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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라미 Jun 22. 2024

새벽 4시 꽃단장

비는 왜 오는 건데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예상됩니다.


잠들기 전 네이버 창을 열고 제주도 최저가 항공권을 검색하는 것이 내 하루의 마지막 일과다.


제주도를 사랑한다.

시간이 허락할 때면 당일로도 다녀오곤 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어제 이유 없이 기분이 꿀꿀하고 어딘가 가고 싶었다. 제주행 비행기표가 남아있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예매부터 했다.


여행 블로그를 보니 비 오는 날 사려니 숲이 그렇게 좋단다. 드론으로 촬영한 아부오름은 얼마나 예쁘던지...


비 따위에 흔들릴 내 의지가 아니다. 비행기 표 예매를 끝내고 렌터카 예약도 마쳤다.

1박 2일로 머물고 싶었지만 존경씨가 금요일에 귀가하지 않았다. 우리는 주말 부부다. 주말에 밥 얻어먹는 낙으로 사는 양반인데 나도 양심이 .

다른 날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공항에 늦게 도착해 비행기를 놓친 적이 있는지라 미리미리 대비하고자 했다. 눈을 떠보니 새벽 3시 30분. 너무 일찍 일어났다.


다시 잠들기는 어려울 것 같고, 인스타그램을 열어 제주도 티켓부터 자랑질을 시작했다. 스토리를 꾹꾹 눌러서 올리고 보니 4시가 되었다. 늦는 것보다는 이른 게 낫겠다 싶어 꽃단장을 시작했다.

편하면서 스타일이 힙한 옷을 고르고 우산도 챙기고, 글 쓸 일이 있을 줄 모르니 키보드도 챙겼다. 출근할 때도 잘하지 않는 화장까지... 좀 과한가?

아니다. 여행은 사진을 남기고 사진은 내 자랑질의 원동력이 된다. 기왕 찍는 거 최대한 길고 어려 보이게.


나이가 들수록 내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중년들 프로필 사진에 꽃사진이 많은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자신의 젊음을 그리워하며 활짝 핀 꽃으로 마음을 달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웃픈 이야기다. 예쁘게 나이 들고 싶다고 말하지만 젊음보다 예쁜 것이 있을까? '아름답다'와 다른' 예쁘다'.  나는 꽃 대신 하늘을 찍는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늙어간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시간은 한참 남았다.

사려니 숲과 아부오름에 대한 정보를 낫낫이 검색하고 6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비가 한 방울  떨어졌다. 신경 쓰지 않았다.

청주공항까지 한 시간 남짓.

빗방울이 굵어졌다. 마음이 초조해진다.


존경씨에게 문자를 보냈다. 존경씨는 물박사다.

똑도도도독. 목탁소리. 존경씨의 문자 알림소리로 설정해 놓았다.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은 알 것 같다.

'오늘 남부지방에 비 많이 와. 가지말지.'

확인이 필요해 제주 지인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연락해 보았다.

'오지 마! 비 오는 날 셀카도 못 찍으면서. 얼른 취소해.'


공항 가는 길, 안전한 곳에 차를 세우고 여행 앱을 열어 항공권과 렌터카 예약을 취소했다. 특가항공권 취소불가, 렌터카 당일취소 위약금 50%

눈물난다.


살면서 모든 일이 계획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이런 변수들이 있어 우리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오늘 하루 즐겁고 행복한 게 최고다.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즐기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없었으면 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고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보려 아등바등 살았던 우울증 환자의 진심 어린 조언이다.


지금 시각은 9시 21분.

비가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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