편향의 알고리즘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삶에 큰 울림을 준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파이돈』은 무지와 욕망의 고통에 시달리는 이에게 철학을 통해 덕과 현명함을 얻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며 위로를 건넨다. 몸이라는 감옥에 자신을 가둔 것은 자기 자신이기에 이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 역시 자신의 몫이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나태를 경계하는 성찰적 태도로 우리는 비로소 편해지고 영혼으로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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