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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숨 Jul 18. 2022

그녀의 태아검진휴가가 슬픈 이유

질투가 아니다 슬픔이다

"저기 부장님.. 휴가 때문인데요"


  이어폰 너머로 B양의 음성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내 자리가 부장 바로 앞이라 각종 보고를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다. '휴가'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나는 나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옅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아..'


  왜냐하면 나도 부장에게 휴가 보고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같은 부서에서 휴가 얘기는 나중에 하는 사람이 더 불편하기 마련이다. 나는 곧바로 보던 영상을 멈췄다. 그리고는 모든 감각세포를 귓바퀴에 집중시켰다. 역시 B양은 휴가를 내는 것이 맞았다. 내가 한 발 늦었다. 그녀는 한마디 덧붙였다.


"이 날 진료를 봐야 할 것 같아서요."


그녀가 자리로 돌아가자마자 나는 스트레칭을 하듯 자연스럽게 일어난 뒤 부장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장님 죄송한데, 저는 이 날 오전에 어디를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잠시 후 부서 공용 캘린더에는 휴가 일정 2개가 등록됐다.


OO일
BOO 태아검진휴가

XX일
이숨 오전 반차


  그 이름만으로도 부러운 '태아검진휴가'. 그리고 함께 등록된 나의 '이름 없는 반차'.


  그날은 바로 우리 부부가 정자와 난자를 채취하는 날이었다.


  이런 걸 보고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는 걸까.


  B양 부부가 OO일 다정하게 손을 잡고 산부인과 진료실에 들어갈 시간에 우리 부부는 XX일 황망한 표정으로 난임 병원 1층에서 "잘하고 와"라며 인사를 나눌 것이다. 또, 그들이 벅찬 표정으로 초음파에 잡힌 어린 생명을 바라볼 때, 아내는 수술대에 올라 참담한 심정으로 서서히 마취에 빠져들 것이고, 나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정자를 배출하고 있을 것이다.


B양이 태아검진을 하고 있을 시간에 우리는..



잔인한 상황의 연속


  B양은 나와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회사 동기이자 옛 난임 동지이다. (임신 당시 상황은 <시즌1: 그녀의 임신이 슬픈 이유> 참고) https://brunch.co.kr/@a1f9702194b543e/13


  예상은 했지만, 점점 더 잔인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제 안정기도 지나 본격적인 출산 준비에 나선 B양 부부와 달리,


  우리 부부는 시험관 시술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서 사람들은 더 이상 B양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대신 "OO(태명) 엄마"라고 부른다. 자녀가 있는 선배들은 B양이 지나갈 때마다 '아이가 발로 차서 힘들지 않냐'며 웃기도 하고, '지금 시점에는 어떤 어떤 것들이 필요하다'며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런 얘기가 들려올 때마다 나는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다.


  그리고..


   귀에 이어폰이 머무는 시간은 점점 길어다.


  가장 곤혹스러울 때는 회의 시간에 위와 같은 주제가 튀어나올 때다. 회의하다 말고 혼자 갑자기 이어폰을 꽂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뭐라고요? 안 들린다고요


  그녀가 자리 위에 올려두는 임산부 배지도 나를 슬프게 한다. 아내가 유산하기 며칠 전 이틀인가 달고 다녔던 그 배지.. 유산 직후 내가 가방에서 떼어내 서랍 깊숙이 넣어둔 그 배지다.


  물론 나도 안다. 난임을 겪어본 그녀(B양)가 나를 얼마나 배려하고 있을지, 그러면서도 나 때문에 얼마나 불편할지.. 부서에 나만 없으면 훨씬 마음이 편할 텐데.. 그녀에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문제는 당장 해결 방법이 없다는 거다


  미안함의 이유가 나의 '행동' 때문이라면 얼마든지 사과하고 개선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미안함의 근본 원인이 '난임 부부'인 나의 '존재'라는 것이다. 1) 내가 난임 부부에서 벗어나거나, 아니면 2) 내가 이 부서를 떠나야만 비로소 사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하나 쉽지 않은 경우의 수다.


  그 때문일까..


  언제부턴가 나와 B양은 회사에서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있다.



내가 알던 내가 아냐


  B양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다. 정말 목숨 빼고는 다 내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단짝들에게도 나는 요즘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들이 누군가의 아빠라는 이유 때문이다.


  작년 가을 두 번째 유산 이후부터 특히 심해졌다.  


  내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보니 친구들먼저 연락을 걸어오지 않는다. 


  쩌다 잡힌 약속도 채취 일정이 다가오면 취소하게 된다. 건강산 정자를 생산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약속을 취소한 사람들과는 다시 약속을 잡기가 민망해진다.


   이식 후에도 시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저녁마다 아내에게 주사를 놔줘야 하기 때문이다.


  난임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 삶의 모습은 여러 방면에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B양을 보면서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것도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내가 알던 활기찬 내가 아닌,


  내가 전혀 몰랐던 우울한 모습으로 점점 변하고 다.


  난임이 슬픈, 또 원망스러운 또 하나의 이유다.




<오늘도 아내를 바늘로 찔렀다(부제: 난임부부 생존기)> 시즌2 처음부터 보기

https://brunch.co.kr/@a1f9702194b543e/18

시즌1 보러 가기

https://brunch.co.kr/brunchbook/sadnee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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