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날 순자 씨가 밭일을 쉬자, 미영 씨가 막걸리 한 병을 사 왔다.
“순자야, 비도 오고 꿀꿀한데 정구지 넣고 찌짐 구워서 막걸리 한잔하자,”
“안 그래도 밥 하기 싫었는데 잘 됐다. 쪼매만 기다려 봐라. 땡고추도 넣고 칼칼하게 해 줄게.”
곧 순자 씨가 정갈하게 구운 전을 앞에 두고 두 여인은 주거니 받거니 근황 이야기를 이어갔다.
미영 씨는 순자 씨가 밭일을 하느라 몸이 상할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미영아, 니는 남편이 물려주고 간 돈이라도 있지. 내야 집 한 칸이 딸랑인데 내가 몸이라도 움직여야지. 안 그러면 우리 애들 힘들어서 안 된다. 내 몸 움직이면 그게 다 돈이다, 생각하면 안 힘들다. 넋 놓고 앉아서 신세타령하면 밥이 나오나 옷이 나오나. 나는 남들이 머라케도 신경 안 쓴다. 돈 없어서 빌리러 다니고 굶는 게 부끄럽지, 일하는 게 어때서. 걱정 마라. 이번에 고추 팔면 나는 세탁기 새로 살라고. 내 벌어서 내 쓰는 게 최고다,”
순자 씨는 낡은 세탁기를 바꿔준다는 자식들의 말에 10년은 더 쓸 수 있을 거라 말했지만 세탁기가 돈 달라고 한지가 꽤 지났나 보다.
막걸리 한 병을 마신 두 과부는 바람이 통으로 부는 순자 씨 평상에 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잤다. 복 과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