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춘당
초등학교에서 25년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8년 전 유난히 책 읽기를 좋아하던 한 여학생은 아침시간에 꼭 그림책을 읽었다. 독서의 수준이 매우 높은 아이가 유치원생이나 읽을 법한 그림책을 읽는 이유가 매우 궁금했다.
“민지야, 너는 왜 그림책을 읽어? 다른 친구들처럼 4학년 추천도서를 읽는 건어 때?”
“선생님, 그림책이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그리고 저는 그림 그리기도 좋아해서 배울 것도 많아요. 선생님도 읽어 보실래요?”
방긋 웃으며 아이가 내게 내민 책은 김장성, 오현경 글과 그림으로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명작‘민들레는 민들레’였다.
진한 하늘색 배경에 민들레가 그려진 커버.
책장을 넘기는데 심장이 두근거리고 소름이 돋았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머릿속은 하얘졌고 수많은 감정이 교차되었다.
그날의 감동을 시작으로 그림책을 읽고 공부하며 전도하는 그림책프로가 되었다.
그림책프로 정그라미 선생님이 추천하는 그림책 이야기 인생. 그림책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어 그림을 그리고,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나에게 그림책을 정의하라면 삶을 가장 아름답게 축소한 세계라 말하고 싶다.
고자동씨와 김순임씨의 아름답고도 슬픈 인생을 담은 책 옥춘당.
제사를 모실 때 올리는 알록달록 사탕 이름이 옥춘당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노부부의 변치 않는 사랑과 그 모습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손녀.
나는 우리 가족을 ’가족협동조합‘이라 표현한다. 서로 일정한 선을 지키고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한다. 가족 내에서 가사 역할 분담도 정확하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끈끈한 사랑으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관계다.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늘 손님을 대하듯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결과에 책임지게 한다.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통제하지 않았고, 아이들은 자기의 역할을 다하며 바른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 힘들고 아파할 때 가슴을 내어주지만 책임 없는 행동의 결과에 도움은 없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사랑하지 않았다.
우리는 채 열 번을 만나지 않고 결혼을 했다. 결혼이 운명이란 말을 믿는다. 내 이상형과 일치하는 것이 전혀 없는 이 남자를 두 번째 만났을 때 ‘아, 나는 이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결혼을 했다.
이유는 명료하다.
아버지와 달랐다. 이 남자와 사는 동안 마음고생은 하지 않겠구나…
남편이 나와 결혼한 이유를 아직 모른다. 묻지 않았다.
모든 부부관계가 사랑으로만 성립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렇게 동지가 되었다.
나는 사회인으로서 남편을 존경한다.
일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 능력까지 갖추었지만 말이 없다.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언제나 경청한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한다. 멋진 사람이다.
남편으로 아빠로는 낙제점에 가까웠지만, 나이가 들고 떨어져 생활하다 보니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현재는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남편은 나를 인정한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아이들을 잘 키워주었고, 직장 생활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단 한 번도 가족이 걸림돌이 되지 않게 지원해 주었음을. 학교를 사직할 때 두 번 묻지 않고 원하는 대로 하라며 나를 지지했다.
내가 병에 지치고 우울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묵묵히 내 뒤를 지켜주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안타까운 눈물 한 방울을 보이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나라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산다.
옥춘당의 고자동씨와 김순임 씨의 사랑이 눈물겹게 아름답고 빛나지만 마냥 부러워하지 만은 않는다.
김순임 씨는 고자동씨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그와 나는 서로의 빈자리가 허전하긴 해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미화시켜 본다.
남편보다 하루라도 더 살기로 약속했다.
혼자서는 아직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선비 같은 남편의 따뜻한 밥상을 위해.
내가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다.
가족 협동조합원으로서의 마지막 임무를 완성하고 싶다.
사랑하지 않지만 존경하는 남편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