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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May 13. 2024

아주 특별한 산책

작별인사

오랜만에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쨍하고 진한 보라색 원피스에 색을 맞춰 보석의 이름도 모르는 보라색 반짝이 귀걸이로 색깔을 맞추었다. 한 달 만에 잘 차려입은 아침이다. 우리 반 아이들과 첫 만남을 하는 날에는 검은색에 금색 단추가 포인트로 들어간 원피스를 입었었다.

첫인사와 마지막 인사를 위해 나름의 격식을 갖춘 것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갔다. 짧은 기간 동안 현장학습과 체육대회라는 큰 행사를 치러서 그런지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5학년을 계속 가르치다 만난 3학년 학생들은 아기 같았다. 많은 것이 서툴렀고 질문들은 얼마나 많은지 아이들이 가고 나면 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정말 예뻤다. 우리 반 아이들은 특별히 속을 썩이지도, 다투지도 않는 순한 양들 같았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호흡을 다듬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교실 문을 열었다.

여기저기 모여서 떠들고 장난을 치느라 교실은 소란스러웠다. 칠판에는 아침활동으로 ‘독서하기’라고 반장 아이가 대문짝만 하게 써 놓았지만 책을 읽는 아이는 두셋뿐. 그래도 예뻤다.


아침인사를 하고 평소처럼 수업을 했다. 아이들도 다른 날과 같았다.

마지막 시간 수업을 하려는데 키가 크고 목소리도 큰 예린이가 손을 들었다.

“선생님 이제 몇 반으로 가요?”

“선생님은 이제 집으로 가는데.”

“그럼 우리 학교에 이제 없어요?”

“아마도 당분간은 없을 것 같아.”

“왜요?”

아이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내가 다른 반 선생님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라 상황 설명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교실 분위기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다은이 울어요.”

우리 반에서 가장 작고 뽀얀 다은이.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선생님 너희들 졸업하기 전에 다시 올게.”

“진짜죠?”

“우리 반에 매일 놀러 오면 안 돼요?”

10살 아이들의  투정과 질문들에 서운함이 묻어있어 마음이 울컷했다.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덩치 크고 마음씨 약한 순둥이 치영이는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 엄마가 안 계신다. 아버지가 독자라 주변에 친척도 없이 엄마랑 둘이 산다고  둘이 산책할 때 이야기 해 주었다. 엄마 사랑이 그리웠는지 내 손을 자주 잡아 주었고 사랑한다는 인사를 수줍게 속삭였던 학생이다. 나도 치영이가 속상해할 때 꼭 안아주었다. 엄마의 마음이었다.


“얘들아, 김민정 선생님이 원래 3학년 7반 담임선생님이야. 그렇지? 선생님께서 건강하게 돌아오시면 우리는 다 같이 축하해 드려야지. 선생님이 꼭 다시 올 게. 여러분 만나러도 올게.”

제일 뒷자리에 앉은 장난꾸러기 시우가 손을 들었다.

“그럼 우리 산책 가면 안 돼요? 선생님이랑 첫날 산책 했잖아요. 오늘은 날씨도 좋아요.”

참았던 내 눈물이 그만 터져버렸다.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책상 아래 물건을 줍는 시늉을 하고 최대한 빨리 눈물을 수습했다.

첫날을 기억하고 있었다니… 고마웠다.


하교 준비를 모두 마치고 아이들이 하교하는 길을 배웅했다. 학교가 전체 공사 중이라 산책을 할 수 없어 손을 잡고 교문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약속한 것처럼 아이들이 한 명씩 와서 안겼다. 아이들은 내 팔 안에 쏙 들어왔고 체온이 느껴졌다. 내 사랑이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꼭 안아주었다.

특별한 산책이 마무리되었다. 한 달을 마무리 짓는 산책이자, 내 일상에서 벗어났던 계획에 없던 산책.


나는 또 다른 아이들을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오늘 시우에게 산책 같은 작별인사를 배웠다. 행복한 시간을 마무리하는 짧지만 특별한 산책.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나는 선생님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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